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소궁둥이□ 홍순룡

2025-07-03 16:45:23

소와 소궁둥이를 건드려서 화제를 이끌어가자니 조금은 주저심이 드는 감도 없지 않다. 소면 소지 거기에 하필이면 소궁둥이를 거들 것은 무엇이냐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스스럼없이 소와 소궁둥이를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게 된 계기가 우리 민족과 소, 그리고 소궁둥이 사이에서 생겨난 눈물겨운 사연들 때문이다.

인류는 농업생산 력사에서 2000여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두고 소나 말의 힘을 빌리게 되였는데 농경을 위주로 살아온 우리 민족도 례외없이 소나 말을 몹시 중시하고 리용하여왔다.

소를 부리는 데는 기교가 필요하다. 소가 느리게 걸을 때면 무작정 아무 곳이나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소궁둥이가 적당하다. 그래서 채찍이거나 회초리 따위를 리용하여 소궁둥이를 두드리면서 소를 부리게 된 것이라 하겠다.

예나 지금이나 소궁둥이가 멋지게 생겼다고 우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독한 동물애호가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나도 역시 오늘까지 소궁둥이가 예뻐보인 적은 한번도 없은 것 같다. 그렇다고 소궁둥이가 나의 눈에 거슬린 것은 아니다. 나의 인상에 남아있는 소궁둥이는 오히려 너무나 가식도 없고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를 숨김 없이, 부끄럽지 않게 다 드러내놓고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에 고분고분 맡기는 그 성품이 무엇인가를 인간들에게 시사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였다.

소궁둥이는 오랜 세월을 두고 억울하게도 인간들의 세례를 받아왔다. 농경시대였으니 피치 못할 일이였을 것이다. 소가 빨리 움직여야 농사일에 도움이 되니 말이다. 소궁둥이를 두드리지 않으면 소가 잘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리유 하나로 소궁둥이는 매를 맞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소는 불평없이 고분고분 인간들의 학대를 다 받으면서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걷고 또 걸으면서 인류와 희로애락을 같이 해왔다.

언제부터였던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소가 선량한 농부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은근히 소궁둥이를 측은하게 생각하게 되였다. 온순한 소가, 소궁둥이가 혹독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억울한 일이 아니라면 뭐가 억울한 일이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은근히 소궁둥이를 두둔하고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주 가난했던 그 세월에도 소궁둥이를 두드리는 일은 있어도 헐뜯는 이들은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처럼 그 옛날 농경시대에 부림소는 농사군들의 보배로 떠받들리게 되였고 따라서 그 대우도 아주 좋았던 것 같다. 웬만해서는 사람들이 못 먹는 찰떡까지 소만은 향수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소가 고달픈 농사일에 큰 도움이 되였으니 그럴만도 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 어르신들은 “소궁둥이를 두드리고싶지 않으면 공부나 잘 해”라는 소박한 말로 자식들을 훈계하군 하였고 부림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켜여야 한다는 마음까지 품게 되였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농민이 부림소를 판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비장한 소행인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처럼 지식을 숭배하는 선인들의 총명한 선택이 있었던 까닭으로, 또한 그런 훌륭한 전통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민족이 이 지구촌 어디에서나 떳떳하게 살아가고있다는 생각으로 자랑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소궁둥이를 두드리고싶지 않으면 공부나 잘 해” 라고 말하는 농사군들이 배신자거나 근본을 잊은 사람들이라고 헐뜯어 말한다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무지몽매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향상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찬란한 앞날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부림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그런 확고한 정신이 있었기에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은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한테서 제일 많이 들은 말씀중에 “소궁둥이를 두드리며 살기 싫으면 공부나 잘 해”였다. 그런 편달에 의하여 아무튼 나는 공부에 너무 게을리 하지 않았고 때를 만나 드디여 아버지가 바라는 소궁둥이를 두드리는 일에서 아주 벗어나게 되였다. 바로 그 당시 나라에서 많이 필요로 했던, 소위 지식인의 행렬에 들어서게 되였고 따라서 소궁둥이란 엄연한 존재를 아주 잊고 말았는데 그 일이 지금도 그냥 마음에 걸려서 소한테 죄를 지은 같아서 소보다도 더 쓸쓸한 기분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소궁둥이가 나를 각성하도록 밀어준 고마운 궁둥이라는 생각으로 지금은 그 소궁둥이가 조금도 미워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지금 소는 부림소의 범주에서 지워져가고 농가들에서 소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서 조금 쓸쓸한 기분이다. 그렇지만 현대사회는 많은 것들을 도태시키면서 참신한 력사를 창조해가는 것이니 소와의 인연이 끝났다고 애석하게 생각할 바는 아니다. 다만 부림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켜오던 그 정신만이 대대손손 이어진다면 우리 선조들에게 죄스럽지 않을 것이고 소한테도 위안으로 될 것이다.

  시대는 발전 변화해도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켜왔던 그런 정신은 대대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도 소 영각소리는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로 남아 우리들의 귀전을 때리고 있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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