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남자□ 량영철

2024-12-20 09:28:05

1


“11시까지 대우호텔 뒤로 와. 기다릴게.”

세면실에서 대충 얼굴을 문지르고 식탁에 다가앉은 나에게 안해가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바빠. 손님이 있어.”

“십분이면 돼. 택시를 타고 왔다 가.”

어제 저녁에 마신 술이 아직 남아있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휘휘 털고는 한손에 삶은 닭알을 들고 좁쌀죽을 먹고 있는 안해를 건너다보았다.

“거기 뭐가 있는데?”

“민정.”

“민정?”

그러고 보니 안해의 면상이 파랗게 얼어있었다. 딸애를 유치원에 보내느라 찬 바람을 맞아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유치원뻐스는 아침저녁으로 집 아래로 와서는 딸애를 실어가고 데려온다. 그 일을 안해가 도맡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에 가면 안돼?”

생각해보니 나는 지난밤 거실 쏘파에서 잤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려는 듯 쏘파에는 내가 덮고 잔 이부자리가 총 맞은 사자처럼 널부러져있었다.

“말이 많다.”

어제 저녁 손님들과의 술자리가 끝나 집에 와보니 내 이부자리가 쏘파에 놓여있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한번 있었던지라 나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진짜야?”

안해는 대답 없이 빈 죽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갔다.

“알았어.”

아침을 먹을 생각이 싹 사라졌다.

나는 세면실로 가서 찬물을 틀어놓고 머리를 처박았다. 정수리부터 목덜미까지 찡해났다. 나는 입으로 물을 뿜으며 얼굴을 들어 거울을 바라봤다. 그 속에는 어제 저녁에 안해 곁에도 가지 못하고 아침도 먹지 못한 30대 후반의 남자가 금방 물에서 나온 수캐 같은 모습을 하고 후줄근히 서있었다.

“넌 구제불능이야.”

안해가 세면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돌 던지듯 한마디 툭 던졌다.


2


출근해서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인스턴트 커피 두봉지를 한꺼번에 타서 마셨으나 흐리멍텅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술을 많이 마셨나 봐요?”

“50명이나 되는 단체손님이 온다는데 안 마실 수가 있나.”

입사한 지 얼마 안되는 김양의 말에 나는 배를 쓸며 건성으로 응수했다. 장대표는 아직 출근을 못하고 있었다. 장대표는 어제 나보다도 술을 더 마셨다.

나는 어제 일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안해가 리혼건을 들고나올 만큼 그 정도로 화날 일이였나 생각해보았다. 고개가 저어졌다.

어제 아침 나는 출근하면서 안해한테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오랜만에 데이트 신청을 했다. 안해는 랭면을 좋아했다. 그래서 안해의 학교 근처에 있는 랭면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안해는 꽤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사실 안해와 외식을 해본 지도 참 오래되였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되여 아이가 태여났고 아이가 첫돌을 쇠기도 전에 코로나19가 터졌다. 요즘에는 또 경기가 풀리면서 밀물처럼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드바쁘다.

하지만 내가 안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은 꼭 그 까닭만은 아니다. 전날 안해가 아이를 마중해달라는 청을 못 들어준 미안함 때문이였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마중하는 일은 원래 안해가 도맡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하학 후 학교에서 회의가 있었다. 웬만한 회의 같으면 빠질 수도 있었는데 그날 회의는 직함평의를 하는 중요한 자리라서 빠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알았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헌데 말이다. 이 헌데가 문제다. 하필이면 그날 려행객중에 각기병 환자가 있었다. 젊어서 몸이 건강할 때는 괜찮았는데 근자에 들어 신체가 쇠약해지자 1년 혹은 2년에 한번꼴로 발작을 한다는 것이였다. 헌데 그 1년 혹은 2년에 한번꼴이 공교롭게 그날에 발작을 한 것이다. 가이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은 수도 없이 겪는다. 소매치기, 물건 분실, 싸움, 뜻밖의 사고… 등등. 나는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각기병 환자의 일을 다 처리하고 나서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왔을 때는 이미 안해가 아이를 마중하고 난 다음이였다. 안해는 얼굴에 잔뜩 노기를 띄고 있었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일찍 랭면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안해와 단둘이 밖에서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해났다.

