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추에 인생의 황혼을 새겨보다□ 김인섭

2024-09-26 15:28:34

이른새벽 휴대폰 메시지 도착음이 울려 열어보니 “오늘은 립추, 좋은 하루 되세요!”란 친구의 인사말이였다.

고온날씨가 련일 기승을 부려 집에 붙박힌 채 한여름인 줄 알고 있었는데 돌연히 가을이라 하니 이상하게 허전한 기분이 가슴에서 감돌았다. 여직 살아오며 절기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이번 립추에는 흐르는 세월이 너무도 덧없다 느껴지며 과거에 느껴보지 못했던 야릇한 아쉬움이 굽이쳤다. 아마도 내 나이가 칠순에 올라 이젠 인생도 가을이라며 자탄하던 자의식과 맞닿아진 게 원인인가 본다.

무더위가 지속되지만 곰곰이 짚어보니 내가 사는 동네 주위에도 언제부턴가 확연한 가을 기운이 감돌고 있었는데 다만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가로수와 산중의 수목들은 록엽소의 절정기를 맞아 잎사귀마다 진록색 빛을 뿜고 있었으며 나무잎 속에 숨은 베짱이들의 대합창은 자지러져도 절주 있는 오페라로 받아들여진다. 귀찮은 모기도 주둥이 힘이 퍼그나 세져 물어놓으면 살갗이 띠끔거린다. 거미들도 몸체를 키우고 먹이 찾기에 분주했는데 그물을 쳐가며 후대를 번식하는 본능적 움직임을 다그치고 있었다. 가지각색 미물들도 기후변화에 따라 잰걸음이 어지간히 날래진 게 아니다. 세상 만물이 우주의 질서에 따라 한치의 어긋남 없이 생존을 잡도리하는 지혜는 인간의 거울이 되여도 과분함이 전혀 없을 같다. 립추에 돌입하였으니 인간세상도 대자연의 철칙에 따라 결실을 맺고 수확을 하는 잡도리를 해야 할 것이고 새 삶의 궤도에 들어가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가을을 사계절에서 수확의 절기라 한다면 그것은 하루중 황혼녘과 비견되고 인생의 단계에 비쳐보면 칠십 고희와 필적할 것이다. 확실히 이 계절의 주기적 회전을 삶에 대입해보니 우리의 한생에도 춘하추동과 똑같은 단계가 있지 않나 싶다. 즉 인간과 자연은 일맥상통하는 무한순환의 륜회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재래로 인간은 25세까지는 봄, 50세까지는 여름, 70세까지는 가을이며 이후는 고령이라고 암묵적으로 전해 내려왔다. 허나 과학이 발전하고 섭식이 좋아졌으며 산업환경이 개선되고 중체력 로동이 대푹 감소하면서 현재는 100세 시대라 웨치는 언설이 풍년을 이루고 있다. 하여 이젠 70이면 장년이고 80이면 초로라 하고 있으니 내 나이가 청춘이라 일컬어도 너무 과분한 말이 아니된다.

최근 동네의 동년배 친구들과 모임이 많아지는데 한담의 상당부분은 나이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남은 생애를 어떻게 보내는가가 이구동성의 제일 관심사이다. 그리고 지난 세월은 일장춘몽에 취해 살다가 이제 보니 기지개를 켜는 한 찰나였을 뿐 회한만이 너무 쌓였다는 후회를 한결같이 되풀이한다. 로년 심리특성다운 표출이 틀림이 없다.

옛날 아버지께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보다 길어지면 저절로 뒤를 자주 돌아본다고 하시던 말씀이 새삼스럽다. 그렇다면 내가 지난 일에 늘 매달리는 현상도 나이와 직결되는 삶의 당위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빈둥대며 허송세월은 안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그냥 아쉬움이 앞서고 손이 텅 빈 주제인 같아 노상 곤혹스럽다. 하여 기억의 곳간에 흐릿하게 갈무리된 지난 삶의 편린들을 늘 더듬게 되고 실타래처럼 엉켰던 희로애락의 조각들도 머뭇머뭇 고개를 쳐든다. 돌이켜 생각하니 기나긴 산전수전의 나날을 거치며 하늘의 리치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무모한 객기로 판단을 그르쳐 쓰디쓴 결과를 수없이 맛보기도 하였다. 하여 제딴에는 천만부당하다고 길길이 날뛰며 가슴앓이를 했던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니 70 고개에 들어서도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는 참회는 당연할 뿐이다. 사물의 시비곡직이나 고저광협의 시비가부를 차분히 따지는 슬기로움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젊은 날의 장면들이 도장 자국처럼 맘속에 찍혀있다. 탐욕과 교만이 그 흉물의 씨앗이였을 것이리라.

