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연변축구의 재기, 그것이 그립다 (2)
축구팬을 떠난 축구는 운운할 수 없다

2023-03-21 09:03:34

‘축구의 고향’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이곳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집념은 국내외에 소문나있다. 축구팬의 한 사람이기도 한 필자는 연변축구의 몇개 전성기를 지켜봐왔다. 류장춘 등 카리스마를 갖추고 축구팬문화를 선도했던 팬들도 있었지만 이제 하늘나라로 간 김종목(연변축구팬협회 부회장), 리애신(수박할머니), 김봉숙(소경할머니) 등 가슴으로 연변축구를 사랑한 팬들도 이 동네엔 부지기수였다. 또한 연변축구팬협회, 추구자(追求者)축구팬협회, 쟝저후(江浙户)축구팬협회 등등 조직체계가 엄밀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축구팬조직들은 선수단의 가장 큰 ‘뒤심’이 되여 연변 프로축구의 전성기와 암흑기를 함께 겪어왔다.

매번 경기장에 갈 때면 이들은 자기 돈을 내여 입장티켓을 샀으며 모든 활동경비는 그들 자체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였다. 군중조직인 축구팬협회에는 구락부, 정부의 그 어떤 자금도 조달되는 것이 없다. ‘축구에 미친’ 이들은 자기 돈을 팔며 일전한푼의 보수도 없는 ‘바보짓’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서 쾌락을 느끼며 살아간다고들 말한다.

잠간 우리 축구팬들의 토막이야기를 끄집어내 연변축구와 가슴으로 이어진 이들의 ‘축구사랑’을 되돌아보자.

연변축구팬협회 초창기부터 류장춘 회장과 고락을 함께 해온 고 김종목 부회장의 골회는 “죽어서도 연변팀 건아들의 뽈 차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의 간곡한 유언 대로 연길시인민경기장(연변대학 동쪽 낡은 체육장) 잔디밭에 뿌려지기도 했다. 얼마나 연변축구를 사랑했으면 이 같은 유언을 남겼을가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뜨거운 해볕 아래에서 훈련에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의 갈증해소를 념려해 저축한 돈을 선뜻 쾌척한 ‘수박할머니’ 리애신 로인의 소행은 당시 연변축구계를 크게 감동시키기도 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갔지만 필자의 앞에서 우리 팀에서 누가 몇꼴 넣었는지, 우리의 영웅 지문일 선수가 꼴 몇개밖에 먹지 않았는지 줄줄 외우던 로인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안겨온다…

“올해(2015년)는 라지오 두개를 놓고 듣습니다. 신문도 못 보고 텔레비죤도 보지 못하는 처지라 저는 ‘축구를 듣습니다.’ 연변인민방송국의 남철 아나운서와 윤일 아나운서의 생방송 해설을 통해 연변팀을 손금 보듯 알고 있지요.” 앞을 잘 못보는 ‘맹인할머니’ 고 김봉숙 로인에게 있어서 축구팀이 일궈내고 있는 소식들은 그가 세상을 더욱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활력소였다…

연변의 축구팬들 치고 류장춘이란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축구팬들 속에 널리 알려진 축구팬스타로 지목되던 인물이다. 1996년 7월 5일 그가 자기의 일기책에 또박또박 적어놓은 내용 가운데서 한 구절을 다시 적어본다. “축구팬협회를 조직하기로 결심한 이상 이 사업을 꼭 훌륭히 밀고나가겠다. 정말로 연변팀이 갑A에서 떨어지면 우리 40대의 사람들이 연길에서 다시 갑A 경기를 볼 수 있을가? 진정으로 연변을 위하는 사람이라면 연변팀에 힘을 주어야 한다. 축구가 있기에 전국에서는 연변을 알고 연변사람들도 자랑거리가 있다. 연변을 보다 더 아름답고 부유한 곳으로 발전시키려면 연변의 자랑인 축구에 큰 힘을 주어야 하는데 이는 연변사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연변현대팀을 위하여, 연변을 위하여 현대팀을 열성껏 받들리라.” 지금 다시 읽어도 코마루가 찡해나는 글귀이다.

몇몇 상징성이 있는 축구팬들의 가슴 짠한 이야기이다. 연변축구를 자신의 눈동자처럼 아끼는 이러한 축구팬, 이러한 축구문화 현상은 눈을 씻고 세계 축구계 그 어딜 찾아봐도 없는 것들이며 오직 ‘축구의 고향’ 연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이 고장 축구팬들은 단지 경기를 구경하거나 응원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축구팀의 ‘12번째 선수’가 되여 선수단과 함께 경기장을 누벼왔으며 선수단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로서 그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눠왔다. 직위고하, 남녀로소, 민족차별을 불문하고 축구로 뭉친 이곳 축구팬들은 얼굴을 모르는 사일지라도 경기가 끝난 뒤 맥주잔을 부딪치며 금세 친구가 되여간다. 이 같은 축구풍토에서 연변축구는 생명력을 발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깊게 갈마든다.

올 시즌 야망의 ‘김봉길호’가 연변의 축구팬들과, 아니 글로벌 조선족사회의 축구팬들과 함께 어떤 ‘연변축구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벌써부터 무척 궁금해진다.

  리영수 리병천 기자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2号 | Copyright © 200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