나와 안해는 1년 련애 끝에 결혼했다. 가이드와 려행객 신분으로 만났다. 안해는 사범대학 출신으로 교원이였는데 연변에서 그리 오래 살았지만 장백산에는 처음 가본다며 살짝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내가 이번까지 장백산 가이드가 1000회라는 말에는 홀랑 혀를 내밀었다. 아이가 태여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코로나 팬데믹 3년은 지옥 같았다. 나는 직장을 잃고 집에 들어앉아버렸고 안해의 월급 하나에 기대여 살았다. 아이를 본다고는 하지만 남자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만 끝나면 안해한테 내 정녕코 잘하리라며 벼르고 또 별렀다.

11시 반이 넘자 나는 랭면 두그릇에 중국식 탕수육을 주문했다. 안해는 탕수육도 좋아했다.

나는 안해가 랭면을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맛있게만 먹어준다면 내 가슴 속에 꼬불쳐있던 전날 미안함은 사라지리라.

랭면이 왔다. 나는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11시 45분이였다. 탕수육도 왔다. 11시 50분이였다. 12시가 되였다. 나는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안해가 온 다음에 주문할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때 장대표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제 그 환자분 오셨네. 빨리 와야 겠어.”

“왜요?”

“오늘 돌아간다네. 돌아가기 전에 자넬 꼭 만나봐야겠다는군.”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그래도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야. 받을 땐 받을 줄도 알아야지.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오게.”

면이 불고 있었다. 좀 지나면 불어서 한덩어리가 될 터였다.

나는 식당 문께를 한번 바라보고는 안해한테는 미안했지만 내 앞의 랭면을 당겨서 먹기 시작했다.

다 먹고 휴지로 입을 닦을 때까지 안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탕수육에는 저가락도 넣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랭면집을 나왔다. 나오면서 안해에게 문자를 넣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안해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십분 더 기다린다고 엉덩이에 좀 나냐? 사람이면 량심이 좀 있어라!

추측컨대 안해에게도 그 시간에 손님이 있었던 모양이다. 리유 없이 약속을 어길 안해가 아니다. 그것만은 나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안해에게 사정이 있듯이 나에게도 사정은 있는 것이다.

랭면집에 갔다가 랭면과 탕수육에는 저가락도 대지 않은 채 돌아서는 안해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3


안해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고까운 생각도 들었다.

“먼저 들어가. 담배 한대 피고 들어갈게.”

“안 변하는 게 사람이라더니 역시 넌 안 변하는구나.”

안해는 내가 담배를 다 필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그 말이 무얼 뜻하는 것일가 생각해보았다. 나더러 먼저 사과하라는 뜻일 거라고 나름 판단했다. 안해는 평소에도 내가 녀자를 달랠 줄 모른다고 불만이 대단했었다. 녀자라는 동물은 남자 하기 달렸노라고 노래처럼 흥얼거렸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목석, 바위돌, 벽… 별의별 해괴한 별명을 다 갖다 붙였다. 전에 무슨 일인가로 거실에 내 이부자리를 내다놓았을 때도 그랬다. 이튿날 나는 눈알이 쑥 뽑혀나올 정도로 욕을 터지게 얻어먹었던 것이다. 이부자리를 밖에 내놓았을 때는 그것을 안고 도로 들어와서 달래달라는 뜻이지 거기 그냥 자빠져 쿨쿨 자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녀자가 싫다는 것은 좋다는 뜻이고 녀자가 밉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미워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안해는 련애시절부터 쩍하면 나를 ‘나쁜 놈’, ‘나쁜 놈’ 했었는데 그게 내가 진짜로 나쁜 놈이여서가 아니였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안해의 말이 궤변 즉 언어도단처럼 느껴졌지만 반박할 만한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 같이 머리 회전이 둔한 사람이 어찌 안해의 그 ‘심오’한 말뜻을 금방금방 알아듣고 움직일 수 있겠는가.

