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용한 주말 저녁, 낮에 집청소도 깨끗이 했겠다 심적인 여유가 충분해서 모처럼 영화 한편을 띄워놓고 바야흐로 본문에 몰입하려는 그때 띵동 하고 메시지 도착음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열한시가 다되는 시간이다. 영화를 정지시키고 내용을 확인했더니 별 쓸데없는 링크를 단체문자로 보낸 것이였다. 갑자기 영화를 보고 싶은 흥이 싹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하필이면 아침에 더하다. 아직도 나에게 아침잠은 그야말로 꿀잠이라 일분일초라도 이불속에서 더 버티고 싶어 뭉개는데 그런 나의 아침잠에 초를 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새벽에도 시간을 모르고 울려대는 위챗 메시지 도착음이다. 확인해보면 “활기찬 아침입니다…”라나 뭐라나. 혹자는 취침시간에는 모든 알림을 끄는 휴면모드를 하면 될 일이 아니냐고 하지만, 어머니도 따로 살고 계시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단위나 친척, 친구들의 급한 련락에 대비해 알림소리를 끄기가 여러모로 꺼림직하다.
아침마다 단체문자로 인사를 보내는 것으로 짐작되는 분들은 아예 알림을 꺼두었다. 하지만 나중에 몰아서 메시지를 확인하는 일도 참 번거롭다. 일방적으로 나에게 투척된, ‘관심’이라 이름 짓고 ‘무용지물’이라 읽히는 메시지들을 일일이 열어서 지울 때면 내가 왜 아까운 시간을 들여서 메시지 청소를 해야 하나 싶다.
2011년에 출시된 위챗은 2024년 상반기에 이르러 사용호가 13.59억명에 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그것은 비록 사이버세상이긴 하나 우리 실체 생활의 일부분이 되였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과 사업을 하나로 묶어놓았고 사업과 휴식시간을 하나로 묶어놓았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호모 사피언스가 밀을 심으면서부터 밀밭을 떠나지 못하고 밀의 노예가 되였 듯이 우리도 웬지 위챗의 노예가 되여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록 기업위챗 등 사업과 생활을 분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경계감(边界感), 생활과 사업 사이 경계 등은 날로 모호해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특정 대상과 련락을 취할 수 있어서 간편한 위챗, 그렇다고 아무때나 메시지를 날려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어르신들을 상대로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하루 위챗 모멘트에 “건강상식은 제가 필요할 때 저절로 찾아볼게요~ 관심은 고마운데 안보내주셔도 됩니다.”라고 올린 내용을 보았다. 그 처지가 공감이 되면서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위챗 모멘트에 올렸을가 하는 생각에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종래로 어딘가에도 감히 말하지 못했던 내용을 속시원히 모멘트에 올려서 대리만족을 느꼈다고나 할가. 위챗 세계에 뒤늦게 입문하고 사용에 익숙치 않은 어르신들이라고 극력 리해를 해보지만 나에게 일방적으로 던져지는 방해가 나의 일상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변화시킬 수 없다.
위챗은 원래 가까운 지인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용도로 쓰였지만 요즘은 사적인 범주를 벗어나 공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직장내 업무거나 기타 업무가 위챗을 통해 이뤄진다고 해서, 위챗 친구로 수락이 되였다고 해서 오래된 친구들처럼 편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프라인에서의 관계 및 매너는 온라인에서도 똑같이 유지되고 행해져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지켜야 할 례의, 하지 말아야 할 말, 발표하지 말아야 할 자료 등은 온라인에서도 똑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우리가 새벽 대여섯시, 또는 저녁 휴식시간에 예고 없이 누군가의 집을 불쑥 방문하면 실례이듯이, 그 시간대에 요긴하지 않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똑같이 실례이다.
평소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온라인’에서 꼬리가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똑같이 EQ 높은 대화를 하는 사람도 많다. 대화를 시작할 때 꼭 인사말로 서두를 떼고 필요한 것만 얘기한 다음 마무리 인사로 끝을 맺는 사람과의 대화는 시종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응답하게 된다. 그 상대를 존중하게 되고 따라서 메시지가 도착하면 제꺽 회답하게 된다. 비록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는 휴대폰 화면이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대화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확연히 와닿기 때문이다.
사이버세상이라고 다를 게 없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상대방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가 하고 한번만 그의 얼굴을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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