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면+‘궈보러우’ □ 홍천룡

2025-01-03 07:40:37

생각과는 달리 미각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부감은 느껴지질 않았다. 뭐라고 할가, 칼칼함에 느끼함이 중화되고 느끼함에 칼칼함이 중화된다고나 할가.


이 한겨울에 친구들이 랭면 먹으러  가자고 요청해왔다.

‘허, 계절갈림도 없네.’

우리가 랭면관에 모여앉아 랭면 몇그릇 청할 때였다. 시간은 약속이라는 걸 모르는 친구가 늦게 도착해서 불평이 많다.

“왜 ‘궈보러우’를 안 주문했어?”

“‘궈보러우’? 한잔 하자구? 차 안 가져왔어?”

“앗따, 이 친구들 보게, 형세에다 좀 눈 맞추게. 랭면에다 ‘궈보러우’를 맞춰 먹는게 요즘 맛이래.”

“그래?”

이어 랭면에 ‘궈보러우’도 상에 올랐다. 랭면은 찬 음식, ‘궈보러우’는 더운 음식, 랭면은 조선족음식, ‘궈보러우’는 한족음식, 랭면은 시원하고 얼큰하고 칼칼한 맛, ‘궈보러우’는 달큰하고 새콤하고 느끼한 맛, 전혀 다른 음식을 한입으로 먹자니 그게 무슨 맛일가?

모두들 랭면발을 휘휘 젓다가 저가락으로 물컥 들어서 입에 물고 둬번 후르륵거리고 나서 ‘궈보러우’도 한점씩 집어 조심스레 한입씩 떼먹었다. 생각과는 달리 미각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부감은 느껴지질 않았다. 되려 은근한 맛갈로 이어졌다. 뭐라고 할가? 칼칼함에 느끼함이 중화되고 느끼함에 칼칼함이 중화된다고나 할가.

재래로 우리의 먹거리에는 이것저것 버무려서 먹은 것이 많다. 생채와 생육을 끓여서 먹기도 하고 해물에 야채를 절궈서 먹기도 했으며 밥에 누룩을 쳐서 감주를 빚어내기도 했다. 그런 퓨전은 그 음식의 영양가를 잃지 않으면서도 맛을 또 다른 맛갈로 이어내면서 그 음식의 상품적인 가치와 시중 가격을 펑! 하고 높여주고 다양한 맛과 색감으로 음식예술의 꽃을 피우기도 했다.

우리의 음식에서 퓨전의 간판으로 내걸 만한 것이 아마도 비빔밥이 아니겠는가? 남새라는 비타민군체에다 육류의 ‘해, 륙, 공’ 단백질 주력에다 콩기름, 깨기름에 그것도 모자란다고 간장, 고추장, 천일염에… 적다면 대 여섯가지요 많다면 수십종에 이르는 먹거리를 한데 막 버무려서 먹는 비빔의 그 맛, 그 영양가, 구경 어떻게 따져볼가?

요즘 관광열풍에 음식물의 퓨전풍도 쌩ㅡ 하고 불어친다. 커피도 원래의 블랙이요 원두요 아메리카노요 하던 것이 그것도 성차지 않아 근간엔 더 새롭게 첨가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과배커피요 막걸리커피요 하면서 품종개발에 신이 났다. 이런 음식과 저런 음식을 합하면 어떤 먹거리가 나올가? 어떤 새로운 맛에 무슨 영양분이 생성될가?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미식가들이 풀어나갈 연구 ‘쩨마’가 아니겠는가?

헌데 세상 일이 다 랭면에다 ‘궈보러우’를 맞춰 먹는 것처럼 후르륵 넘어가는 게 아니다. 어떤 퓨전은 사소한 배합인데 생활의 습성, 리념의 차이, 족별의 신앙 등 요소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곡절을 겪게 되기도 한다.

먼 옛날, 늦가을이 돌아오면 우리 동네 집집마다 겨울나이 준비로 김장대전이 벌어지군 했다. 배추김치, 깍뚜기, 영채김치, 갓김치, 파김치… 그중 힘들고 량적으로도 많은 것이 배추김치 담그기였다.

