랭 면 (외 3수)□ 리기준

2024-03-29 07:55:24

대중 랭면집에 들어가면

울타리가 없어 좋다

후루룩 후루룩

모두 한가지 소리를 내니

부끄럼도 어색함도 없다


어디에서 온 누구를 막론하고

한가지 소리를 내는 랭면

사투리도 표준어도 이때 만큼은

똑같은 소리를 낸다


삼복 더위에도 비오는 날에도

시원한 랭면 한사발 드시면

국수발 같은 주름도 펴지고

빠른 절주에 시달리던 굳은 얼굴도 펴지고

우리 삶도 같이 펴진다


여러갈래로 나누어졌던 국수

한사발에 쫀독쫀독 뭉치여

시원한 육수와 함께

한가지 소리를 내는 랭면

언제나 듣기 좋은 입맛 소리이다


가까이에 있어도

정말 먼곳으로 떠나도

후루룩 후루룩

랭면 소리만 나오면

저도 몰래 하나로 뭉쳐진다



바가지


드레박으로 길어올린 시원한 우물

가슴에 푹 담아 허기진 배 채워주던

그때 그 시절처럼

손으로 담근 컬컬한 감주 한바가지

가슴에 푹 담아 고픈 배 채워준다


외로움이 고플 때

쓸쓸함이 고플 때

슬픔이 고플 때

깊이깊이 간직한

박바가지를 찾아간다


바가지는 고분고분

언제나 변치 않는 고운 마음으로

맑은 내물을 가슴에 푹 담아

고픔에 마른 목 추겨준다


복받을 거야

잘될 거야


꽃으로 제품을 수놓고

향기로 말하는 바가지

정다운 말 한마디에

시린 가슴 사르르 녹으며

노래가 되고 춤이 된다


그리운 옛날

투박한 손으로 박을 쪼개고

바가지 앞길 만들어주었지

세월이 흐르고 흐른 지금

바가지가 맑은 눈동자를 적셔주며

가야 할 앞길 달래준다



서시장


고추 팔고 감자 팔아

용돈 마련하던

장마당이 보고프면

서시장으로 걸어간다


하루하루 또 하루

먹지도 못하고 아끼고 모아서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던

어머니 모습이 어리여

보는 가슴 아리다


잘 먹고 잘살아도

고프기만 한 세월

부드럽고 따스한 손길 담긴

구수한 국밥 한그릇에

단무지 맛있어 눈물 흘린다는

어느 시골 시인을 생각한다


불빛이 뜨거운 서시장

만면의 웃음으로

친인처럼 맞아주는 열정

소박한 옛날이 겹쳐오며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성벽은

모래알처럼 무너진다


별빛이 찬란한 서시장

가슴깊이 키워가던 작은 울타리

바람 앞에 홍모처럼 날려보내고

오랜만에 유머도 슬슬 날리며

병들지 않은 젊음을 찾은 듯

싱싱한 마을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장백산으로 가자


장백산으로 가자

굳은 얼굴 버리고

내가에 비치던 고운 얼굴 다시 하고

구름과 손잡고 산새와 노래하며

순결한 이름들 다시 불러보자


장백산으로 가자

같은 소리 버리고

수정처럼 빛나던 눈동자를 다시 하고

맨발로 계단을 하나 둘 밟으며

아름다운 수채화에 점 찍어보자


장백산으로 가자

비 오면 비에 젖고

바람 불면 바람에 안겨

꽃을 만나면 이쁘다 불러주며

다람쥐를 만나면 다람쥐와 놀아보자


장백산으로 가자

온천에 발 담그고

구수한 사투리에 가슴을 적셔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하늘 바라보며

순수하고 싱싱한 청춘 다시 찾아보자


장백산으로 가자

세파에 휩싸이지 않고 천년을 찧고

자신의 줄기 따라 만년을 찧어가는 폭포수

우리의 얼 담고 우리 기상 실어

쾅쾅 대지를 우뢰처럼 울려보자


장백산으로 가자

병풍으로 둘러친 열여섯 봉우리

손으로 들어올려 하늘 치받고

성스런 넋을 천하에 자랑하며

싱싱한 령혼 가슴깊이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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