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두만강광장에서 만년을 즐기며 소일하는 로인들한테로 나도 자주 끼여들군 하는데 재미있는 들을 만한 얘기들이 많았다. 이야기가 고조에 오르면 장기판도 트럼프판도 동참하여 들썽들썽 활기롭고 유쾌하였다. 이야기판은 항상 오선생이 은근히 이끄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련며칠 의식주행을 주제로 이야기판을 벌려나갔다.
의
의복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서 없어서는 안되는 기본조건이다. 옛날에 벌거벗고 살던 때도 남자고 녀자고 요진통은 의복을 만들어 가렸다. 손바닥만한 나무껍질이나 짐승가죽이 그 세월에는 명표 신사복, 숙녀복이였다. 지금은 두 눈만 빼꼼히 내놓고 새끼손가락, 새끼발톱까지도 다 감싸는 례복이 있는가 하면 원시사회처럼 요진통만 가리는 례복도 있다. 가슴이고 배꼽이며 허벅지고… 드러내놓는 것을 최신류행이라고 따라배우는 젊은이들이 많다.
“최령감, 오늘은 그게 무슨 모자요? 로씨야 모자요? 한국 모자요? 네꾸다이에 색안경까지 걸구… 어데로 출장 가오?”
“양! 잔치집이 있어서.”
“쭉 빼니까 서방잰가 하겠소. 하하하.”
“의포단장이라구 우티가 날개라더니. 매무시가 사람을 따게 맨듭지비.”
“세상이 천지개벽이지!”
“이젠 50년 전이오만. 나는 장가를 갈 때 바지와 모자는 눅거리 곤색 사지천으로 했는데 우와기와 신발이 없어서 치과선생 우와기와 친구 구두를 빌어 신었다니… 안깐은 첫날옷을 우리 집에서 사돈보기 때 가져다준 눅거리 비단인가 무슨 뉴똥이라던가 그걸루 하고. 가시집은 우리 집보다두 더 구차하다 보니 광목으루 이불 한채밖에 못했지. 솜은 낡은 이불솜을 뜯어내서 하구. 지금은 이부자리가 손님이 열이 와도 문제없다구 안깐은 흐뭇해서 자꾸 외우오.”
“나는 우티 때문에 애들과 하루건너 싸움을 하오. 애덜이 한두번씩 입었다며 자꾸 가져오는데 바지구 우와기구 한 서른벌은 될 게요. 우리 집 옷장은 꽤 큰데 꽉 차서 보따리로 싸서는 벽장에 넣기까지 했소. 따창과 신은 창고에 두구. 너들이 돈이 많으문 저축을 넣든지 보험을 사든지 할 게지 왜서 옷은 자꾸 사다가는 이 성화냐! 내가 짜증을 내면 애덜이 뭐라는지 아오? 저축통장 보관도 시끄럽다오. 글쎄, 입던 걸 며칠 입으면 남들이 다른 옷이 없는가구 기분 상하게 한다오. 누굴 줄 데도 없소. 농민공 몇 사람과 물어보니 자기들도 옷이며 먹는 거며 필요 없다오. 우리가 오히려 머쓱하더라니.”
“어느 날 내가 가 몇가지 가져오기요. 우리 마을에 좀 구차한 집이 두 집 있소. 내가 물어보고 허물 안한다면 령감네 집으로 가지러 가겠수.”
“아이쿠! 고맙수다.”
“아들이 쉬는 날 차를 운전해서 가야 겠소.”
“그것 참 잘됐구만. 우리는 계속 수거상자에 가져다가 넣었수다.”
“거반 그러오. 그 방법도 참 좋습데.”
“어렵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세상이 너무 빨리 좋아지니 꿈인지 생신지 어리둥절할 때도 있수다.”
“참! 좋은 세상이지요…”
식
예나 지금이나 ‘민이식위천’이다. 먹지 않고서야 살 수 있는가?! 여북 중요하면 원님도 사흘을 굶으면 도적질을 한다고 했겠는가.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
늘 이맘 때면 어김없이 오는 오선생이 덜썽덜썽 오더니 좌중에 인사를 하였다.
“조반들 잘 드셨수?”
여럿이 반갑게 수인사를 하는데 심술통이 좀 바르지 않은 최령감이 찌뿌둥해서 말하였다.
“나는 아침을 때려치웠수.”
“아니, 어째서? 간밤에 로친이 심술을 피웠소?”
