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서관을 백화점이나 마트를 가듯이 자주 간다. 집에서 걸어 10여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은 한주일에 한번 정도 나의 산책코스로서 주말에는 산책도 할 겸 도서관에 한번 그냥 들려보기도 한다. 책을 빌리러, 빌린 책을 반납하러 그리고 때로는 할일없이 그냥 서가를 둘러보러 간다. 그냥 도서관 주변을 돌기도 하고 또 도서관 내부를 목적 없이 돌아다니면서 산책도 한다. 그렇게 내 일상 속에 나도 모르게 도서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가리지 않고 무엇이나 곧잘 읽는편이다. 시도 읽고 소설도 읽고 수필도 읽고 고전도 읽고 현대문학도 읽는다. 실용서도 읽고 인문서적도 읽고 자기계발서적도 읽는다. 하기에 재미없는 서가(书架)가 없다. 내 눈이 이끄는, 내 마음이 이끄는 서가 사이를 걸어 다니며 입맛에 맞는 책을 사냥한다. 이 서가 저 서가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는 책들을 고르는 재미는 나를 흥분시킨다. 무슨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접 찾아서 읽는 것도 좋지만 무심코 골라본 책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도 좋다. 이런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에 도서관이 좋다. 도서관은 책 속에 파묻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게 즐길거리가 있는 곳이다. 책을 뒤적거리면서 무언가 새롭게 배우게 되는 것도 즐겁고 그 마음을 이렇게 글로 써내려가는 것도 좋다.
가끔은 책을 고르다가 다른 사람들은 뭐하나 관찰하기도 하는데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 백발의 로인들까지 남녀로소 다양한 이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저마다 도서관을 애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서관이 갖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는 어디나 비슷하다. 책을 고르는 사람,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눈 감고 있는 사람, 책 읽는 사람, 노트북으로 무언가 쓰는 사람 등. 그런 모든 장면과 분위기를 나는 좋아한다. 도서관에서 독서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좋고 마음껏 책 사이를 누빌 수 있는 것도 재미있다.
도서관은 나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공간이다. 해마다 100여권의 책을 읽는데 읽고 싶은 책을 다 사기엔 금전적으로 벅차고 집에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을 다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운 경우 도서관은 독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읽고 싶고 소장까지 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구매하겠지만 읽고 싶지만 소장할 정도의 가치를 느끼는 책이 아니라면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도서관에서는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들고서 살가 말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책을 대여해서 읽기에 꼭 읽고 싶은 책이 아닌 책도 읽을 수 있다. 만약 책을 구입해서 읽어야 한다면 꼭 읽고 싶은 책만 읽겠지만 빌려 읽기 때문에 그럭저럭 관심이 가는 책도 읽는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읽은 책이 ‘인생의 책’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번에 대출할 수 있는 책이 열권까지이기 때문에 마음껏 욕심을 부려 책을 고를 수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렇게까지 욕심 부려가며 책을 골라야 할 만큼 나에겐 독서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아직도 회사에 다닐 뿐만 아니라 날마다 두시간씩 잔업도 하고 가끔은 토요일에도 특근을 나가야 하기에 읽고 싶은 욕망을 현실이 다 채워주지 못한다. 그래도 도서관에만 가면 빌릴 수 있는 데까지 빌리고 싶어 안달이 나니 나에게 책 욕심은 무저갱(無底坑)처럼 끝이 없다 할가? 하긴 빌린 책을 다 못 읽더라도 매주 한번씩 도서관에 가 책을 빌리는 행위자체만은 중요하다. 독서도 운동과 같아서, 계속 하지 않으면 근육이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독서, 글쓰기를 매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리듬을 살려주려고 노력한다.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책을 펼쳐서 느낌을 채운다. 2017년부터 도서관 나들이를 시작하여 그간 빌려 읽은 책이 거의 1000권이다.
독서광이자 메모광인 나는 도서관에 갈 때 꼭 볼펜과 메모장을 챙겨간다. 책을 읽을 때 순간순간 떠오르는 그 어떤 의미 있는 느낌도 좋고 꼭 멋진 말이 아니더라도 그냥 좋았던 부분이라면 메모장에 메모해둔다. 어디서든 써먹기 좋은 것이면 된다. 갑자기 떠오른 책에 관한 대화거리도 좋고, 현재 읽고 있는 책의 내용중에 맘에 드는 서문도 좋다. 사소한 것도 쓴다.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내게 필요했던 적합한 구절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구절은 빼놓지 않고 필사하거나 핸드폰으로 찍어 저장해두는데 어느 순간 내 생각이 되여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쓰인다. 이렇게 하나하나 메모장에 적고 핸드폰으로 찍어 저장한 것이 모여 나중에 나만의 마음속 서재가 된다.
