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매력 최미화, ‘무모한’ 도전이 피워낸 꿈

2025-02-14 08:09:47

특유의 소탈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소품계에서 팔색조 매력을 뽐내는 최미화(48세), 안방극장의 ‘비타민’이 사실 처음부터 유치원 교원이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7일에 있은 인터뷰에서 최미화는 연변제1사범학교 유사반을 졸업하고 연길시6.1유치원에서 10년간 교원사업에 종사했다고 소개했다. 그 기간 유치원 탄지부 서기를 겸하면서 제1기 길림성교수능수, 연변골간교원, 우수당원 등 영예를 받아안기도 했다.

◆꿈 향한 ‘무모한’ 도전

어려서 유난히 활발하고 표현력이 풍부했던 최미화는 학창시절 이야기경연에도 자주 참가했는데 어느 한번 심사위원은 최미화에게 “발음이 좋고 표현력이 강해 나중에 아나운서나 배우가 될 기질을 타고났다.”고 평가했다. 이 말은 최미화의 어린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고 지금 돌이켜보면 일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최미화는 그 꿈을 좇아 결국 1997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아동프로 사회자로 발탁이 되였고 음력설야회 사회도 맡아보는 등 결국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었다.

유치원 교원을 하면서도 오후 휴식시간이면 아이들을 재워놓고 홀로 거울을 보면서 울고 웃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동료들에게 들키기도 했는데 주변사람들은 그녀에게 연변가무단 화극부에 가 시험을 쳐보라고 응원해주었다.


◆쉽지 않았던 배우의 길

최미화가 연변가무단 화극부를 찾아갔을 때 사람들은 그녀의 무모한 도전에 한번 놀랐고 춤과 노래를 너무 못해서 두번 놀랐다고 한다. 저으기 실망하는 면접관들 앞에서도 최미화는 기죽지 않고 조기천의 시 <조선의 어머니>를 랑독했다. 풍부하고도 섬세한 감정독은 결국 면접관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미구에 합격통지가 내려왔다. 최미화는 유치원 교원으로부터 성공적으로 연변가무단 화극부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길을 자신만만하게 시작했지만 현실은 록록치 않았다. 전업지식이 결핍한 탓에 실수가 잦았고 그 실수는 주변 동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해서 선배들에게 눈뿌리가 빠지게 꾸중을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인 최미화는 늘 상대 배역을 붙잡고 한번만 더 연습하자고 지청구를 들이댔다. 동료들도 그녀의 정성에 감화되여 한두번에 끝낼 연습도 밤늦게까지 지도하고 호흡을 맞춰주군 했다.

“저의 상대배우가 운이 나쁜 거죠. 하하. 대신 저는 반찬이랑 만들어 나눠드리기도 하고 맛집에 가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면서 오직 작품 완성을 위해 나름 공을 들였어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연변가무단 화극부 배우로 10년간 사업하는 동안 최미화는 해마다 음력설야회 소품에 출연해서 관중들에게 진한 눈도장을 찍고 녀배우로서의 커리어를 확실하게 쌓았다.


◆고난은 ‘선물’,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늘 주변에 해피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쾌활한 성격의 최미화이지만 리면을 들여다보면 부지런하고 의지 굳은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한때는 친동생이 백혈병에 걸려 생사를 다투는 바람에 치료비를 부담하기 위해 가이드, 사회자, 교원, 배우 등 여러가지 일을 병행하며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삐 보냈던 적도 있다.

“나를 거꾸러뜨릴 수 없는 역경은 나를 성장하게 한다는 말을 기억합니다. 그 고생 덕분에 나는 건강을 더 챙기게 되였고 나의 잠재력이 이렇게 놀라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난은 ‘선물’이기도 합니다.”

사실 배우의 길을 선택한 데 대해 후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우수당원, 우수교원 등 수많은 영예로 주렁졌던 교원생활에 비하면 작은 배역조차 잘 차례지지 않았고 주연배우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배우생활이였다. 무대에 오르는 날보다 선배들의 의복과 소품을 챙기는 날이 더 많았어도 견뎌냈던 그녀가 결국 “가무단에 갔다고 들었는데 왜 무대에서 볼 수 없죠?” 하고 물어보는 옛 유치원 학부모들의 질문에는 얼굴을 붉히며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무명시절도 이제는 한잔 술에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게 되였다. 최미화는 힘든 하루든 즐거운 하루든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


◆자페증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보금자리

꿈을 이루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전업도 놓기 아쉬웠던 최미화는 연길시이화애심유치원 원장을 거쳐 ‘천사의 집’아동활동중심 원장을 맡아 운영했다.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찬 ‘천사의 집’ 유치원. 이곳은 일반 유치원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최미화는 ‘천사의 집’을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일반 아이들로 가득찬 평범한 유치원을 꿈꿨다. 그러나 어느 날 자페증을 앓고 있는 아이가 찾아오면서 그녀의 유치원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페증을 가진 아이의 부모님이 찾아와 아무 데서도 받아주지 않아 다섯살이 되도록 유치원을 못 가고 있다면서 받아달라고 하셨어요. 그분의 사연이 너무 딱했고 간절한 그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죠.”

최미화는 그때의 심정을 떠올리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자페증 아이들을 받기 시작한 이후, 자페증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부모들도 있었고 몇몇은 유치원을 떠나기도 했다. 최미화는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자페증 아이들의 부모들이 보여준 신뢰와 감사의 눈물을 보며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타 아이들이 유치원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아픈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더 큰 아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미화는 그때의 결심이 오늘의 ‘천사의 집’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천사의 집’은 시간이 흐르며 자페증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로 자리잡았다. 아이들은 최원장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갔고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의 변화를 보며 위로와 희망을 얻었다.

얼마 전부터는 또 자페증 아동 전문진단 및 상담전문가를 요청해 함께 공동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최미화는 소개했다.

자페증 아이들을 돕는 현장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최미화는 앞으로 소품이나 웹영화 등 분야와 결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향력을 사회에 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회 각계가 자페증 아동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희망사항을 밝혔다.

“이 아이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한편 최미화는 연변동화구연표현예술협회 회장, 연변녀성발전촉진회 차세대 회장, 전국 예술특장생 연변양성기지 책임자, 연길시천재유치원 원장, 연변천사락탁아유한회사 법인대표이기도 하다.

  리련화 기자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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