내가 안해를 리해할 수 없는 일은 또 있었다. 안해는 큰 덩치에 비해 지나가고 오는 감기를 다 했다. 감기에 걸리는 것까진 괜찮다. 치료를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굳이 나한테 말을 하는 것이였다.

“나 감기 걸렸어.”

“나 감기 걸렸다고.”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감기에 걸린 것이 내 탓이란 말인가. 나한테 감기를 쫓아낼 수 있는 마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넌 왜 개도 안하는 감기를 혼자 다 하냐?’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걸 용케도 참는다. 했다간 큰일 나는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링겔 맞아야 할 것 같은데?”

“맞아.”

“어디로 갈가? 요 아래 진료소? 아님 큰 병원?”

감기가 심해보이지 않았으므로 나는 “진료소”하고 말해버린다. 헌데 진료소에 련속 사나흘 다녀도 도대체 감기가 낫지를 않는 것이다. 결국 안해는 큰 병원에 가 링겔 한통 맞고서야 바로 나아서 돌아온다. 돌아온 안해는 진료소에 사나흘 다닌 것을 몽땅 내 탓으로 돌린다. 나 때문에 헛돈을 팔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큰 병원에 갔더라면 한방에 해결할 것을 이건 뭐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사나흘씩 자기를 고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그 뒤부터는 안해가 감기에만 걸리면 지레 겁을 먹고 큰 병원에 가라 했다. 그러면 안해는 기어코 진료소에 가는 것이였다. 신기하게도 안해 절로 진료소에 가면 하루이틀 만에 감기가 뚝 떨어진다. 욕을 먹는 건 또 내가 된다.

“넌 돈이 그리 흔하냐. 진료소에 가도 될 것을 큰 병원에 가게?”

그 뒤부터 나는 안해가 감기에 걸리면 어디로 가라는 말은 못하고 그저 “링겔 맞아”로 대체해버렸다. 그러면 안해는 또 링겔을 안 맞고 약만 먹고 감기가 낫는 것이였다.

“링겔이 몸에 안 좋대. 넌 그 나쁜 링겔을 기어코 맞으라 하네.”

그리하여 나는 안해가 감기에 들면 약 먹어라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는데 그러면 안해는 또 관심이 없네 뭐 어쩌네 하며 서러워하는 것이였다.

안해가 서러워하면 그것처럼 무서운 일도 없다. 안해가 저 먼 곳, 아스라히 먼 옛 기억마저 모조리 소환해내기 때문이다. 안해의 기억의 창고는 보물창고마냥 문만 열면 서러운 기억들이 무수히 쏟아져나왔다. 그 얘기들은 끄집어내고 또 끄집어내도 마를 줄 몰랐다. 퍼낼 때마다 새로웠다. 그리고 질리는 법이 없었다. 그중에는 안해가 아이를 낳던 날도 있었다. 그 이야기만 시작하면 안해는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안해에게 산통이 온 것은 한밤중이였다. 안해가 미리 준비해놓은 커다란 보따리를 택시에 싣고 시립병원으로 갔다. 안해는 진찰실로 들어가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헌데 한번 들어간 안해는 나올 줄 몰랐다. 나 혼자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담배 한갑을 태웠다. 안해는 새벽 다섯시쯤 펀펀해서 나왔다.

“뭐래?”

“아직 안 나온대.”

우리는 집에 돌아왔다. 그날 밤 또 산통이 일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였다.

“안 나온대?”

“돌아가서 기다리래.”

