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말은 거창해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이는 단순히 인간을 신체 구조적으로 탐구하는 생리학이나 인간 심리 구조를 분석하는 심리학이 아니다. 또는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따져보는 사회학도 아니다. 문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본성은 결국 철학적인 접근만 가능한 분야이다. 결론적으로 문학이란 인간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학성이 높은 글이란, 인간의 본모습을 깊이 있고 진솔하게 드러내는 글이 될 것이다. 즉 문학 쟝르와 별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순 재미를 목적으로 한 글이라도, 작가가 인간에 대해 깊이 리해하고 이를 탁월하게 표현한다면 그 글은 문학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19세기 로씨야의 대문호들이 널리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리유도 그들이 인간의 본성을 글속에 섬세하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인간에 대한 리해 없이 단지 ‘문학’이라는 이름만을 위해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많다. 작가라는 신분을 사랑한 나머지 글을 쓰는 사람들 말이다. 글을 쓰는 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문학을 부르짖어도 문학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문학은 단순히 스토리나 문장의 라열이 아니다. 인간의 삶과 감정, 경험에 대한 려과 없는 표현이다. 그래서 문학은 인간의 본모습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한다.
문학은 인간의 민낯이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포토샵을 거친 가식의 모습이 아니라 번민, 고뇌, 처량함과 더러움까지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짜 인간이 보이고 그런 진솔함이 문학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대부분의 독자는 어리석지 않다. 그래서 가식적인 글은 독자의 눈에 티가 난다. 아프지 않은 것을 아프다고 하고 공감한 적 없는 고통을 담아낸 척하는 것은 싸구려 향료를 사용한 향수처럼 급 떨어지는 냄새가 난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직물을 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어와 문장들을 보기 좋게 엮어서 무늬를 만들고 질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런 질감과 무늬를 느끼고 만져보고 나서 맘에 들면 자신한테 맞게 재봉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가식인 글은 만져보면 부슬부슬 부서져내린다. 부실공사처럼 시간이 내리누르면 무너져내린다. 이런 글을 선호할 독자는 없다.
좋은 글은 밀도와 질감 모두가 훌륭하다. 글쓴이의 진심이 꾹꾹 눌러담긴 덕분에 밀도가 높아진다. 같은 분량에도 여러번 읽게 되고 매번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 글들이 그러하다. 또한 이런 글들은 밀도 덕분에 어느 정도 력량을 갖추지 않으면 그 글의 무게를 쉽게 감당할 수 없다. 이 무게는 바로 그 작가가 리해하는 인간의 무게이다. 작가는 인간을 해체하여 글에서 재조합한다. 때문에 인간에 대한 리해가 깊을수록 글의 밀도는 한층 높아진다.
글은 또한 밀도 뿐만 아니라 질감도 지니고 있다. 이는 작가의 문학적 재능과 관련된다. 독자가 감성이라는 도구로 만져봤을 때 그 질감은 드러난다. 좋은 질감을 가진 글은 쉽게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다양한 감성을 이끌어내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물론, 《율리시스》처럼 선행 문학 지식을 갖춰야만 그 글의 질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이는 작가인 조이스가 문학적인 퍼즐을 만들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에 대중적 접근성이 좋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이 공감할 만한 질감을 갖추는 것은 문학작품에서는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질감이란 무엇일가?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 움직이면 좋은 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문학을 체험하는 주된 수단이 바로 감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문학, 즉 훌륭한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니체는 인간이 초인이 되기 위해 세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즉, 락타와 사자와 아이의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첫째 단계인 락타는 온갖 짐을 지고 가는 짐군이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다양한 부담을 기꺼이 짊어지고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힘을 기른다. 그 힘으로 우리는 인간을 해체하고 인간의 본질을 더 깊이 리해하게 된다.
이번엔 사자의 단계이다. 사자는 당당히 자신의 가치를 확립하는 자이다. 문학에서 우리는 독립된 사자의 정신으로 인간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정의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아이의 단계이다.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자이다. 문학 창작의 최종 단계에서 우리는 아이가 되여 글을 쓴다는 즐거움에 빠져야 한다. 락타의 단계에서 쌓은 력량과 사자의 단계에서 다진 자신의 개성으로, 아이처럼 천진란만한 즐거움에 빠져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잉태된 작품의 밀도는 매우 높아서 더 이상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요, 뛰여난 질감으로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리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문학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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