“아침에는 장물쑥을 옛날 맛으루 끓이라구 지시했는데 젠장! 또 닭알초두부에 고마이 구운 것과 이팝이 아니겠소? 내가 한바탕 역정을 내고 초두부를 가져와라! 소리 지르니 듣는 체두 않더란 말이요. 흥! 누가 겁나할 줄 알구.”
“원, 저런! 어째서 그랬을가? 진지상에 다른 건 더 없구?”
“무슨 짠 걸 묵으문 혈압이 어떻구 하며 노고지리처럼 재잘거려서… 콩나물국과 고구마를 삶은 게 밑반찬서껀 더 있긴 했소만.”
“그나저나 로친과 자꾸 떠서는 좋은 점이 없수. 전번에는 도투고기 비게를 먹자다가 밸을 썼다더니…”
“그런데, 갑자기 그 듣기만 해두 진저리 나는 장물쑥은 왜서?”
오선생이 요점을 물었다.
“글쎄 말이우. 너무 계속해서 보건이다 장수다 하면서 고급만 들이대니… 옛날 장물쑥 생각이 불쑥 나더란 말이요.”
“하! 지금이사 세상이 와늘 딴 세상이디. 우리가 이렇게 먹고살 줄을 꿈이나 꿨소? 우리 로친은 둘째 때 너무도 배는 고프구 먹을 건 없어서 기진해 누워있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글쎄 호박잎이 먹어두 될 것 같더라우. 그래서 두잎을 뜯어다가 생것 채루 먹어두 보구 살짝 데쳐서두 먹어봤는데 장에다가 찍어 먹으니 그게 그리두 별맛이더라우. 이 좋은 세상에 좀더 살다가 갈 게디…”
로친을 잃은 지 3년이 지났어두 번번이 외우고는 눈굽을 찍는 박령감이다.
“나는 매일 찰떡에 돼지방티를 삶은 메기(미역)토장국을 먹어도 어째 새나지는 않소.”
“아덜은 그렇소.”
애골친구라는 김령감과 리령감은 롱담으로 한몫을 한다.
“제일 맛있는 게 닭곰과 칼치구이요. 무스게 무스게 해두.”
“반디술 안디루사 명란이나 초두포가 데일이디.”
“도투순대 홍무재 끝이나 돼지 코, 귀는 어떠우? 꼬랑대두 별맛이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게 물과 소금이구 장물과 밥이라오. 아무리 떡이요, 김치요, 도투괴기, 쇠괴기, 닭괴기, 물괴기, 말괴기, 당나귀괴기 해보오 세번 먹으면 다 나눕소. 허허허.”
“그건 그렇수다. 때마다 다른 걸 먹어야 새나는 게 없지요. 지금 세상이야 먹을 게 너무 흔해서 대새지…”
오선생이 한마디 보탰다.
“전에두 먹을 게야 많았지. 지금처럼 로씨야요, 미국이요, 일본거요 하지는 못해도… 지금은 다 잘 먹구 잘사니까 획득감, 행복감, 안전감을 높이며 살지. 이런 게 락원이구 천당이라는 게오.”
“최령감은 늘 봐두 학식이 있더라니. 말은 제대루 했소. 그러게 로친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소. 건강하구 그래야 장수해서 이 좋은 세상에 나왔던 보람을 해얍지비. 허허.”
“최씨네는 남자덜이 마음이 곱구 녀자덜은 사무럽다던데 저 최령감은 로친을 깔아뭉개는 것 같소. ㅎㅎㅎ”
“최령감 아주마니가 의사요. 그래서 최령감의 신체가 저렇게 좋은 게요.”
“잘 먹으니 지금 다 오래 사는 게요. 벌써 점슴 때가 됐구만.”
주
지금은 집도 흔하다. 큰가 작은가 새 건가 낡은 건가하는 구별은 있지만 집이 없는 사람은 적다. 요즘은 농촌의 집들도 몽땅 새집으로 지어서 시가지보다 더 환하고 아담하고 아름답다. 전기, 수도, 가스, 화장실, 전화, 텔레비죤, 도서실… 도시보다 더 편하고 쾌적하고 공기가 좋아서 여건만 되면 정말이지 농촌에 가서 살고 싶다.
“2, 30호씩 규모 있게 건설된 새 농촌은 그대로 진짜 그림입니다.” 오선생이 한마디하였다.
“앞, 뒤, 량옆에 택지가 푼푼해서 좋기는 한데, 도깨짐승을 치지 않아서 농촌맛이 밍밍합데다.”
“그게 시끄럽기만 하구 위생이 안 좋아서.”
