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에 갓 참가했을 때, 자취생활을 하던 나는 오랜만에 집에 갔다가 갑자기 나에게 관심을 꺼버린 듯한 어머니의 태도에 적잖게 놀란 적이 있다.
술덤벙물덤벙하는 나는 스무나문살이 되여도 자꾸 사발같은 것을 떨궈 깨면서 자잘한 사고를 치곤 했는데, 예전같으면 잔소리 한바가지를 퍼부었을 법한 어머니가 덤덤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였다.
이런 변화에 습관이 되지 않아 동생한테 얘기했더니 “에전에 고중 때 나도 큰 사고를 쳤다가 비자루몽치에 먼지나게 맞은 적이 있지”하고 옛날 얘기를 끄집어낸다.
어쨌거나 그때 나는 드디여 잔소리에서 해방되였다는 것에만 신명나 했을 뿐, 대신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소리소문없이 두 어깨에 지워졌다는 것은 미처 의식하지 못했었다.
어릴 적, 우리는 집안 어르신들이나 선생님에게 잔소리를 자주 들었다. 이래라 저래라, 또는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하는 금고주같은 잔소리는 정말 해맑던 심정에 끼얹는 재 같았다고나 할가, 정말 그 시절엔 괴롭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사실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고, 사회의 규범에 맞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을 담아서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다만 살기 바빠서, 또는 교육에 관한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어른들이라서 그 가르침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 뿐.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우리는 그 자유를 갈망하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어린 시절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제한하고, 규률을 강요하던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어릴 때처럼 누구의 지적을 받을 일도 없으며 그로 인해 우리 행동을 제어하는 외부의 압박이 사라지게 되니 이 얼마나 오금 저린 행복인가.
잔소리의 부재로 인해 홀가분함을 느낀지 얼마 되지 않아 현실의 민낯과 부딪쳤다. 아무도 나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으니 점차 스스로의 행동을 관리하는 데 소홀해졌고, 좌충우돌 더듬어나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치 필림카메라를 쓸 때는 신중하게 사진을 찍지만, 디지털카메라를 쓴 후로는 셔터 누르는 것을 아끼지 않듯이.
성인이 되면 곁에서 잔소리해주는 사람이 적어지는 대신 오히려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규범을 스스로 지키도록 해야 한다. 사회는 성인들의 무언의 약속으로 조화롭게 굴러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편한 선택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싶은 대로 행동하는 어른이 많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 것이다.
어려서 그토록 싫어했던 잔소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누군가 잔소리를 해줄 수 있는 상황이 고맙게 느껴진다. 사회는 생각보다 랭혹해서 타인의 실수에 진정을 담아 잔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적다. 만약 있다고 해도 많게는 관심의 탈을 쓴 비아냥이거나 주제 넘은 삿대질로 치부되기 때문에 모두 말을 아낀다.
인생길에 훌륭한 멘토가 있으면 10년은 적게 분투해도 된다는 말이 있다. 학교나 직장 내에서의 규칙이나 례의, 인간관계에서의 기본적인 도리 등을 옳바르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배우고 실천한다면 동년배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어른이니까 누구의 잔소리도 필요없다”라는 생각이 자리잡으면 자칫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놓치게 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기 반성과 자기 통제력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의 행동을 책임지며, 옳바르게 행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잔소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은 분명하다. 외부의 압박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나아갈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성인이 되면서 얻게 되는 중요한 자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자유는 책임감과 함께해야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굴레를 그토록 싫어했던 말이 굴레를 벗은 뒤 결국 조심하지 않아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그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잔소리가 없어진 성인이 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남의 말에 얽매일 필요가 없지만 만약 누가 잔소리를 해준다면 겸허한 자세로 귀를 열고 들을 준비는 되여있어야 한다. 만약 잔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른이 갖는 진정한 자유이다.
즉 성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를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자유는 없다. 잔소리의 부재로 바꿔오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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