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모시옷이 있다.
지금 사람들은 더우면 에어컨, 선풍기 등으로 열과 땀을 식히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은 통풍이 잘되는 모시옷, 베옷을 입고 여름을 났다. 화학섬유에 밀려 한동안 빛을 잃었던 자연섬유 모시옷은 어느 때부터인가 그 진가를 되찾게 되였다. 지금 거리에는 모시옷을 차려입은 녀인들이 푸술하다.
멋스럽고 기품이 있고 시원함까지 갖춘 모시옷은 입은 사람의 행동 그대로 구겨진다. 모시옷은 거짓이 없다. 낮에 입었다가 저녁에 벗어보면 내가 보낸 하루의 차분함과 허둥댄 흔적이 그대로 찍혀있다. 하루를 살아 쭈글쭈글한 삶이지만 좋은 생각이라는 물을 뿜어 이쁜 마음의 다리미로 쭉—쭉— 다려놓으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래일처럼 다음날 새롭게 입고 멋을 낼 수 있다.
모시옷은 정성으로 지어 기품으로 입는다고 했던가. 입은 사람의 조심성을 요하는 산뜻한 모시옷은 까슬까슬한 감촉외에도 통풍이 잘 되여 시원하며 가볍고 원단의 실루엣은 우아하면서도 고전미가 넘친다. 흔히들 모시옷은 두번 태여난다고 하는데 나는 세번 태여난다고 말하고 싶다.
첫번째는 대에서 껍질을 벗기고 찢고 베틀에 걸어 짜는데 녀공들의 구분에 따라 상품, 중품, 하품으로 태여나고 두번째로는 모시옷을 빨고 만지고 물을 뿌려 다리는 정성 여부로 태여나고 세번째는 입는 사람의 조심 여부에 따라 경쾌한 옷, 후줄근한 옷으로 태여난다.
올이 섬세하고 결이 고와 ‘잠자리 날개’로 불리우는 모시옷은 입자면 손이 많이 가는 반면에 아름답고 가볍고 깔깔하여 몸에 닿기만 해도 시원해 여름에 입으면 시원, 쾌적한 느낌이 들어 입고 싶어진다. 나는 여름이면 모시옷을 즐겨 입는다.
순백색 원피스 우에 민소매로 입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지… 종종 보는 이들도 시원하겠다고 말해주면 마음도 한결 청량해지는 옷이 모시옷인가 한다.
우리의 삶이 사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르듯이, 모시옷은 입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옷맵시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 같다. 탄성이 좋지 못하여 잘 구겨지고 세탁과 보관이 어려운 단점을 가진 모시옷은 입는 것이 조금은 귀찮은 듯 하나 자주 입노라면 저절로 조심하는 버릇이 생겨나 삶의 자태가 자못 다소곳하다.
모시옷을 입으면 자연히 몸가짐이 조심스러워 은근한 품위도 우러나올런지? 모시옷을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씻노라면 씨줄 날줄이 올올이 손바닥에 맞혀 짜릿해 좋고 비누거품 떠받들고 깨끗해지는 모습 또한 얼마나 정갈한지… 사느라 묻은 몸의 때도 하얗게 씻어지는 듯해 기분이 맑아진다.
개여놓으면 개인 자리가 류달리 선명해지기 때문에 모시옷은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그 걸어놓은 옷 또한 집안풍경이 된다. 옷방에 드리운 전통의 운치, 차분하면서도 숨 쉬는 듯 살아있는 매력이 넘치는 모시옷이 걸려있는 방은 청량감이 배가 된다.
한가한 날은 옷방에 들락날락 하며 괜시리 모시옷을 바라본다. 가끔은 그 옷을 바라보며 보자기에 식구들의 베옷을 싸서 발로 밟아 발다듬이질 하며 알아듣지 못할 혼자말을 중얼중얼하시던 어머니도 떠올려본다. 모시옷이 걸린 옷방에는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정적 및 추억이 아련히 흘러 좋다.
구겨질가 다소곳하게 앉는 녀성이 되고파 어제 나는 7월의 수필랑독 모임에 연록색 모시치마를 산뜻하게 입고 갔다. 바람을 품어 넉넉하고 선을 따라 고운 내 감성이 고르로와 서정수필이 얼마나 잘 랑송되던지…
씀바귀꽃 흐드러진 주정부청사 뒤산 정자에 앉아있노라니 피부에 닿지 않은 옷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게 내가 바람이 되고 모시옷 된 듯 가슴이 확 틔였다. 무릎을 내려다 보니 7월의 바람을 안고 부푼 연록색 모시치마빛이 7월의 끝자락에서 8월을 앞세우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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