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색혈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문 진씨 가문 한 가족 5명 렬사 사적 취재 이야기 □ 전해연

2024-11-08 09:02:38

삶의 터전을 보위하기 위해, 나라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영웅들이 전쟁터에서 싸웠다. 항미원조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한 연변적 렬사 진증길도 이들 영웅중의 한명이다. 진증길 렬사를 포함한 그의 가족 5명 렬사의 혁명사적을 취재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5월이였다.

진증길의 조카딸 진혜선으로부터 진씨 가족 렬사들의 혁명사적을 전해듣고 있는 전해연(오른쪽 사람) 기자.

당시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확고히 수립하는 것을 주선으로 우리 지역의 혁명렬사 사적을 발굴하고 있던 연변일보사 광고경영부 한보신 주임으로부터 진증길 렬사 가족에 대한 취재 제의를 받았다. 그의 제보에 따르면 진씨 가문에는 진증길외에도 항미원조전쟁에서 희생한 렬사가 4명이 더 있었다.

우리는 우선 연길시 ‘로병사의 집’을 찾아 진증길 렬사의 가족에 대해 수소문했다. 진증길 렬사의 맏제수 김춘금과 그녀의 딸 진혜선이 연변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당시 김춘금은 건강상의 리유로 취재를 받을 수 없었고 진혜선이 어머니와 친척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진혜선의 서술에 근거해 진씨 가문의 족보를 그려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기록했고 후에 진증길의 사촌 동생 진태산(진봉만 아들)과도 련락이 닿아 우리가 들은 이야기들을 재차 확인했다.

진혜선에 따르면 그녀의 큰아버지 진증길(4남 1녀중 장남)은 1947년에 동북민주련군에 입대했고 2년 후에 집에 편지를 보내온 뒤로 더 이상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들은 썩 후에야 진증길이 중국인민지원군에 합류해 1950년에 조선 강원도에서 적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비보를 듣게 되였다.

진씨 가문에는 진증길과 함께 조선에서 싸운 가족이 5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진증길의 넷째 삼촌 진봉익, 다섯째 삼촌 진봉만, 사촌 형 진록산, 륙촌 형 진기동과 륙촌 동생 진은산이다. 그중 진봉만은 1953년에 부상으로 귀국하고 진씨 가문의 나머지 다섯명은 항미원조 전장에서 장렬히 희생되여 조선의 산천에 영원히 잠들었다.

한 가문 다섯 렬사, 누군가의 사랑하는 아들, 존경하는 아버지였던 그들은 민족과 나라의 아름다운 앞날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 그리고 령혼까지 깡그리 끌어모아 전장에 바쳤다. “연기가 되여 날아오르면 아들이 전사한 곳을 볼 수 있을가” 하며 그리움을 달랬던 할머니 이야기, 형의 전사 비보를 듣고 10살 남짓한 나이에 자기도 참군하겠다며 원통해했던 그녀의 아버지와 삼촌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취재 내내 뜨거운 울분과 감동이 가슴에 차올랐다.

진혜선의 핸드폰을 통해 지금도 마패촌 옛집의 벽에 걸려있다는 진증길 렬사의 사진을 확인했다. 군복을 입고 기관총을 들고 서있는 사진 속 진증길은 위풍이 당당하였다. 진증길의 뒤를 이어 그의 둘째 동생 진호산도 조선인민들의 삶의 터전을 복구하는 사업에 참여했고 셋째 동생 진호길도 성인이 되자마자 입대했다. 세월이 흘러 성장한 진씨 가문의 3세대들도 군대에 지원해 조국을 보위하는 초소를 지켰다. 그들중 일부는 현재 군관으로 되여 군영에 뿌리박고 일부는 지방으로 돌아와 각자의 일터에서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하는 데 힘을 이바지하고 있다고 한다.

홍색혈맥은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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