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족의 력사

2026-07-08 09:41:48

무로족은 중국 남방의 광서와 귀주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이다. 2010년 제6차 전국 인구 보편조사에 따르면 무로족 인구는 약 20만명에 달한다. 1956년에 국무원은 이들을 무로족으로 공식 확인했다. 무로족은 본 민족의 언어는 있으나 문자가 없으며 한자를 통용한다. 무로족의 민족언어는 한장어계 쫭족뚱족어족의 뚱족수이족 갈래에 속한다. 다수의 무로족 로인들은 자신을 ‘링(伶)’이라고 자칭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진(谨)’ 또는 ‘본지인’으로 자칭한다. 한족은 무로족을 ‘무로’라고 지칭하고 쫭족들은 광서에 거주하고 있는 무로족을 ‘부진’(布谨)이라고 부른다.

무로족.


무로족은 력사가 유구하다. 무로족은 귀주 고원 최초의 개척 민족의 하나로 알려져있다. 무로족의 원고시대 선민들도 기타 민족의 선민들과 마찬가지로 찬란한 선사시대 문화를 창조했다. 1958년, 류강현 신흥농장 통천암 옆 동굴에서 하악골이 없는 완정한 두개골과 가슴등뼈, 요추, 륵골 등이 출토됐다. 이는 5만년 전 구석기시대 말기 고인류의 화석으로 판정되여 ‘류강인’으로 명명했다. 또 부근에서 발견된 ‘류강인’ 동시기 문화유물을 살펴볼 때 당시 원시인들은 산을 등진 물가에 자리한 석굴에 거주했으며 식물채집과 동물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이미 음식을 불에 익혀 먹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들은 함께 로동하고 평균 분배했으며 모계씨족 중심의 원시공사 생활을 유지했다. 1965년과 1973년, 고고학자들은 계림시 남부의 독산 증피암 사방 60평방메터 범위내에서 18구의 인체 골격을 발견했으며 이를 증피암인이라고 명명했다. 증피암의 출토물로부터 당시의 사람들이 신석기시대에 처해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증피암인과 류강인이 밀접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본다. 바로 광서의 토착민족에 속하는 무로족의 원고시대 선민이 증피암인이고 증피암인의 선조가 류강인이라는 것이다.

전국시기 말기부터 령남 서부 일대에 거주한 무로족 선민들은 서구 락월민족의 한갈래에 속했다. 그 후 진나라가 령남지역을 통일하면서 이곳의 무로족 선민들은 령남의 기타 민족과 함께 중화민족의 대가정에 합류했으며 ‘료(僚)’로 통칭되였다. 한나라 때 많은 한족들이 령남지역에 선진적인 생산기술을 전수해 령남지역의 정치와 경제의 빠른 발전을 추동했다. 수나라와 당나라 때 중앙왕조는 령남 소수민족지역에서 견제정책을 취해 수십개 주와 현을 설치하고 현지의 소수민족 두목을 관리로 임명했다. 이런 관리들에 대해 중앙왕조는 그들이 중앙왕조의 정권을 승인하고 지시에 복종하며 의무를 리행하면 관리직을 세습시키고 우대해주었으며 현지의 사회제도와 경제구조를 보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시기 무로족 선민들인 령남 ‘료’의 사회, 경제는 한층 발전해 소를 부려 밭을 갈기 시작했고 벼농사기술도 한층 제고되였으며 수공업 제련과 도금, 도자기 제조 등 기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송나라와 원나라 시기 무로족은 료, 링 등으로부터 단일 민족으로 분화되였으며 원나라 때부터는 무로족과 관련된 기재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서의 기재와 전설로부터 무로족이 늦어도 원나라와 명나라 초반에 이미 라성 일대에 거주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당시 명나라는 송나라와 원나라의 제도를 이어 라성과 천하, 의산 등 무로족의 집중거주지역에 류관을 계속 설립했다. 이때 무로족은 봉건사회에 들어섰으며 해마다 여름철과 가을철에 쌀을 조세로 조정에 바쳤다. 1933년 이후, 국민당 세력이 무로족 지역에 심입하면서 봉건 종법제도가 가일층 강화되였고 빈부격차가 크게 나타났으며 부농이 점유한 토지는 중농의 2배에서 4배, 빈농의 5배에서 6배 심지어 10배에 달했다. 잔혹한 착취로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던 광범한 무로족 인민들은 기타 형제민족과 함께 반봉건투쟁에 나섰으며 명나라와 청나라 때 크고 작은 규모의 무장투쟁을 수차례 일으켰다.

중국공산당이 창건된 후 무로족 지역의 투쟁은 점차 당의 령도하에 진행됐으며 이들은 류북인민해방부대에 참가해 여러 민족 인민들과 함께 국민당 군대를 물리쳤다. 유격대 제1대대 제3중대의 70% 이상의 대원들이 무로족이였다. 이들은 1949년 11월, 인민해방군을 도와 라성을 해방했다. 1984년,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무로족은 라성무로족자치현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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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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