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나무로 된 창문틀은 습기에 퉁퉁 불어서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덕분에 창문틈새로 비물이 새여들어 바닥에 흥건히 고여있었다. 나는 걸레를 들고 비물을 닦다가 문득 멈추었다. 안해가 생각났다. 2년 전, 안해가 사라진 뒤로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나의 몫이 되여버렸다.
나는 허리를 펴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고 있다. 문득 걸음을 멈춘 한 모녀가 이쪽을 바라본다. 6, 7살로 보이는 아이는 손가락을 들어 내 쪽을 가리켰고 엄마로 보이는 젊은 녀자는 뭔가 말하는 듯싶더니 급히 아이의 손을 끌고 사라진다. 나는 안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고 무슨 말을 했는지. 3층으로 된 건물에서 불을 켠 방은 지금 내가 있는 거실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우리 집을 가리키며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엄마, 저기 봐. 창가에…”
“쉿, 보지 마. 얼른 가!”
나는 불편한 다리를 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들고 있던 걸레를 흐르는 물에 헹군 뒤, 한쪽에 있는 간이 빨래줄에 걸어놓았다.
스윽 스윽.
넓은 거실에는 내가 다리를 끄는 소리만 들려온다. 내 다리는 5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난 뒤로 이 모양이 되였다. 덕분에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해빛 아래서 마음껏 달릴 수 없었다. 당연히 그런 나에게 친구도 없었다. 부모님들은 미안한 마음에 물질적인 보상을 힘닿는 대로 해주었지만 내 마음속의 외로움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나이가 차자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혼사말이 들어왔다. 나에게는 과분한 녀자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우리 집 재산을 보고 나랑 결혼한 것이라고 했다. 딱히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재산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릴 때 키웠던 고양이처럼 도도한 눈매의 녀자는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바람을 피기 시작했다. 역시 나 같은 놈과 함께 사는 일은 지긋지긋한 모양이다.
그녀가 나를 떠난 뒤 나는 한동안 혼자가 되였다. 그러다 두번째 안해를 만났다. 활달한 성격의 전처와는 달리 토끼처럼 내성적인 녀자였다. 이 녀자라면 전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내 예상이 빗나가는 데는 반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어쩌면 나 같은 놈은 결혼 따윈 생각도 하지 말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던 나에게 그녀가 다가왔다. 그녀는 나한테 랭담했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먼저 다가와서 내 곁에 앉았고 앵무새처럼 재잘재잘 떠들며 나의 말동무가 되여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꿈은 건축가였다. 하지만 지금 이 모양 이 꼴로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건물을 세울 뿐이였다. 그녀의 꿈은 작가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꿈이 또 하나 생겼다고 했다. 바로 자신이 쓴 책을 직접 나에게 읽어주는 것. 이번에도 우리 집 재산을 보고 접근하는 녀자일 수 있다는 말들이 돌았지만 나는 안다. 그녀는 그런 녀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녀에게 제대로 된 선물 한번 해준 적이 없었고 그럼에도 그녀는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 녀자라면 앞으로 갈 인생 손잡고 천천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결혼 후 우리는 내가 전에 살던 3층으로 된 단독주택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한 나를 생각해서 부모님은 차라리 평수가 큰 아빠트가 좋지 않겠냐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고집을 부렸다. 리유는 간단했다.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그녀를 위해 3층 제일 서쪽 방을 서재로 꾸며주고 싶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던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결혼 후 안해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보냈다. 밤새도록 서재에서 글을 쓰느라 나 혼자 잠드는 시간이 늘어갔지만 딱히 불만은 없었다. 나와 같은 놈과 결혼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였다. 하지만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다. 가끔은 안해한테 투정을 부려보기도 했다. 그러면 안해는 항상 직접 내린 건강 주스 한잔을 건네며 부드러운 어투로 아이 달래듯이 같은 말을 했다.
“미안해요, 조금만 참아줘요. 하루 빨리 내가 쓴 책을 당신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요.”