60여년 전, 새벽 서리가 일찌감치 찾아온 늦가을 어느 일요일이였다. 오전에 우리 집 뒤울안에서 김치양념 버무리기 대전이 벌어졌다. 할머니는 새살림을 꾸리고 나간 고모네 김장대전을 ‘지휘’하러 가고 없었다. 할머니가 없으니 엄마가 신이 나서 이래라저래라 우리를 휘동하면서 가분가분 돌아쳤다. 우리는 엄마의 지휘에 따라 마늘껍질을 바르기도 하고 고추가루에 고추씨가 많으면 김치가 빨리 무른다고 고추씨를 골라내기도 했으며 생강도 씻고 썰고 하면서 바삐 보냈다. 마늘껍질을 바르느라면 손톱눈이 아려나고 고추씨를 골라내느라면 눈물이 나며 마늘생강을 썰고 찧고 하면 코가 쨍해나며 연신 재채기가 터졌다. 어린아이들로서는 정말 참기 어려운 고역이였다. 그랬어도 그때는 왜 그처럼 신바람 나게 일했을가?

내가 돌절구에다 마늘을 한고패 찧어냈을 때였다. 엄마가 자그마한 남비에다 희멀건 죽 같은 것을 담아들고 나왔다. 순간, 생선 비린내가 훅 풍겼다. 뭔가 여겨보니 젓갈이였다. 손가락 끝에 살짝 묻혀 맛을 보니 쨍하게 짜가웠다.

“엄마, 이렇게 짜고 비린내 나는 걸 왜 김치에 넣어?”

“너 젓갈김치를 못 먹어봤지? 이제 엄마가 한 걸 먹어봐. 얼마나 맛있다구 그래.”

“정말?”

그때 할머니가 울안에 들어섰다. 엄마는 무슨 잘못을 저지른 애가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듯 할머니의 기색부터 살핀다.

“어마이, 왜 벌써 돌아오셨슴둥?”

“에그, 가보니까 벌써 갸네 시집마을에서 바깥사돈까지 주렁주렁 다 출동했더라. 그런 복새판에 왜 눈치코치 없이 삐치겠니. 그래서 인사말이나 남기구…”

목에 감았던 수건을 풀던 할머니가 홀연 말꼬리를 흐리며 코를 벌름거렸다.

“에미야, 이게 무슨 냄새야? 비비한게… 생선거리를 사왔냐?”

엄마가 젓갈이 담긴 남비를 할머니께 보이면서 자기의 의도를 내비쳤다.

“어마이, 금년엔 김치양념에다 젓갈을 섞어볼가 해서요. 젓갈이 들어가면 김치가…”

“안된다!”

할머니가 대뜸 검푸른 눈빛으로 단호하게 엄마의 말허리를 잘랐다.

“어마이, 젓갈이 들어가도 김치가 숙성되면 비린내도 없어질 뿐만 아니라 맛도…”

엄마가 할머니를 설복시키려고 해석을 가하자 할머니가 거세게 손사래를 쳤다.

“시끄럽다. 내가 이 집안에 들어서부터 김장할 때마다 종래로 잡내를 섞은  적이 없네라. 이 집안이 무슨 집안이였는데! 옛날엔 량반댁이였어. 량반댁에서는 절대 음식에다 잡내를 제멋대로 섞는 법이 없었거든…”

할머니가 젓갈문제를 ‘량반댁’ 높이에까지 끌어올리며 준절하게 꾸짖으니 엄마의 기색도 하얗게 질렸다.

“애구머니나, 난 모르겠습꾸마! 맘대루 합소.”

엄마가 앵 토라져 안방으로 훌 들어가버렸다.

그 후부터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랭전이 지속되였다. 그 이듬해 겨울에 엄마는 녀동생을 낳고 젖이 돌아서지 않아 애를 먹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지병이 도져 첩약을 쓰게 되니 더구나 입맛이 떨어져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루는 할머니가 물만두가 담긴 옹배기를 내주며 나더러 철이네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라고 하였다. 철이네는 원래 경상도출신이라 말투가 ‘남도치’였다.