기실 나는 책을 대여하여 읽기보다 소장하는 것을 선호한다. 나는 독서할 때 마음에 와닿는 문구에 밑줄을 그었다가 다시 여백에 필사하기를 좋아한다. 여기저기 펜으로 긋고 여백에 그때의 나의 감상이며 하고 싶은 말을 끄적이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은 책갈피에 눈물자국도 남기고 가끔은 책 우에 그대로 엎드려 잠들어 아침이면 흘린 침에 살짝 민망해한다. 허나 이는 대여한 책에다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하기에 생각 속에서 꺼냄이 많았던 책과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너무 좋아서 제 것으로 만들어 마음껏 끄적거리며 소장하고 싶은 책은 망설이지 않고 서점에 가 구매를 한다.
도서관에는 꽤 다양한 종류의 잡지들이 비치되여있다. 잡지코너는 잡학다식의 즐거움, 흥미진진 세상 속으로 나를 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든 각종 잡지들은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해주는 ‘지식의 영양보충제’와 같다. 우리 세대에 잡지 없이 성장한 인격체가 있을가? 기나긴 세월, 잡지는 우리와 함께 성장해왔으며 변화해왔다. 우리의 유년기나 청년기를 지배했던 잡지가 있으며 장년기나 로년기에 꼭 필요한 잡지도 있다. 나는 현재 비록 몸은 외국에 있지만 이 몇해 동안 중국의 《장백산》 잡지나 《송화강》 잡지 같은 것을 여전히 꾸준히 주문해 보고 있다. 그리고 《도라지》, 《청년생활》, 《연변녀성》, 《로년세계》 등 잡지도 가끔 중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부탁하여 한두권씩 보내오게 한다. 이렇게 잡지에 애착이 깊은 나는 매번 빌린 책을 들고 나오면서 잡지코너에 들려 약 반시간 동안 이 잡지 저 잡지를 훑어보고서는 과월호 잡지를 3권 더 빌려서 손에 들고서야 도서관 문을 나선다. 과월호 잡지는 일반도서 대출외에도 3권씩 여유로 더 빌릴 수 있다.
도서관에는 이 밖에도 다양한 신문을 한곳에서 펼쳐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신문을 읽으며 모르는 것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는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들다. 헤드라인만 읽어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얕게 나마 파악할 수 있고 사회의 큰 그림이 대충 눈앞에 그려지기도 한다. 다양한 사설들은 칼럼을 즐겨 쓰는 나에게 더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기도 하고 문화, 경제,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잡지와 같이 잡다한 지식을 던져준다. 신문가독대에서 신문을 읽어 내려가는 그 시간이 내게는 하루에 주어지는 휴식과도 같다. 세상과 통하는 창 앞에서 나는 즐거움이 가득한 지적인 휴식을 청한다.
내가 집앞 도서관을 즐겨 찾는 것은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요, 또한 이곳에는 다른 도서관보다 중국도서와 중문도서도 많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심심풀이 삼아 대략 세여본 데 의하면 여기에 있는 중문도서와 한국어로 번역된 중국도서가 도합 4000권 좌우 되였다. 그중 1층 다문화 열람실에 중문도서 3000여권이 있는데 성인도서와 어린이도서가 각기 반반씩이며 2층 종합열람실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중국도서가 800여권이 있었다. 나로서는 중국도서와 중문으로 된 도서에 더 애착이 가는데 내가 이 이태 동안 이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들 가운데 중문도서와 중국문학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두달 반 동안 도서를 모두 37권 대출했는데 그 가운데 20권이 중문도서 혹은 중국문학과 관련된 서적이였다. 이 동네로 이사온 후부터 2년 동안 여기서 빌려 본 중문도서와 한국어로 번역된 중국도서가 100권은 실히 되는데 전에는 미처 다 몰랐던 중국문학의 묘미를 즐기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이 도서관에서는 다른 도서관과 달리 지난해 5월부터는 한번에 책을 10권씩 대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번 책을 빌릴 때도 “한주 더 연장해 드릴가요?” 하고 묻는데 대출기한을 3주로 해주니 여간 편리하지 않다.
가끔 남들이 “아직도 도서관에 다녀요? 도서관에 왜 가요? 뭐가 좋아서?”라고 물으면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좋아서!”라고 대답한다. 나는 그냥 책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책이 많은 공간도 물론 좋아한다.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고 골라본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딱히 어떤 목적 없이, 그냥 그곳에 켜켜이 책이 많이 쌓여있다는 사실이 좋고 좋아하는 공간이니까 그저 머무르고 싶어진다. 허나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도서관이 좋으니 거기 가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도서관의 매력은 아는 사람만 아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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