“그래두 손님이 오면 닭모가지를 비튼다 토닭알을 한소래 삶는다 해야 멋이지요. 농촌맛이 나구요.”
“농촌두 지금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어요. 뜨락에는 과일나무, 강냉이, 각종 푸성귀, 참외, 수박, 땅꽈리, 도마도… 요즘엔 다 군입거리랍니다. 길옆에는 시가지보다 더 아름답게 가로수고 화단이고 꾸며놓았고 집집마다 뜨락에는 꽃이 피여요.”
“조선생은 한뉘 시가지서 선생을 한 분이 농촌 실정을 어떻게 그리 자세히 아시오? 우리 시내사람들에게 얼레부끼를 하는 게 아니오?”
“우리 둘째 삼촌네 량주가 농촌에 건재해 계십니다. 우리는 한달에 두번은 꼭 삼촌 보러 갑니다.”
“어드메 사시는가?”
“초평진 북흥촌 샘물께라구 여기서 200리가 좀더 되죠.”
“그분들은 농사는 안하오?”
“밭은 합작사에 입고를 하고 목이버섯기술원을 하는데 일은 고되지 않고… 내가 볼 바에는 마치두 휴양을 하는 것 같아요. 삼촌이 말씀하시기를 썰썰할 때나 손님이 올 때나 다 먹을 게 집에 있대요. 모두 김치랭장고랑 랭동궤가 있어서 동태구, 낙지구, 돼지고기구 다 비축이 되여있대요. 집은 아담하고 포근한 것이 오성급 호텔방 같아요.”
“조선생네 삼촌네는 그렇다고 해도 다른 집들도 그렇소?”
“내가 다른 집들도 면목이 있다 보니 허물없이 돌아보았는데 우리 삼촌집과 비슷했어요. 그 마을은 정말로 말 그대로 공동부유가 되여있었어요.”
“하! 그것 참!”
일동은 머리를 연신 끄덕이며 감탄을 했다.
행
“시가지는 콩알만한데 자동차는 개미무리라니…”
“무슨 군소리들이요? 자가용이 있어보오, 얼매나 좋은가. 사람이 편안하구 시간이 절약되구… 시간은 금전이라는데.”
최령감이 불깃불깃한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며 엄숙하게 한마디를 하였다. 그는 장난감 같은 깜찍한 전동차를 타고 다닌다.
“하! 그게사 더 말할 게 있겠소? 문 앞까지 공골길을 맨들었겠다 길이 좋구 차가 많으니 급한 일에 근심이 없구… 참으로 편리하디요. 저 김령감네 아주마이가 급성맹장에 걸렸을 때 그 치분 동삼에, 그날 따라 눈보라는 어찌두 드센지 밤중에 40리 길을 술기 타고 가느라구… 지금은 흔한 게 자동차여서.”
“지금은 세상을 지구촌이라고도 합니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참새무리 날듯하고 바다서는 기선이 유람하듯 오가고 땅에서는 고속철도 고속도로가 거미줄같이 뻗어서 연길서 조반 드시구 일본서 점심 먹구 한숨 쉬고 미국 가 저녁 먹은 후 연길로 돌아와서 사우나를 하고 9시 뉴스를 본 후 편안히 잔답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됴키는 됴티만 은근히 신경이 쓰이디요. 코앞의 당마당에두 차가 있어야 가는 듈로 알구. 저낙 후에 나갈 때는 꼭 텬텬히 몰아라. 음듀운뎐을 하면 않된다… 당부를 해야 마음이 좀 딘뎡되거던요.”
“하긴 부모 맴이야 그렇긴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 얼매나 총명하고 문명하다구요. 길에서 늙은이를 만나면 꼭 차를 세우고 먼저 지나가게 하고 작은 골목에서는 소리없이 뒤에서 졸졸 따라온다니까요. 로인들 우측통행을 명심해야 해요. 젊은이들께 지장 주지 말고.”
“배는 자꾸 커지구… 나는 자동차가 고운 줄 모르겠수다. 손바닥 절반두 않되는 시내 안에서두 차를 타야 가는가 하구. 배를 꺼지우느라구 땀을 뻘뻘 흘리문서 등산인가 뭔가를 하며… 애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우습기두 하고 기차기두 하구… 좌우간 좋은 면두 있구 나쁜 면두 있어요.”
“그래두 내 전동차는 아주 제격입네다. 모두 잘 쓰면서두.”
“좋은 세상이지요!”
일동은 머리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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