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의 4월은 진달래 4월이다.
4월이 오면 꽃샘추위를 이겨낸 봄의 선구자-어여쁜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친다. 장백의 산발 타고 진달래가 피여나면 앞산에도 뒤산에도 온통 연분홍 물결이다. 그리하여 시인 하경지는 연변은 “산마다 진달래”라는 시구를 남겨놓았다.
<아리랑>이 우리 민족과 더불어 정한을 함께 나누며 울려가는 혈연의 노래라면 진달래는 우리 민족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나누며 피여나는 혈연의 꽃이다. 하기에 진달래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화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진달래광장에는 진달래를 높이 모신 진달래탑이 있고 진달래동산에는 진달래등불이 화안한 진달래축제가 있어 연변의 상징물로서의 진달래의 이미지가 한결 더 돋보인다. 이렇듯 진달래는 ‘사랑의 기쁨’이라는 꽃말을 전하며 연변의 가슴속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진달래는 그 이름이 여러가지로 불리는데 한족들은 봄맞이 꽃이라 하여 영춘화라 부르기도 하고 두견새가 울면 핀다고 하여 두견화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조선족은 철쭉과 비교하여 진짜라는 의미에서 참꽃이라 부르는데 방언으로 천지꽃이라고 한다.
천지꽃은 내가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알려주신 꽃이름이다. 봄나물 캐러 산에 갔다가 꽃부데기(꽃망울의 방언)가 진 가지를 꺾어다 물이 담긴 병에 꽂으면서 이게 천지꽃이라고 하시였다. 그렇게 진달래라는 표준어를 모르는 어린시절에 천지꽃은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꽃이름이 되였다.
물론 천지꽃이 진달래를 일컫는 함경도사람들의 토박이말임을 알게 된 것은 많이 큰 다음의 일이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함경도사람을 위주로 하는 연변지역과 흑룡강사람들의 생활언어 속에서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방언으로 불리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진달래라는 표준어보다 천지꽃이라는 방언이 입에 더 잘 오르는 것이 그 원인이 아니였나 싶다. 그만큼 천지꽃은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버리기 아까운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자리를 굳혀왔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출판과 신문 그리고 방송 매체에서 진달래라는 표준어 사용에 크게 중시를 돌리면서부터 천지꽃이라는 방언이 차츰 밀려나기 시작하였고 지금에 와서는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에게만 익숙한 이름으로 남게 되였다.
언어학자 허성운 선생은 이런 현상을 두고 <진달래는 피고 천지꽃은 진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에서 “어릴 때부터 익혀온 고향사투리가 엄청 많지만 그중에서도 천지꽃이란 말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고향을 떠나온 지도 꽤 오래되였지만 아직도 진달래라는 표준어 대신 천지꽃이라는 방언을 더 자주 쓰고 있다.”라고 하였다.
석화 시인도 <천지꽃과 장백산>이라는 자작시에서 우리 연변은 “이른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여나는 곳”이라고 노래했었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진달래라는 표준어의 사용에 이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달래를 다르게 부르는 천지꽃이라는 방언이 이 땅에서 뿌리 깊은 대중용어로 흘러간 세월과 함께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얼마 전에 위챗에서 어느 분이 닉네임을 ‘천지꽃’이라 한 것을 보았는데 아직도 천지꽃이라는 방언을 기억하고 활용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무등 반가웠다. 그것은 내가 진달래의 방언인 천지꽃에 무척 애착을 갖고 있다는 반응 같은 것이였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이 하나 있으니 천지꽃이라는 사전식 풀이가 우리의 언어생활의 실제와 어긋난다는 점이다. 6권으로 된 조선말사전에서는 천지꽃을 철쭉의 방언이라고 하였다. 하건만 우리는 우리 대로 천지꽃을 진달래의 방언으로 굳혀왔으니 앞으로 사전편찬 일군들은 진달래의 방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즉 다시말하면 진달래에 관한 함경도와 연변 지역 그리고 중국조선족의 방언에 대한 력사적인 고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주지하다싶이 진달래와 철쭉은 모두 진달래과에 속하지만 엄연히 다른 두가지 꽃나무이다. 진달래는 이른봄에 피는 꽃이요 철쭉은 늦은 봄에 피는 꽃이다. 진달래는 독이 없어 화전을 만들어 먹지만 철쭉은 독이 있어 먹거리로 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달래는 참꽃으로 되고 철쭉은 개꽃이라고 한다.
필자가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구구하게 반복하는 것은 진달래와 철쭉을 혼동하지 말자는 뜻에서이다.
겸하여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국조선족의 언어문자 속에서 진달래는 표준어이고 천지꽃이 진달래의 방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가 무어라 해도 래년과 후년 그리고 머언 후년에도 우리 연변에는 “이른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여날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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