가가각─ 가가각─!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가 나의 회상을 깼다. 나는 귀를 기울이고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는 3층에서 들려왔다. 나는 한숨을 한번 쉬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한 탓에 내가 계단을 오르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건 지금이나 예전이나 변함없었다.
스윽─ 스윽─ 나는 다리를 끌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잠시 뒤 내가 도착한 곳은 3층의 가장 서쪽 방. 안해가 서재로 쓰던 방이였다. 끼익─ 나는 방문을 열었다. 역시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리도 멈추었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15평방 남짓한 방안에는 컴퓨터를 놓은 책상과 책이 빼곡이 들어있는 책장, 그리고 한쪽엔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있었다. 밤늦게까지 글을 쓰는 안해는 잠이 든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서재에 있는 침대에서 잠을 자고는 했다. 내가 괜찮다고, 그래도 부부는 한침대를 써야 한다고 했지만 안해는 수면 유도제의 도움이 있어야 겨우 잠들 수 있는 나를 배려했다.
서재의 물건들은 아직 그대로다. 안해는 사라졌지만 그녀의 물건을 처분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녀는 꼭 돌아올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바람이 나서 외간 남자랑 도망을 갔다고 한다. 사지가 멀쩡하고 예쁘게 생긴 그녀가 나와 같은 절름발이와 결혼한다고 할 때부터 고운 시선을 던지지 않던 사람들이다. 그랬던 사람들은 그녀가 사라지자 자신들의 추측이 맞았다는 듯 앞다투어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훗,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놈들. 나는 천천히 벽지를 만졌다. 벽지의 질감은 부드러웠다. 마치 안해의 맨살을 만지는 듯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베개에 코를 파묻고 엎드렸다. 안해의 체취가 남아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나는 숨을 한껏 들이쉬였다.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그녀의 흔적을 빨아들이고 싶었다.
“여보… 보고 싶어… 돌아와줘…”
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엎드려있던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안해의 컴퓨터가 보였다. 그녀는 수많은 밤을 이 방안에서 컴퓨터 앞에 있었을 것이다. 잔잔한 음악을 켜놓고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며 키보드를 두드렸을 것이다. 스윽─ 스윽─ 나는 컴퓨터 앞에 가 앉았다. 위잉 낮은 작동음이 울리며 컴퓨터가 켜졌다. 나는 습관처럼 안해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컴퓨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은 언녕 찾아보았다. 새로운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풀이 죽어 컴퓨터를 껐다.
방안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컴퓨터, 괜히 켠 것 같다. 그녀와의 기억들이 머리속에 흘러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였다. 휴대폰과 컴퓨터는 물론 집에 부모님이 찾아오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 점만 빼면 아무 문제 될 게 없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나는 리해할 수 있다. 작가들중에는 감성적인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날 그녀는 나에게 크게 화를 냈다. 나는 어쩔 바를 몰라 손을 흔들며 그런 그녀의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다. 컴퓨터를 보게 된 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밤새 작업하는 당신이 걱정되여서 올라와본 것 뿐이라고. 그러나 그녀는 그런 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에 피대를 세우며 나한테 당장 꺼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부터였을가. 나는 그녀의 컴퓨터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쓴다는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 나는 그 비밀을 알아내고 말았다. 그녀가 밤새 쓴 것은 나와 그녀의 이야기였다. 우리의 만남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생활, 그리고 미래가 그려져있었다. 이야기는 대화체로 쓰여있었다.
─ 남편은? 자?
─ 응. 수면 유도제를 먹고 잠들었어.
─ 래일은 만날 수 있어?
─ 래일은 힘들 거야. 그놈 부모님이 오기로 했거든.
─ 아쉽네.
─ 짜증 나. 오지 말라고 그렇게 난리를 쳐도 주기적으로 오는 거 있지.
─ 아들이 걱정되나 보지. 큭큭
─ 하긴, 그렇게 걱정할 수 있는 날도 많지 않으니 할 수 있을 때 많이 걱정하라고 해.
─ 오, 이제 효과 보기 시작하는 거야?
