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돌그릇□ 최진옥

2024-06-28 10:07:24

오늘 아침에는 곱돌그릇에 가지밥을 지었다. 전기밥가마로 지은 밥이 입맛에 지겨울 때면 나는 때때로 곱돌그릇에 밥을 짓는다.

찹쌀과 멥쌀을 비례에 따라 씻어 곱돌에 안치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듬뿍 넣은 콩기름에 파와 다진 돼지고기를 달달 볶다가 전날 저녁에 찬물에 푹 불려놓은 마른 가지를 함께 볶은 것을 쌀 우에 얹는다. 밥물이 한참 끓다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액화가스불을 꺼버린다. 곱돌그릇은 내열성이 뛰여나고 열 전도성이 매우 좋기 때문에 자체열기로도 밥이 지어진다. 아침밥을 퍼내고 나머지 밥이 있으면 곱돌그릇 덮개를 꼭  닫아놓는데 점심을 먹으려고 곱돌그릇 덮개를 열어보면 그때까지도 밥에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 이렇게 곱돌은 쉽게 식지 않고 따뜻한 온도를 오래오래 보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단층집에서 살 때에는 평평한 가마에 큰 곱돌그릇을 놓고 밥하기를 즐겼다. 곱돌그릇에 지은 밥은 맛이 전기밥가마로 지은 밥보다 훨씬 구수하고 깔끔하여 입맛을 당긴다. 밥물이 끓기 시작하면 가마전으로 슬쩍 옮겨놓아야 한다. 가열하였을 때의 열은 곱돌 표면 전체에 고르게 확산되여 전도되기 때문에 열을 더디 전파하여 끓어오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디지만 뭉근한 열을 받게 되면 밥물이 넘치지 않고 누룽지도 두텁게 눌어붙지 않으며 밥이 맛있게 잘된다.

층집으로 이사한 후 곱돌로 밥을 짓는 차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밑굽이 두터운 곱돌그릇에 열을 올리는 시간이 무척 길어지면서 액화가스 사용량이 엄청 늘어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이다.

곱돌은 광택이 있고 매끈매끈하며 재질이 아주 무르다. 주방용구로 사용하려면 먼저 돼지비게를 안팎으로 골고루 바르고 불에 천천히 달구어야 한다. 돼지비게 기름이 열을 받아 뿌지직뿌지직 천천히 타들어가면서 곱돌 전체에 스며들어가야 한다.

불에 달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비게를 골고루 발라야한다. 불이 너무 세면 달구기 전에 저절로 금이 가면서 동강이 나고 불이 너무 약하면 잘 달구어지지 않는다. 불 조절이 어찌보면 곱돌을 잘 달구어내는 비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열을 식힐 때도 천천히 식혀야 한다. 곱돌을 달구고 식히는 과정을 우리는 곱돌을 길들인다고 한다. 잘 길들여진 곱돌은 원래의 푸르스름한 색갈에 흰 분을 뒤집어썼던 모습으로부터 새까만 모습으로 탈바꿈하면서 원래의 무르던 재질이 딴딴한 재질로 변한다. 또 사용하면서 쉽게 깨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하면서도 늘 조심해야 한다. 열이 채 식지 않은 곱돌을 설겆이 한다고 찬물에 넣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쪼각으로 갈라지고 만다.

고중을 다닐 때에 오빠집에 얹혀살면서 통학하게 되였는데 집일이나 생산대 일에 바삐 보내는 올케의 일손을 돕는다고 저녁이면 내가 설겆이를 담당하게 되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곱돌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었던 나는 아직도 열기가 남아있는 곱돌장사귀를 설겆이물에 넣었다. 순간 두 쪼각으로 쩍 갈라지고 말았다. 올케가 애지중지하던 곱돌장사귀를 느닷없이 깨고 나서 너무 민망하던 일이 4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결혼하고 내 살림을 꾸리면서 나는 시장에서 자그마한 곱돌그릇을 사왔다. 처음으로 사온 곱돌은 금방 기름을 바르고 길들이다가 두쪽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아마도 불이 너무 셌던 모양이다. 두번째로 사들인 곱돌은 이미 경험이 있던차라 돼지고기 비게를 정성스럽게 바르고 부엌에서 불을 때면서 천천히 천천히 길들이기 시작했다. 뿌지직뿌지직 열을 받으면서 비게가 곱돌에 스며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간도 이슥하게 지났으니 인제는 됐다 싶어 식히기 시작하였다. 기름을 한껏 먹은 곱돌은 말 그대로 반짝반짝 까만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이튿날 새로 길들인 곱돌에 감자장을 끓여서 밥상으로 들고 온다는 것이 그만 밑굽이 폴랑 내려앉았다. 곱돌은 두쪽 나고 보글보글 끓던 감자장이 산지사방에 튀였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곱돌장사귀를 들고 있던 나 뿐만 아니라 밥상에 마주앉아 곱돌장이 오르기를 기다리던 남편까지도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그다음 사들인 곱돌에는 기름칠을 하면서보니 이미 금이 간 것이였다. 누군가 끓는 물에 끓이면 쉽게 길들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 대로 한다는 것이 물에서 꺼내서 식히는 도중에 무슨 영문인지 저절로 깨지고 말았다. 이런 일들을 여러번 겪으면서도 나는 곱돌그릇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사지면 또 사들이면서 몇번째 만에 끝내는 지금의 곱돌그릇을 길들이는 데 성공하게 되였다.