어린시절 자기 푼수를 확실히 헤아리지 못하고 ‘뛰여난 존재’로 되여보려는  망상으로 터무니없이 물덤벙거린 적이 수없이 있었다. 잡다한 유혹에 끌리지 말고 탐닉의 늪에 코를 박지 말며 자기 분수에 알맞게 어디에 덤벼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양나무인 주제에 홍송나무 행세를 해보려 헤매였으니 가당치 않아도 한참이나 도를 넘었었다. 오늘에 와서는 원래 석양노을처럼 곱게 물들었어야 했는데 날이 갈수록 변두리에 밀려나 성 쌓고 남은 돌이 되였다는 자비감이 괴여들고 귀중한 생을 허무하게 갉아먹는다는 자책을 늘 앞세우게 된다. 이것이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여 차례진 응분의 업보인 것 같다. 황혼기에 와서야 이 각성을 가졌으니 비록 늦기는 해도 지금을 신중년으로 삼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각성이 떠오르기는 한다. 옛 현인들이 “송충은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교시하던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 무모함이 생의 실패로 이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자기를 잘 아는 것이 잘사는 인생의 스타트라인이 될 것이다.

살다 보면 내 눈에는 빨간색인데 타인의 눈에는 노란색으로 비쳐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늘 타인과 의견 상이가 생기고 심지어 반목의 트러블까지 조성할 때가 많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 때 성숙된 인간이라면 자기 반성을 앞세우고 대방을 배려하며 손잡아야 하는데 나에게는 이런 겸허가 티끌 만큼이나 있었을가 싶을 정도였다. 남의 속셈을 귀담아들어야 협력자와 파트너가 많아지고 설자리가 넓어지며 성공 확률을 배로 올리게 된다. 이런 간단한 도리를 깨우치지 못하고 어리석은 도전으로 일관하였으니 늘 여기 밀리고 저기 부딪치는 남사스런 자작극을 잔뜩 연출하였다. 무엇이든 내가 옳다며 너덜대던 젊은 날의 내 초상을 자주 그려보면 이 각오를 가지는 데는 실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였다. 겸손한 자태로 상부상조의 그물을 짜나가야 모든 애로를 순조롭게 헤쳐갈 수 있다. 우매한 옹고집에 사로잡혀 마구 치닫는  걸 능사로 여기며 좌우를 살피지 못한 회한이 대량 남아있다.

수많은 역경과 애로를 거치며 쌓아놓은 리력과 경험도 화전위복의 자산으로 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제부터 어느 구석에서 필부의 삶을 살더라도 너절한 과욕과 헛된 집착이나 교만으로부터 해탈하며 여유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다. 이제부터는 희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와 갈등에서 벗어나 착한 이웃들과 친구들을 자주 만나며 속셈을 공유하면서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날마다 더 신선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겠다. 그리고 할 만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가급적 사회적 기여도 시도해볼가 한다. 거기에 육신의 자연치유 기능을 끊임없이 높이는 것으로 자식들을 도와주고 더 즐거운 자기를 만들가도 생각한다.

  인생이란 필경 하늘이 배당한 고정 년륜을 까먹는 긴 려정이다. 육신 생리의 전성기를 넘은 오늘에라도 가을이 배태한 진미를 깨달았으니 이 여름의 정점에 시원한 마침표를 찍어놓고 더 성숙하고 슬기론 뒤모습을 만들어볼 심사이다. 그리고 이 뇌까림이 더 젊은 사람들에게 성공을 일깨워주는 씨앗이나 처방전이 되였으면 좋겠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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