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그러하듯 올해에도 겨울먹거리 준비를 하느라 철에 따라 나물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장만해놓았다.
봄냉이로부터 민들레, 두릅, 닥시싹, 미나리, 곰취, 우정금, 기름고비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 준비하다 보니 랭장고가 차고 넘친다. 처서가 지난 후부터는 풋고추와 김장용 고추, 가지를 말리우느라 법석을 떨었다. 가을을 맞이하면서 일손은 더구나 바빠졌다.
오늘은 아침시장에 가서 감자를 사오고 래일은 큰 장날이니깐 큰 장마당에 가서 김치배추를 사와야겠다. 김치를 하려면 생강과 마늘이 필수로 들어가야지. 무우도 한주머니 사야 하겠지? 오래 두고 먹는 데는 양파가 무난하니 양파도 얼마간 사야하고 동지달에는 메주콩도 삶아야 하니깐 햇콩도 사야 하겠네. 더덕이 제철이니 그것도 장만해야겠구나. 추위가 시작되면 시래기배추와 쌈을 사먹을 양배추도 준비해야 하겠구나. 그리고 과일도, 사과와 사과배면 충분할 테지. 이 겨울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정태관리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깐 쌀, 기름, 소금, 간장, 사탕가루, 식초 따위를 충분히 사놓아야 하겠구나.
이것저것 사느라 부산을 떨다가 어느 날인가 문뜩 가을다람쥐가 생각났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서 먹을 것을 부지런히 날라들이는 가을다람쥐가 내 눈앞에 떠올랐다.
농촌에서 나서 자란 나는 다람쥐와 맞닥뜨릴 수 있는 기회가 참 많았다. 특히 개암이나 도토리, 가래토시나 잣을 따는 계절이면 산에서 다람쥐를 많이 보게 된다. 사람들과 숨박곡질을 하면서 개암이나 도토리나 가래토시나 잣을 날라들이는 다람쥐 모습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입은 꼭 다물고 있지만 량볼은 고무풍선마냥 전에없이 볼록하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다람쥐는 입에 먹을 것을 물어 제 굴에 날라들인다고 한다. 날렵하게 나무가지를 타고 바라오르는 모습이나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가지를 타고 날렵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귀엽다 못해 당장 붙잡아 손끝에 올려놓고 그 재롱을 마음껏 구경하고 싶다. 하지만 다람쥐는 쉽게 사람들 손에 잡히지 않는 령물이다. 작은 몸을 나무에 부착시키고 꼬리를 추켜세우고 고개를 까딱이며 눈알을 돌려 동정을 살피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저 다람쥐 봐라, 너무 귀엽다.” 하고 저절로 소리가 나간다.
입은 언제나 꼭 다물고 있다. 마치 입을 벌리면 입안의 먹거리가 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령리하게 주변을 살피는 품이 누가 입안의 것을 채가기라도 할가 몹시 경계하는 눈치이다. 저 다람쥐는 엄마 다람쥐일가? 아빠 다람쥐일가? 굴에는 새끼가 몇이나 있을가? 다람쥐 굴은 어디에 있을가? 저 작은 입으로 언제 얼마 동안이나 물어들여야 한해 겨울 한집 식구의 먹거리를 충분하게 장만할 수 있을가? 열매가 없는 봄과 여름에는 무얼 먹고 살가? 무척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시절이였다.
가끔씩 차에 앉아 산길을 달릴 때면 다람쥐들이 차 앞을 가로지나 길을 건너는 모습들이 많이 포착된다. 쫑드르르 날랜 몸으로 길을 건너고는 길옆 돌 우에 두 발을 내려놓고 엉덩이를 돌에 붙이고 꼬리를 한들거리며 두 앞발을 쳐들고 지나가는 차를 살핀다. 귀여워서 사진이라도 찍자고 핸드폰을 준비하는 사이면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아쉬움만 남기고서.
