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 시간표□ 최정옥

2025-04-11 08:31:52

오늘도 시간 종소리가 나의 귀전에 울리는 듯 하다. 마치 소학교 다닐 때 상학종이 울리듯이. 이 종소리는 나에게 진군나팔과도 같아 수시로 여생시간표에 적혀 있는 시간을 여실하게 집행하도록 편책한다.

그 시간표는 나에게 라태하지 아니 하도록 귀띔해주고 이끌어 준다. 그에 따라 자신의 모든 일과와 스케줄을 좌우지하고 척척, 차근차근 행동해 나가느라면 저도몰래 마음이 한결 충실해지고 그 성취감에 가슴도 뿌듯해진다. 그러니 여생시간표는 나를 지배하는 힘의 원천으로서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부여하는 동력이다.

인생의 락조가 서서히 짙게 물든 나는 이미 60대를 훌쩍 넘기고 고래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아름다운 단풍으로 장식된 인생 가을철의 설레이는 마음가짐으로 제2의 인생을 맞이하는 나의 심정은 자못 흥분된다.

이미 인생의 가을정취가 짙게 풍기던 60대 중반의 문턱을 넘고 있을 무렵에, 반복적인 갈등과 심려끝에 평생 종사하던 직업생애를 접고 나니 여생에 대한 새로운 과제가 나의 앞에 엄연하게 제출되였다.

석양에 물든 저녁 노을을 맞으며 걸어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여생의 유효시간을 쭉 감안해보니 그 시간이 그렇게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나였다. 이제 무엇을 하든지 나에게 남은 시간은 그토록 보귀한 것이여서 단 조금이라도 헛되이 랑비한다면 나의 여생에 무책임한 것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래서 제한된 여생의 시간을 쪼개여 쓰면서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금쪽같은 시간을 아끼리라는 생각과, 목표와 꿈을 안고 계획있게, 시간을 보다 합리하게 배치하면서 충실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한결 부푼다. 더불어 그 시간의 긴박감으로 수시로 마음에 채찍질하게 된다.

나는 여생의 꿈을 안고 목표를 실행하려는 새로운 설계도에 따라 보다 구체적이고 현유의 상황에 부합되는 여생시간표를 시급히 작성하였다. 그 시간표를 작성하고 나니 나에게는 방향판이 생긴 것 같았고 보내는그 시간이 그렇게도 충실하고 보람찰 수가 없었다.

뭔가 이전에 학교를 다닐 때 여러가지 과목의 시간표가 있듯이 선후와 경중을 고려하며 여생시간표를 확실하게 작성한 다음 그 시간표에 따라 차분하게 집행해 나가리라는데 왼심을 썼다.

나는 정년퇴직한 후 60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연길시 공업분야에서 내가 평생 종사해 온 전업우세로 여열을 발휘하하면서 아직도 사회에 수요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성취감과 긍지감에서 항상 가슴뿌듯하였다.

하지만 잡을 수 없는 것이 세월이라 아무리 진취심과 의력이 강한 나라고 해도 세월앞에서는 할 수 없이 백기를 들고 물러설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정시하고 사람들의 꽃보라 배웅을 받으며 홀가분한 심정으로 제2의 인생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직업생애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나에게는 어느 날인가 손에서 하던 일을 접으면 본격적으로 나와 주변 친인들의 회억록을 쓰려는 타산이 있었다. 하여 나는 짬짬의 시간을 타, 또한 기억력도 더 쇠퇴되기 전에 지나간 일들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일단 하던 일을 접으면 본격적으로 정리하려고 하던 차에 때나 만났다는 듯이 손에서 하던 일을 접자 바람으로 급급히 서둘렀다.

그런데 거의 50년이나 조선어와 별반 접촉해 본 일이 없었던지라 정작 글을 쓰려고 하니 그제날 중학시절에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어휘조차도 도저히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머리속은 온통 하얗기만 하였다.

비록 한어수준도 별로였지만 그래도 평생 한어로 교류하고 론문도 쓰고 각종 문건과 자료들을 작성했던 나에게는 조선어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평생 기술공작에 종사한 나에게는 ‘험산준령’을 뛰여 넘어야 할듯한 난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미 평생 굳어진 사유방식으로 겨우 옛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써내려 가려고 하니 앙상한 나무가지처럼 메마른 글로 써내려 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문학강습 정보를 접하고 나의 인생기록일지라도 좀 더 충전한 다음 앙상한 나무가지에다 살을 붙여 써야겠다는 심정으로 강습에 참가하였다. 나는 이런 플랫폼을 통해 나의 필력을 승화시키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독서에도 심혈을 몰부었다.

