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나 견해를 말하는 것으로서 어느 개인이나 혹은 단체에 대한 불공평하고 불합리적이며 객관사실을 리탈한 소극적인 인식과 태도이다.
이 세상에 편견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회현상이라 할 수가 있다. 편견이라는 것 때문에 이 세상의 적지 않은 것들이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오해를 사게 되거나 심지어 배척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교에서 교원의 편견은 학생의 성장을 저애하게 되고 직장에서 상사의 편견은 유능한 직원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만들며 심지어 회사의 발전을 저애하는 걸림돌로 되기도 한다.
이렇게 편견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지만 날카로운 흉기 같은 무서운 존재로서 소리 없이 사람들을 해치고 나아가서 이 사회를 해치고 있다.
편견은 흔히 그 사람이 쌓은 경험과 갖추고 있는 지식과 정감세계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다시말하면 그 사람의 주관적인 사유방식이 사물을 관찰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것이 원인으로 되여 편견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다고 할 수가 있다. 바로 그 사람 나름 대로의 틀린 판단의 결과가 편견이라는 것을 형성하게 하는 원인으로 된다는 말이 되겠다.
아래에 편견이 어떻게 시비를 혼돈시키고 사물에 대한 바른 평가를 저애하고 있는가를 까마귀와 까치 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까마귀는 색상이 검고 소리가 듣기 싫으며 그로 인해 까마귀를 보면 불길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그 편견 때문에 까마귀를 귀엽게 생겼다고 하는 이는 적다. 게다가 그 울음소리도 “까욱까욱” 하는 거칠고 쉰 듯한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더구나 인간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에서 검은 색상과 거친 소리는 표면현상으로서 시각과 청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한 판단만으로 까마귀가 밉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경솔한 처사라 하겠다. 이러한 결론은 까마귀의 다른 면, 즉 그의 행위 등에 대한 자세한 관찰이 결여되여있고 객관사실을 리탈한 소극적인 인식과 태도에서 초래된 결론이라 할 수가 있다.
반면 까치는 겉모양이 알락달락하게 생겼고 그 울음소리도 응석을 부리는 소리 같아서 더구나 많은 인간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그래서 그런 까치가 집 근처에 와서 “깍깍” 하고 울면 좋은 소식 전해준다고 하는 전설도 생겨난 듯하다.
흔히 어떤 사람이나 동물을 좋게 보기 시작하면 그것들이 하는 짓거리들도 죄다 예뻐보이게 되는 같다. 바로 편견이 편애를 낳는다는 말이 되겠다. 옛날 서시가 상을 찡그리는 모양을 그 마을의 추녀가 모방해서 웃음거리를 만들었다는 ‘동시효빈’이라는 전설이 있다. 여기에서 천하일색인 서시가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마저 예뻐보였다는 얘기는 분명 편견의 작간인 것이다.
기실 까마귀한테는 좋은 습성이 있는데 바로 ‘오아반포’와 일부일처제를 지킨다는 것이다. 어미까마귀가 늙으면 새끼까마귀가 먹이를 구해와서는 어미한테 먹여주는 ‘오아반포’, 자기를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는 그 행위를 두고 그 효성이 지극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배은망덕하고 심지어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일부 인간들이 조금이라도 인성이 남아있다면 오아반포란 거울에 자기를 한번 비춰보고 반성하면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까마귀는 까치나 다른 조류들보다 총명해서 도구를 리용할 줄도 안다. 까마귀는 목이 가늘게 생긴 용기 속의 물을 마시기 위해 조약돌을 물어다가 용기 속에 집어넣고 수위가 올라오도록 하는 총명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소학교 교과서에서 배워서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까마귀가 인간들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일이 억울하고 애석한 일이 아니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아반포’란 것도 모르고 또한 총명한 면에서도 까마귀한테 뒤지고 있는 까치가 단지 편견 때문에 인간들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는 일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까마귀는 소외당하고 까치가 총애를 받게 된 것이 인간들의 편견의 작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지금까지 까마귀와 까치에 대한 인간들의 편견이 초래한 결과를 살펴보았다. 결론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편견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존재가 인간들의 정상적인 판단을 저애하여 어떤 사물이거나 사연들이 정확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상기한 것처럼 편견이라는 것은 아주 해로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한 편견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편견을 극복하려면 우선 마음을 열고 비판적인 사유방식으로 사물을 대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타인의 말을 려과 없이 받아들이거나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하는 행위를 단절해야 하며 또한 사물의 표면현상을 보고 쉽게 결론을 내리지 말고 객관적인 립장에서 사물을 인식하려 노력해야 한다.
편견이 사라져야 사람들은 공정하고 조화로운 환경 속에서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가 있을 것이고 시대의 발전에도 보다 유리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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