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마을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벌판이다. 동쪽으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부흥동이라는 산골짜기가 있고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는 고향에서 유일하게 이름도 없는 높지도 크지도 않은 작은 산 하나가 있는데 이 산은 고향마을 사람들 마음속의 독특한 풍경선일 뿐만아니라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감정을 담고 있다.
따뜻한 봄이 오면 나는 마을의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간다. 꽃을 따가지고 집에 돌아와 유리병에 꽂아 놓으면 며칠동안 시들지 않고 곱게 피여난다. 여름에는 산에서 뛰여다니며 장난치고 숨박꼭질을 하고 나비와 꿀벌의 종적을 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어머니와 누나의 뒤꽁무니를 따라 산에 가서 버섯을 따기도 하였다. 가을이면 산에 올라 야생의 열매를 따서 맛 보는 재미는 그야말로 나어린 우리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그 시절에는 비록 먹을거리가 부족했지만 얼굴마다에는 언제나 웃음기가 떠날 줄 몰랐다.
60년대 초반에는 “식수조림을 잘하여 후대들에게 행복을 누리게 하자!”라는 구호의 열조속에서 촌민들이 총동원되여 산에 이깔나무 묘목을 심어 놓았고 내가 소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전교 사생들이 애어린 소나무를 심었었다. 이렇듯 고향의 산은 촌민들의 근면한 노력과 보살핌 속에서 자신의 자태를 자랑하며 제자리를 굳건히 지켜왔고 그윽한 숲속과 어여쁜 꽃들은 고향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안식의 터전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완연한 숲을 이루면서 생기발랄하게 푸른 기운이 넘쳐나 새들이 나무가지 끝에서 즐겁게 노래했던 고향의 산도 비바람의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다. 60년대 후반부터 이 아름다운 산은 무질서한 인위적 파괴를 당했다. 수십년간 알심들여 키워놓은 미츨한 이깔나무들이 자손들의 혜택을 받아야 할 대신에 무법자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사로이 나무를 채벌하면서 산림 속의 푸른 기운이 점차 사라졌다. 정성껏 키운 락엽수들이 무식한 사람들의 소행으로 하나둘씩 힘없이 쓰러졌다. 땅속에 뻗어간 나무뿌리들이 뿌드득 소리를 질러대며 인간세상을 한없이 저주하며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냈다.
예로부터 고향산의 토질은 색갈이 좋고 끈기가 있어 린근 마을에 소문이 났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사람들의 환경보호 의식의 차이로 말미암아 해마다 새로 집을 짓거나 낡은 집을 보수를 할 때면 곳곳에서 흙을 파가면서 헤쳐놓다보니 여기저기에 마치 대지에 드러난 흉터처럼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조용하던 산골짜기는 본래 야생동물의 고향이였다. 이른 아침이면 산꼴자기에 옅은 안개가 자욱해서 선경을 방불케 했고 뭇새들도 앞다투어 깃드는 보금자리 였었는데 무질서하게 채석하는 폭파소리와 석공들의 돌을 캐는 망치질 소리가 산골짜기에 찌렁찌렁 울려 퍼지니 야생동물들은 사방으로 도망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았다. 고향의 산은 탄식했다! 고향의 산은 절망했다! 고향의 산은 울부짖었다! 이 얼마나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일이였던가…내가 고향을 떠난지도 어언간 4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언제나 잊지 못할 고향의 산을 머리속에 떠올릴 적마다 지나간 풍상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지난 여름 오랜만에 모처럼 고향의 산에 올랐더니 너무나도 몰라보게 변한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의 진보와 사람들의 환경보호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고향의 산은 다시 예전의 생기와 활력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나무숲이 우거진 고향의 산은 가슴 아팠던 옛날의 모습들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여기저기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탐스럽게 피여나고 이름모를 산새들이 정겹게 지저귀는 소리가 나의 마음을 한결 포근하게 감싸고 돌았다. 따스한 해별을 받으며 묵묵히 고향을 지키고 서있는 고향의 산, 그것은 마치 온화하고 숭고한 군자의 얼굴처럼 덕이 있고 침착해 보인다. 모진 세월속에서도 신음 한마디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그 웅심깊은 넓은 마음, 너그러움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고상한 정신, 고향의 산은 진정 내 고향의 자랑이였다.
산정에서 넓은 구수하벌을 내려다 보니 푸르른 곡식들이 미풍에 하느작거리고 마을에는 아담한 벽돌기와 집들이 한눈에 정답게 안겨온다. 하얀 띠마냥 벌판으로 흐르는 유서깊은 구수하 강물은 오늘도 많고 많은 사연을 담고 변함없이 유유히 동으로 흘러간다. 남북으로 관통된 마을 옆 아스팔트길에는 연길-장춘 고속도로로 출입하는 차량들이 실북 나들듯 그칠사이 없이 오고 간다. 확 트인 수전벌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고속철 선로는 마치도 거대한 룡처럼 구불구불 뻗은채 지역경제 발전에 날개를 달아주고 끊임없는 활력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또 독특한 지리적 위치의 우세로 고향벌에 자리잡은 연변신흥공업개발구는 도문강 지역의 개방과 개발의 물결을 타고 자신의 역활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고향마을은 지금 일사천리의 속도로 바야흐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고향의 변모를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고향의 산도 이제 아름다운 래일을 꿈꾸는 고향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상락원으로 탈바꿈을 할 것이다.
석양이 서쪽으로 지고 하늘가에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타오르고 있다. 나는 마을 어귀의 나무 아래에 서서 층층이 이어진 밭들을 가로질러 멀리 익숙하고 신비로운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저녁노을에 물든 산봉우리는 더욱 장엄하고 신성한 것이 마치 천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산은 마치 나에게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나는 변함없이 고향을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고향의 산은 내가 걸음마를 타기 시작해서부터 매 순간을 그 자리에서 지켜봐왔고 나한테 꿈을 키워주었으며 내가 힘들고 난관에 봉착했을 때마다 나를 위해 끈질긴 의지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을 길러주었다. 하지만 내가 고향을 떠나 미지와 도전으로 가득 찬 인생길에 오른 후부터 일상이 바쁘다는 리유로 자신도 모르게 고향의 산에 대한 그 깊은 우정을 소홀히 하였으니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량심의 가책을 느낀다. 세월이 아무리 총총히 흘러도 고향의 산에 대한 그 깊은 정과 미련은 영원히 나의 마음속에 새겨져 나의 인생 려정에서 가장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정신적 보물로 될것이며 내가 초심을 잃지 않도록 격려할 것이다.
나는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 자신의 노력과 땀으로 고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의 꿈을 실현했다고. 나는 고향 사람들이 그제날의 아픈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고 마음에 환한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즐거운 심정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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