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시간도 풍경이다□ 김은희

2025-03-07 07:33:22

《면도날》은 영국의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이 쓴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1930년대 유럽, 험난한 구도의 길을 선택한 젊은이를 통해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풍요와 야망의 시대를 배경으로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한 젊은이의 려정을 그린 이 소설은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와 함께 서머싯 몸의 3대 장편소설중 하나로 꼽힌다.

시골에서 평범하게 자란 청년 래리, 하지만 1차세계대전에 참전해 친한 동료가 눈앞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목격한 뒤로 그의 삶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안정된 직장과 약혼녀,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모두 포기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답을 찾아 먼 려행을 떠난다…

한편, 래리의 주변 사람들도 저마다 인생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사랑 대신 화려한 생활을 선택한 래리의 약혼녀 이사벨, 대공황 때 빈털털이가 된 재벌2세 친구 그레이, 운명의 배신을 견디지 못한 꼬마 아가씨 소피 등은 세상과 부딪치며 자신의 삶을 펼쳐나간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세속적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한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축은 주인공 래리의 구도적인 려정이다. 비록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유복한 후견인 집안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란 래리는 여느 젊은이들처럼 골프도 즐기며 취미가 많은 평범한 청년이였다. 어려서부터 사귀여온 녀자친구와의 결혼도 아무런 장애 없이 받아들일 만큼 그의 미래는 순탄해보였다.

하지만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소박한 기대로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로 래리의 삶은 보통의 젊은이들과는 다른 궤도에 들어선다. 부대에서 친해진 쾌활한 친구가 교전중에서 자신을 구해주고는 눈앞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삶의 날카로운 일면을 경험한 그는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론적 질문들에 사로잡힌다.

결국 래리는 안정된 직장과 결혼을 앞둔 약혼녀, 평범하게 상류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버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답을 찾아 먼길을 떠난다. 그 구도의 려정은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에스빠냐와 이딸리아의 곳곳을 돌아 마침내 인도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면도날》은 이 혼돈을 소모적인 허무주의나 현실 도피로 련결하지 않는다. 세속적인 허영과 불안에 주목하기보다 래리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몰입한다.

이것은 서머싯 몸 자신의 관심과도 일치한다. 실제로 몸은 젊은 시절 인도 려행을 통해 많은 철학적 령감을 얻었으며 그 경험을 이 소설에서 생생하게 녹여낸다.

하지만 래리의 약혼녀 이사벨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래리와 전혀 다른 결단을 내린다.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함께 자라서 래리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는 이사벨이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래리가 예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져 불안해한다.

사랑 대신 안정되고 화려한 생활을 선택한 이사벨은 래리의 친구이자 재벌2세인 그레이와 결혼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사벨을 단순히 악녀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순수하고 욕망에 솔직한 사랑스러운 녀성으로 그린다. 그녀 뿐만 아니라 무리한 고집으로 사업을 벌리다 빈털털이가 된 그레이나 남편과 아이를 잃고 미쳐버린 소피, 빠리 사교계의 지독한 속물 엘리엇마저도 작가는 ‘사랑할 만한’ 사람이였다고 말한다.

몸은 여러가지 희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이 시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아름답게 진렬한다. 결국 그것이 개인적인 행복이나 리기적인 욕망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 소설의 인물들은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에 당당하고 그것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세속적 삶  속에 숨어있는 성스러움의 씨앗을 볼 수 있다. 세속적 삶과 가장 동떨어진 래리조차도 긴 려행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현실과의 접점을 만들어나간다. 이로써 작가는 시끌벅적하고 서로 부대끼는 구체적인 현실이 마냥 천박하고 비루한 것이 아니라 성스러움을 구현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의 독특함중 하나는 작가 자신이 소설 속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작품 속 조연인 몸은 때론 인물들의 가까운 이웃으로, 때론 몇년  동안 련락이 닿지 않는 옛친구로 그들의 삶을 전해준다. 소설 속 몸은 명백히 가공된 인물이지만 작가라는 직업과 이름이 똑같을 뿐만 아니라 취미, 버릇, 성격 등 실제 자신을 모델로 실감 나는 이야기를 창조한다. 또한 이러한 참신한 설정을 활용해 작가는 이야기 밖에서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몸은 ‘구원’이라는 다소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특유의 명쾌하고 간결한 문체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소설은 재미를 위한 것’이라는 자신의 문학관을 이 작품에서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치밀한 구성으로 주인공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이 발산하는 젊음의 색갈들을 고르게 펼치는 이 작품은 이 시대의 움츠러든 청춘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든 나쁘든 모두 생명 속의 풍경이다. 맞든 틀리든 모두 경력이 된다.

  《면도날》은 방황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열성적인 후원자는 아닐지라도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레일을 뛰여넘은 래리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숭고함을 절대시하기보다 가치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 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의 삶에서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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