─ 아니, 량이 적어서 그런지 매일 아침 건강주스에 섞어 먹여도 별 이상이 없더라고. 그래서 방법을 바꾸어보려고.
─ 이번엔 어떤 방법으로?
─ 방법이야 많지. 절름발이가 사고 나는 건 흔한 일이잖아. 큭큭
─ 큭큭, 너랑 사는 남편이 불쌍하다.
─ 남편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밖에 없는 걸 알면서 그래. 곧 모든 게 끝나면 이 생활도 정리할 거야. 그놈 재산을 상속받으면 우리 바다가 도시에 가서 살자.
…
우르릉─ 꽝!
우뢰소리에 나는 흠칫 떨었다. 안해가 쓰고 있는 것은 스릴러였다. 그 이야기에는 나도 등장했고 나는 곧 어떠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뼈속 깊이 한기가 파고들며 온몸이 덜덜 떨렸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가기 전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디서부터였냐고. 그동안의 시간이 모두 거짓인 것이였냐고.
안해는 또 한번 크게 화를 냈다. 책장의 책을 집어들고 나에게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거친 욕설을 퍼부었고 저주의 말을 뱉었다. 그리고 비 오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사라졌다. 마을사람들은 예상이라도 한 듯이 안해가 외간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간 거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상상력이란 언제나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나는 안해를 기다렸다. 그녀의 화가 풀리면 돌아올 것이라고, 그녀의 마음이 변하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주가 지나고 두주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그녀는 소식이 없었다. 나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집을 찾아왔다. 의례적인 것부터 시작하여 의례적이지 않은 것까지 자세히 물었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이 돌아간 뒤 마을에서는 또 다른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안해에게 외간남자가 생겼고 그걸 발견한 내가 안해를 살해한 거라고. 그래서 안해가 사라진 거라고. 소문은 커져만 갔고 심지어 비 오는 날이면 우리 집 3층 가장 서쪽 방 창문에 어떤 녀자가 서있는 것을 본다는 얘기도 퍼졌다. 그때부터였다. 마을사람들은 우리 집앞을 지나갈 때면 발걸음을 빨리했다. 나와 말을 섞는 것조차 꺼려했고 멀리에서 나를 보기만 해도 피했다.
“하… 하하하…”
나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비소리만 방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방을 나가려는 순간 또다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가가각─ 가가각─! 그건 마치 손톱으로 무언가를 긁는 소리 같았다. 나는 몸을 돌렸다. 쓰다듬듯이 벽지를 만지며 앞으로 걸어갔다. 스윽─ 스윽─ 나는 침대 언저리쯤에서 멈췄다. 그리고 벽지에 몸을 밀착하고 낮게 속삭였다.
“여보… 많이 외로워?”
대답은 없었다. 나는 얼굴을 벽지에 대고 다시 말했다.
“외롭지는 않을 거야. 여기 니 친구들 많잖아.”
…
2년 전 그날, 나는 침대에 쓰러져있는 안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흥분한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식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또 한번 집을 짓기로 했다. 그녀와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집을. 나는 벽을 파고 그녀를 안에 넣고 세멘트를 꼼꼼하게 발랐다.
나의 꿈은 건축가였다. 지금 나는 꿈에 그리던 작품을 완성시키는중이다. 마지막으로 벽지를 새로 바르고 나니 그제서야 나와 그녀들의 집이 완성되였다. 컴퓨터 안의 기록은 철저히 지웠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벽지를 만졌다. 부드러운 벽지의 촉감이 손끝에서 전해졌다.
“그러니까 흥분하지 말았어야지. 그러면 좀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너희들은 너무 쉽게 나를 질리게 해.”
띠링─! 휴대폰 문자 알림소리에 내려다보니 얼마 전 독서회에서 만난 녀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선생님, 요즘 좋은 책을 읽었는데 추천해드리고 싶어서요. 주말에 시간 있을가요?”
나는 빙긋 웃으며 답장을 했다.
“물론이죠. 주말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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