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모든 면이 느립니다. 태여날 때부터 예정일을 넘겨서 늦게 태여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지인이 얼마 전 속상하다며 토로했다.
한마디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굼뜨고 느려서 속이 터질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물론 아이가 빠릿빠릿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무엇이든 눈치 빠르게 척척 알아차리고 움직여줬으면 하는 것은 아마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느림도 느림 나름이다. 물론 행동이 굼뜬 것과는 별개로 아이의 ‘처음’이 느린 것은 부모로서 덤덤히 받아들여야 할 마음가짐이 필요해보인다.
한 연구지의 론문에 의하면 언어나 걸음걸이가 늦은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오히려 총명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정상적인 아이가 말을 번지거나 걸음마를 떼는 것이 늦어진다고 해서 결코 발달 또는 인지가 늦다기보다는 아이 성격상 ‘성공시킬 확신이 없어서’, ‘똑부러지게 해낼 자신이 없어서’, ‘조심성이 많아서’ 등 아이의 나름 대로의 생각이 남들과 달라서 다소 늦되게 보일 뿐이지 결코 발달이 늦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전문가의 소견이 지배적이다. 그럴 때는 느림을 다그치기 보다는 오히려 아이의 늦됨을 인지하고 때를 기다리면서 아이를 믿어주고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부모로서의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는 성장 자체가 ‘느림의 캐릭터’였다고 한다. 어릴 때 그는 성격이 소심하고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 데다 중학교 때까지 공부가 결코 뛰여났거나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그는 “공부는 물론 모든 면에서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남들보다 뛰여나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조심성이 많다 보니 남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앞장에 서기를 두려워했다. 그렇다 보니 남들의 눈에는 아마 내가 판단력이 흐려지고 결단성이 없는 행동이 느린 아이로 비춰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크 주커버그는 행동이 비록 남들에 비해 느렸을지 몰라도 생각이 결코 느린 것은 아니였음을 전세계에 증명했다.
“오히려 ‘느림’이 나로 하여금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느린 생각’이 급하게 뭐든지 1등으로 해내기보다는 한번쯤은 스스로를 다시 뒤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였다.”
후날 페이스북의 설립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느림’에 대한 철학적 마인드를 설파한 적이 있다.
격변하는 요즘 시대에서 어찌보면 우리는 모든 면에서 늘 앞장서야 되고 업그레이드되여야 하며 조금이라도 뒤처지고 더딘 행보를 보이면 패배자마냥 속상해한다.
내 주변의 몇몇 학부모도 자기 아이가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빨리 치고 나가고 두각을 나타내길 원한다. 소학교 입학 전부터 이 학원, 저 학원에 급급히 등록한다. 남들보다 출발선에서 늦어지면 안된다며 조바심을 낸다.
사회 조직생활에서도 항상 ‘속전속결’을 원하며 업무대처 능력이 빠르고 뭐든 잽싸게 일처리를 하는 인재상을 원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래야만 능률이 있다고 판단하니까.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빠른 움직임이나 빠른 결정이 때로는 섣부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이든 사회생활이든 남들보다 비록 늦게 시작하고 느리게 움직이지만 꾸준히 목표를 향해가다 보면 그 끝이 창대한 사례는 수두룩이 봐왔으니 말이다.
느림도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느린 행동이 내면의 단단한 ‘힘’을 구현할 때가 있다. 그 내적 힘은 우리로 하여금 때로는 마음을 강인하게 단련시키고 때로는 리성적인 판단을 하게 만들며 때로는 생활의 변주 속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한다.
인공지능이 발달한 사회가 바야흐로 도래하면서 우리는 지금 빠른 정보, 높은 경쟁력과 정확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역주행하는 오래된 음악, 전통적인 옛것이 그리운 것처럼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천천히 움직이는 ‘아날로그 감성’이 때로는 요즘 세상에 필요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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