“에그, 이걸 가져왔노. 니 할매 솜씨 이만저만 아닌 거라. 맛있게 먹겠데이.”

철이네 할머니는 옹배기의 물만두를 다른 그릇에 쏟아놓고는 김치움에서 내온 배추김치를 그 옹배기에 담았다. 음식 보내온 집에 빈그릇을 보내는 법이 없다는 동네인품이다. 그걸 들고 오니 할머니가 몸소 김치를 썩썩 썰어서 접시에 동그랗게 담아놓고는 김이 몰몰 나는 이밥도 떠놓았다. 그리고는 나를 불러 엄마한테 가져가라고 했다.

“아침에 물만두도 안 잡수시던데요?”

“잔말 말고 들여가! 그리구 김치는 철이네 거라구 해.”

나는 그걸 들고 엄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금방 지은 햇밥이야. 김치는 내가 철이네 집에서 가져온거구.”

“그래?”

생각 밖에 엄마는 천천히 일어나 머리를 한참 다듬고 나서 가볍게 숟가락을 드는 것이였다…

그 후 엄마와 할머니 지간에 얼어붙었던 랭전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또 한해가 지난 김장철이였다. 온 집안이 동원되여 복새판을 벌렸다. 오직 녀동생 홍희만이 엄마의 등에 업혀 호기심 때문에 머리를 팩팩 돌리고 까만 눈이 초롱초롱 빛날 뿐이였다. 다들 빻고 찧고 다듬고 썰고 무치고 해서 김치양념을 한 대야 골똑 버무려냈다. 엄마가 양념이 담긴 대야를 오지독 우에다 놓고 그걸 갈라놓을 그릇들을 당겨오려고 무릎을 꿇고 팔을 내밀 때였다. 등에 업혀있던 홍희가 그 발그무레한 양념이 맛있는 먹거리로 보였는지 몽톡한 팔을 쑥 내밀어 양념이 담긴 대야를 잡아당겼다. 찰나, 양념이 담겼던 대야가 한쪽으로 기울더니 꺼꾸로 엎어지면서 그대로 양념을 몰착 흙바닥에다 쏟았다. 온 오전 부산을 떨며 해온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걸 어쩐다? 엄마가 하도 속상해서 뒤손질로 홍희의 엉덩이를 연신 짝짝 쳐댔다. 그러자 내게 무슨 죄가 있느냐는 듯 홍희가 섧다고 앙앙 울어댔다.

“쬐꼬만 계집애가 담도 크구나. 겨우내 김치 없이 우리 무얼 먹을가, 요것아?”

할머니가 엄마의 등에서 홍희를 떼내여 안고는 울 밖으로 나갔다.

“자, 그쳐! 저 ‘남도치’ 할매한테 가 맛있는 걸 먹을가?”

엄마는 한참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궁리해보더니 집안으로 휭하니 들어갔다. 우리는 양념이 쏟아진 자리에서 쓸고 닦고 하면서 다시 할 준비를 해놓았다. 미구에 엄마가 나들이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때 할머니가 홍희를 안고 울안에 들어섰다.

“에미야, 어디 서시장으로 갈라고? 점심 때거리도 지난 것 같구나. 아무리 바빠도 애들 배를 곯겨서야 되겠니?”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배가 꼬르륵거리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엄마가 시장행차를 포기하고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동갑이 있노?”

울안에 들어서는 철이 할머니의 두 손에는 큰 대야가 들려있었는데 불그무레한 김치양념이 반쯤 담겨있었다. 자기네 김치를 버무리고 남은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했고 엄마는 못 받는다고 사양했다.

“어마이, 철이네 김치양념에는 젓갈이 들어갔는데두…”

“내가 그걸 모르겠냐? 그래서 동갑더러 젓갈만 빼구 가져오라고 했능기라.”

