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그린 산수, 무형문화유산 전승의 길

2025-08-14 16:42:13

칼끝이 캔버스를 스치자 산악의 질감이 서서히 드러나고 안개가 물들 듯 부드럽게 번져간다. 최근 사천성 성도시 온강구 ‘회장천하’ 수집관에서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무형문화유산 민간 칼그림 대표 전승인인 석덕성이 제자 왕점호에게 칼화창작을 지도하고 있었다.

“칼그림은 칼을 붓 삼아 축축한 물감을 ‘덜어내는’ 기법이 중요합니다. 바위의 질감은 ‘깎아내는’ 방식으로 표현하지요.”

17년 전, 사천 농촌 출신의 이 청년은 30원짜리 무형문화유산 전시회가 자신의 인생궤적을 완전히 바꿀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08년 길림성 장춘시로 대학공부를 하러 갔던 석덕성은 우연히 전시관을 방문했다가 칼그림 창시자 송만청의 한폭의 산수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중국화의 경지와 서양 유화의 질감 및 립체감을 동시에 갖춰, 참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였습니다.”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기 위해 그는 돈화시를 다섯번이나 찾아갔고 결국 송만청의 아들 송준걸을 감복시켜 제자로 받아들여지게 되였다.

그러나 배움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시 칼그림 수업의 월 수업료와 왕복 교통비를 감당할 형편이 못되였고 부모님도 제가 칼그림에 집착하는 것을 리해하지 못해 이 길을 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석덕성은 감회에 젖어 회상했다. 배움을 계속하기 위해 그는 이곳저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했다. 기차역에서 그는 이를 악물고 무거운 화물을 나르며 그렇게 고된 로동으로 번 돈으로 칼그림의 꿈을 이어갔다.

수련 과정에서 석덕성은 점차 칼그림이 체계적인 교수법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어떤 선배님들은 10년 넘게 배웠지만 특정기법에 대해 ‘그렇게 하는지는 알지만 왜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그는 칼그림이 주급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랐음에도 알려진 바가 적고 많은 선배들이 칼그림을 개인적인 기예로만 여겨 같은 성씨에게만 전수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때부터 저는 칼그림의 교수체계와 전승방식을 바꾸어 이 민간기예를 빛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3년, 석덕성은 고향 사천으로 돌아가 성도에 ‘꿈을 좇는 칼그림’ 화실을 오픈했다. 온강구를 선택한 리유는 이곳에 많은 대학들이 있어 이 무형문화유산에 더 많은 젊은 인재들이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였다.

대중이 칼그림을 리해하고 인정하도록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홍보를 위해 그는 작품을 들고 학교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혹스러워 했지만 그중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2년 동안 석덕성은 각 대학과 지역사회를 오가며 강연을 하고 강좌를 열어 칼그림을 수많은 젊은이들의 시야 속에 들어가게 했다. 그는 여러가지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 창작주제를 확장했고 칼그림을 더욱 정교하고 다양하게 만들었다. ‘7S’ 칼그림 리론체계를 창시해 복잡한 칼그림 기예를 리해하기 쉬운 모듈로 분해했으며 업계 최초의 교재 《중국칼그림교정》을 편찬했다. 이 책은 중앙미술학원 국제학원 칼그림 연수반의 지정 교재로 채택되였고 칼그림 교육이 ‘법도에 따라’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 석덕성은 성도에 13개의 칼그림 교육기지를 차례로 열었고 중경과 곤명 등지에서도 ‘꿈을 좇는 칼그림’ 화실을 열었다. 현재 ‘꿈을 좇는 칼그림’ 화실은 전국 90여개 대학과 칼그림 인재 양성 협약을 맺었으며 석덕성의 칼그림 수강생은 20만명을 넘어섰다. 그중 1000여명이 칼그림 종사자가 되여 예술시장과 문화전파의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칼그림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했다.

석덕성에게 예술은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전하고 성장을 돕는 데에도 있다. 최근 몇년간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칼그림 전승과 공익 사업을 결부시키면서 ‘후랑 청년’ 공익프로젝트를 출범,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창업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무당파 인사이자 온강구 신사회계층인사련합회 회원으로서 그는 온강구 통전부와 온강구 신사회계층인사련합회가 구축한 플랫폼을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공익적인 무형문화유산 칼그림 체험 활동을 열어 더 많은 청년친구들이 칼그림 기예를 배우고 전통문화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무형문화유산은 단지 보호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석덕성의 말처럼 이 한때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전수되던 공예는 그의 끊임없는 ‘파종’ 아래 점차 전국으로, 나아가 해외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현재 해외 수강생은 싱가포르, 핀란드, 미국 등 10여개 국가와 지역에서 왔습니다.”

칼그림이 더 멀리, 더 널리 퍼지길 바란다며 미래를 이야기할 때 석덕성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어려있었다. 그는 말한다. 칼그림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고 땀과 정성으로 물을 준 만큼 반드시 세계 예술의 토양에 깊이 뿌리내리고 무성하게 자라날 것이라고. 

중국신문넷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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