몇십년동안 굳어진 론리적인 사고방식을 바꾸어 ‘1:1’의 론리적인 사고방식을 “1:N” 문학의 사고방식으로 바꾸려면, 론문같은 언어를 춤추는 언어로 되게 하려면, 그것도 이 나이에 새삼스레 자기의 사유방식을 돌려 세운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였지만 일정한 독서와 강습을 거쳐 마음의 천평이 서서히 글쓰기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되였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평생 굳어온 사고방식에 대한 일약 도전이였다. 나는 평생학습의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배우고 쓰고 지우며 지나온 인생을 글로 총화하고 기록하려고 작심했다. 여생시간표의 첫 수업을 거친 후 나의 자서전 집필을 위해 두문불출하고 달라붙었으며 몇달간의 피타는 노력의 결실로 56만자에 달하는 《나의 삶, 나의 길》 이란 책자를 세상에 내놓았고 우리 가정의 보귀한 정신재부로, 그리고  그 시절의 발자취로 기록을 남겼다.

여생시간표에 근거하여 글쓰기교실에도 정기적으로 다니고 사회의 각종 협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고 그 가운데서 사회에 나의 힘이 수요되면 힘을 이바지하고 여열을 발휘하면서 일상을 보내는 나의 여생은 그처럼 충실하고 성취감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이 나이에 일과 휴식을 적당하게 결합시키며 자신의 건강도 잘 챙기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나의 여생시간표대로 내가 지내온 인생의 감수와 관점을 글로 적는 가운데서 마음을 석방하고 힐링하노라면 더 없이 보람차고 행복한 나이다.

번마다 컴퓨터 앞에 앉을 때면 퇴직하고 집구석이나 지키며 “헐렁한 몸뻬바람에 탈망살이에 빠진 할머니”가 아니라 필을 만지작거리며 여생의 설계도를 그려가는 ‘현시대 로인’이 된 자부감으로 인해 뿌듯함을 느낀다. 필을 들 수 있는 한 나의 시간표에는 글쓰기 시간은 빠짐없이 내재되여 있을 것이다.

내 여생의 멜로디를 엮어가며 그 시간표의 일정에 따라 글쓰기 새로운 쟝르도 부단히 시도하며 나는 여전히 웅숭깊은 꿈을 안고 내달린다. 평생 기술사업에 종사했던 공정사가 제2인생에서는 어느덧 몇십편에 달하는 수필, 수기, 가사 등 작품들을 발표했고 여러차례나 전국 범위의 글쓰기 응모에서 수상하는 영광도 가지게 되여 여생에서의 자기성장에 디딤돌로 되였다.

그외에도 나는 지구촌의 여기 저기에 발자취를 찍으며 려행으로 여생을 힐링하고 있다. 이 시간표도 나에게는 홀시할 수 없는 주과인 것 같다. 그 외 축구관람도 인터넷으로나 현장이나 만출근하는 ‘개근생’이다. 거기다 걱정도감역을 담당하며 힘든 사람들을 도와 나서기도 하면서 어지간히 드바쁜게 아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손녀를 돌보는 중임이 두 어깨에 떨어져 부득불 시간표를 좀 수정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백기를 들려하지 않는 성격인 나는 이를 악물고서라도 부모노릇, 엄마노릇을 하며 당당하게 살고프다. 그래서 장기시간표는 드팀없지만 림시시간표를 좀 조절하고 육아도우미에 전념한다. 그 와중에 해나른한 몸을 해가지고서도 짬짬의 시간을 타 드문드문  컴퓨터의 키보드도 두드리고 있는 나는 비록 힘들지만 마음은 젊어지는 기분이다.

가정에서의 총무를 담당하며 아직도 손이 발이 될 정도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물건 구입하며 대소사의 외교관역도 담당하고 있으니 힘들지 않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항상 충실한 나이다.

  이 시각도 내 여생시간표를 항상 념두에 새기고 보람차고 행복한 일상으로 황혼을 수놓아가리라!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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