우리 집에는 크고 작은 곱돌그릇이 두개 있다. 작은 곱돌그릇으로는 장이나 국을 끓이면 맞춤하다. 감자를 깎아 납작납작 썰어서 넣고 돼지고기 몇점 넣고 끓이거나 시래기국을 끓여도 맛있고 감자를 넣고 끓이다가 두부를 함께 넣고 끓여도 별맛이다. 산해진미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그 투박한 맛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호박을 별반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제철에 호박을 썰어넣고 풋내기까지 넣어 함께 푹 끓이다가 파와 풋고추를 양념으로 썰어넣고 밥상에 올려주면 몇끼는 아주 맛있게 잡숫군 한다.

곱돌그릇에 음식을 끓이면 쉽게 식지 않는다. 한끼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곱돌그릇은 추운 겨울에 사용하기 더 적합하다. 하지만 계절과는 상관없이 나는 일년 사계절 곱돌그릇을 쓰기 좋아한다. 감자장이든 시래기국이든 똑같은 장을 풀어넣고 똑같은 양념을 넣어도 남비에 끓이기보다는 곱돌그릇에 끓이면 훨씬 맛있고 맨 쌀밥이든 잡곡밥이든 채소밥이든 전기밥가마에 하는 밥보다 더 구수하다는 것이 우리 세식구의 공통의 관점이다. 곱돌그릇에서 밥을 퍼내고 밑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온기 있는 물을 부으면 열기에 물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숭늉이 만들어진다. 그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고 코끝을 간지럽히면서 페부를 파고들 때면 목젖이 저도 모르게 방아를 찧는다. 식사가 끝나고 숭늉 한모금 마시면 입안이 상큼하고 가슴까지 시원하다. 뜨거운 숭늉을 마시면서도 “아, 속이 시원하다.”는 감탄을 저절로 련발한다. 뜨거운 숭늉을 마시면서도 시원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언어사용법에 맞는지 의심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커피를 선호하는 시대이지만 우리같이 시골에서 나서 자라 잔뼈를 굳힌 사람들한테는 비싼 커피보다는 그래도 값싼 숭늉이 훨씬 더 환영을 받는다.

곱돌그릇을 쓸 때면 무의식간에 내 눈앞에는 한 청년이 떠오른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 청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청년은 어느 날인가 문득 나와 한 부서의 직원으로 만나게 되였다.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단정하게 생긴 청년이였다. 헌데 가석하게도 소문이 좋지 않은 청년이라고 곁에서 귀띔해주었다. 몇마디 건네 보니 소문과는 조금 달리 마음이 훨씬 여린 청년이였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청년이 술을 마시고 나를 찾아왔다. 맑은 정신으로는 도무지 나와 대화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술기운을 빌어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매일 누구와 싸우고 다른 사람과 손찌검을 밥 먹듯 했다고 한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잦아들어가는 목소리였다. 리유를 듣고 나서 나는 그를 남자답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긍정해주었다. 스물다섯살을 먹도록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고 긍정을 받았다고 털어놓는 그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였다.

나의 칭찬과 긍정 한마디에 좀처럼 누구한테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고독하게 지내던 그가 결국은 나한테 속심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잘하면 칭찬해주고 긍정해주고 잘못한 것은 조용히 지적해주었다. 일을 하면서 한 절차가 끝나고 다음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일 때면 가만히 귀띔해주고 사업에서 부딪친 애로도 많이 해결해주었다. 틈틈이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도 차근차근 일깨워주었다. 따뜻한 마음으로 손잡고 이끌어주었더니 그 후로 그는 눈에 뜨이게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를 향한 나의 관심과 지지는 곱돌을 달구는 뭉근한 불처럼 천천히 지펴올랐고 천천히 달아오르는 곱돌처럼 그한테서도 차츰차츰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데로부터 배움에 열정이 끓어넘치는 새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나한테 제일 첫 사람으로 결혼소식을 알려준다고 하였다.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한다고 덕담도 아끼지 않았다. 사랑의 힘은 생각 밖으로 커질 때가 있는 듯싶다. 지금도 나는 사업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언제 어느 때든 식지 않기를 속으로 늘 응원해주고 있다.

곱돌그릇을 사용하다 보면 사람도 곱돌그릇처럼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게 된다. 몸도 마음도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종일관 변함없이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는 사람, 쉽게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다가도 일단 받아들이면 따뜻한 가슴을 열어주는 사람, 기로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한걸음 한걸음씩 이끌어주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대견스러운 일일가?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남비보다는 천천히 끓어오르고 천천히 식어가는 곱돌이 우리 인생에 더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시종일관 드팀없이 내 길을 가면서도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다른 사람의 가슴을 오래오래 덥혀주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보글보글 밥물이 끓든 장이 끓든, 천천히 달아오르면서 그 뜨거움을 자체 열기로 품어서 익혀내는 곱돌그릇처럼, 또 그 열기를 오래오래 보존하는 곱돌그릇처럼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따뜻한 사랑을 품은 사람을 사귀고 싶다. 아니,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여 다른 사람한테 다가가야 하겠다. 그래야 이 세상이 따뜻한 사랑으로 넘쳐나게 되겠지.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2号 | Copyright © 200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