“한데 막 버무려진 건데 어떻게 젓갈만 뺄 수 있나요?”

“그러게 남도치는 ‘먹을럭귀신’이구 우리 북도치는 ‘량반탈샌님’이라지, 허허!”

그 말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그때 철이 엄마가 꽃밥통을 들고 들어섰다.

“이 집에서 여직 점심 전이락꼬 대충 에때울라꼬…”

밥통 덮개를 여니 토실토실 터지게 삶은 알감자들이였다. 우리가 확 몰려들어 한꺼번에 두세개씩 잡아채고는 한입에 한알씩 물고 우물우물 씹었다. 세상에! 그때 그 감자가 얼마나 맛있던지 지금 칠순 나인데도 그 생각만 하면 입안에서 감미로움이 감도는 것만 같다…

지난해 어느 땐가 장마당에서 시골아줌마가 지고 온 토실감자를 몇근 사다가 로친더러 푹 삶게 했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녀석을 데려다 놓고 미각부터 자극했다.

“얘, 이 감자가 영 맛있어, 왕맛이거든! 너 하나 먹어봐!”

녀석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나 쥐고 한입 베여 물었다. 그러더니 오물오물 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겨우 넘기였다.

“어때, 맛있지?”

“할아버지 거짓말쟁이야!”

“할아버지 언제 거짓말 했어?”

“영 맛없는 감자를 영 맛있다고 했잖아?”

‘어허, 이 녀석 봐라, 토실토실 터지도록 삶아내서 맛이 일품인데두…’

결국은 손주놈한테 한매 빵! 얻어맞은 격이 되였다. 후에 며느리와 그 얘길 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신토불이식 원맛에 맛을 못 들였거든요. 늘 복합적으로 가공된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이니까…”

하여 그 다음번엔 감자를 손가락처럼 가늘게 썰어서 살짝 쪄내고 또 올리브유에다 바싹 튀겨냈다. 거기에 콩, 깨, 설탕에 땅콩, 아몬드 등 가루로 낸 혼합고물을 톡톡 쳐놓았다. 보기에도 맛갈스러운 주황색을 띠고 풍기는 냄새도 고소했다. 녀석은 먹으라고 하기도 전에 벌써 한두개 집어서 먹었다. 오물오물 씹으면서 엄지척까지 쑥 내민다. 맛있게 먹어주는 녀석이 얼마나 고맙던지…

“얘, 기실 이게 전번에 그 토실감자야!”

내 말에 녀석은 오물오물 씹던 것을 꿀떡 삼키고는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할아버지 또 거짓부리야?”

“거짓부리 아니야. 정말루 전번에 그 토실감자라는 데두…”

녀석이 안 먹는다고 벌떡 일어났다.

“할아버지, 전번 건 땅에서 자란 감자구 오늘 건 치킨빠 칩처럼 한게 아니구 뭐예요?”

로친이 녀석을 끌어안으며 나를 원망했다.

“아이고 로망났네. 맛있게 먹는 애를 좀 먹게나 할 게지…”

‘어허, 이런… 입맛이 다르니 말도 통하지 않고 공감도 안되네…’

이처럼 음식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입맛도 변했고 음식문화에 대한 리념도 달라졌다. 이러한 퓨전풍은 음식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까지 퍼지고 있다. 례컨대 음식과 예술의 퓨전, 환경과 생활의 퓨전, 운동과 건강의 퓨전, 민족과 혼인의 퓨전…

며칠 전 한 지인이 딸애가 외국남자와 결혼한다며 자랑 끝에 청첩을 보내왔다. 결혼식장 잔치상에 모여앉은 하객들 사이에서 흥미 있는 얘기들이 오고갔다.

“혼혈 아이가 총명하고 예쁘다는데…”

“그게 진정 융합이라구. 축하! 한잔 쭉—”

모두들 크게 웃었다. 이제 퓨전풍이 더 세게 불어치면 이 사회가 한결 더 조화롭고 다채로운 컬러세계로 번질 게 아니겠는가!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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