우리는 그 커다란 보따리를 보물꾸러민인 양 택시에 싣고 오고가기를 일주일 련속했다. 그제는 눈앞에 해감해나면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화만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여덟째 되던 날, 그날은 눈비가 내렸다. 비속을 우산도 없이 우리는 또 그 보물꾸러미를 끌어안고 병원으로 갔다. 안해는 또 새벽 다섯시까지 진찰실에 있었고 나는 복도에서 담배 한갑을 축냈다.

이번에는 집에 돌려보내지 않았다. 여섯시가 되자 병원에서는 안해를 분만실로 옮기는 것이였다. 나는 드디여 아기가 나오려는가보다 했다.

그런데 열시가 되도록 또 무소식인 것이였다. 기다리기에 지쳤던 나는 담당의사를 찾았다. 담당의사는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제왕절개를 하면 안되는가 하는 나의 물음에 의사는 택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다시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담배를 태웠다. 그러는데 명철이란 놈한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내가 소식이 없길래 전화를 한다는 것이였다. 나는 구구절절 실토정을 했다.

조금 뒤 녀석이 달려왔다. 와서는 눈이 우멍하게 들어간 나를 보더니 자기 마누라한테 전화를 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녀석의 마누라가 왔다.

“여긴 제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두분 어디 가서 식사나 하세요.”

그리하여 나와 명철이 녀석이 병원 바로 옆 초두부집에 왔는데 아하, 나는 왜 좀더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를 떴단 말인가, 신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을 했던지 내가 자리를 비운 고 사이에 아이가 태여나고 말았던 것이다.

나와 명철이가 초두부집에서 초두부를 시켜놓고 막 숟가락을 들려는 찰나, 명철의 마누라님께서 전화가 왔다.

“아기가 나왔어요! 빨리 와요!”

나는 밥도 먹지 못하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가 나왔는데 말이야. 간호사가 애아빠한테 아이를 보여주려고 분만실 문을 열고 애아빠를 찾았는데 말이야. 애아빠라는 사람이 없고 웬 녀자가 있다는 거지 뭐야. 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분명 복도에 있을 거라고 했더니 아니라는 거야.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그때 얼마나 실망했는지 알아?”

민정실은 3층에 있었다. 혼인등록 하는 곳과 리혼수속 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우리는 리혼수속실로 찾아 들어갔다.

그들은 이런 일에 굳은살이 박혔는지 우리가 마주 앉자 무슨 일로 왔는가도 묻지 않고 A3용지 한장을 내밀었다. 리혼사유를 적어내라는 것이였다.

세상에! 리혼이 이렇게도 쉽다니? 우리는 감정파렬이라고 적어냈다.

그외에 몇가지 부가사항을 적어내자 그들은 서류를 접수하고 우리를 돌려보냈다.

“6개월 후에 다시 오세요.”

“왜 6개월 뒤입니까?”

“혼인법이 변했어요. 충동리혼을 막기 위하여 6개월간의 조정기간을 갖기로 했어요. 6개월 뒤에도 극복하지 못하고 리혼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경우 우리는 당연히 리혼을 해드릴 겁니다.”

“아…”

밖에 나오자 내가 안해보고 물었다.

“넌 알았냐? 혼인법이 바뀐 걸?”

안해는 대답 없이 먼 하늘을 바라봤다.

“7년이구나. 너와 내가 만난 지 어느새 7년이 되였다냐.”

그러더니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민정국에 와본 감회가?”

내가 발끈했다.

“우리 아직 리혼하지 않았어! 6개월이란 조정기간이 있어!”

안해가 나를 바라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

“어쩌면 너는 여기까지 와서도 변하는 게 하나도 없냐? 옆집 남자를 7년간 봐왔어도 벌써 정들었겠다.”

순간, 나는 뒤통수를 된 것에 한매 얻어맞기라도 한 듯 띵해났다.

눈앞에 별들이 뛰여달아나고 있었다.

  안해가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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