령리하고 부지런한 다람쥐, 한가족을 거느리고 겨울 한철에 배를 곯지 않고 무사하게 지내려고 가을 한 철에 부지런히 먹을 것을 장만하는 다람쥐가 오늘따라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나의 부모님께서 어쩌면 부지런한 가을다람쥐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부모님께서는 다람쥐처럼 부지런했다. 그것도 가을다람쥐처럼 부지런했다. 내 자식을 배부르게 먹이고 따뜻하게 입히고 따뜻한 온돌에서 사지를 쭉 펴고 살게 하려고 가을다람쥐처럼 부지런히 돌아쳤다. 봄이면 들나물을 캐들이고 남의 눈에 띄이지 않는 숲속에 황무지를 개간하여 오이, 가지, 파, 호박 등 씨를 뿌렸다. 여름이면 생산대일에 바삐 돌아치면서도 틈을 타서 목이버섯을 따서 말리우고 산나물을 채집해들이고 자류지와 뙈기밭을 알뜰하게 가꾸었다. 가을이면 약초를 파서 알뜰하게 말리워 공소사에 팔아 생활용품을 사는 데 보탬하였고 일년농사 성과물을 알뜰하게 걷여들여 말리고 절이면서 겨울 준비를 충분하게 해놓았다. 겨울이면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매며 맞춤한 크기의 참나무를 찍어 집에 장만해놓고 한오리한오리 켜서는 삿자리를 엮었다. 늦가을부터는 차꼬를 몇틀씩 산에 놓아 꿩을 잡아들였다.(그때는 꿩을 마음대로 잡을 수 있었다.) 꿩을 잡아온 날이면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나에게 먹일 살고기를 따로 발라내고 고기와 뼈를 함께 보드랍게 다져놓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져놓은 ‘뼈쫗이’에 기장쌀가루를 조금 넣고 열심히 치대서 동그란 완자를 빚어놓는다. 무우를 넣고 푹 끓이면 기름이 동동 뜨는 꿩완자탕이 우리를 맞아준다. 꿩고기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면 부모님의 사랑의 향기도 우리 자식들 가슴에 스며드는 순간이다. 널직한 마당에는 가지, 고추, 상추, 배추, 고수풀, 부추, 파, 호박 등을 가꾸어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가지가지 채소로 입맛을 바꾸었고 돌담곁에는 여러가지 과일나무를 심어 알뜰히 가꾼 보람으로 철따라 다른 맛의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닭을 키워 닭알을 받아내고 개를 키우고 돼지를 키워 팔아 여느 집들에서 갖추기 힘들어하는 식장이나 벽시계와 같은 큰 기물도 갖추어놓았다. 부지런한 부모님 덕분에 우리 자식들은 배를 곯지 않고 아무 근심걱정 없이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커왔다. 여느 집들에서 갖추지 못하는 발방아나 매돌도 손재간이 좋은 아버지의 손끝에서 만들어졌고 싸리나무로 결은 크고 작은 다래끼나 삼태기, 버드나무아지로 결은 광주리나 키, 피나무껍질로 결은 홀치기, 비쉬(비수수)로 만든 비자루, 삼껍질을 벗겨 꼬아 만든 길이나 굵기가 다른 바(바줄), 하여튼 우리 집에는 별의별 가정기물이 없는 것이 없이 구전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일손을 다그치는 부모님의 부지런함에는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가슴 저며내는 모진 아픔이 깔려있었다. 가난을 이겨보려고 몸부림치는 고된 삶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힘들지만 자식들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즐거움이 담겨있었다. 내 자식을 남 못지 않게 키워내려는 정성과 신심이 깃들어있었다. 잘 살 날이 돌아올 거라는 앞날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었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서슴없이 한몸을 혹사하면서라도 자식을 보호해주셨던 부모님은 추위를 막아주는 화로불로, 더위를 막아주는 나무그늘로,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바람막이로, 비를 막아주는 우산으로 한생을 살아오셨다.
다람쥐, 가을다람쥐,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자라면서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내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님의 그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처럼 물질이 풍부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세대 부모마음이 물질이 극히 모자라던 부모님 세대의 부모 마음과 같을수 있을가? 비할 수 있을가?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쓰르르해난다. 고된 삶의 역경을 이겨나가면서 자식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던 부모님. 그런 부모님들의 힘든 어제가 있었기에 건강하고 밝게 자란 오늘의 우리가 있지 않을가?
개암이나 도토리를 한입 가득 물고서 제 굴을 찾아 날렵하게 달려가는 가을다람쥐가 눈에 선히 안겨온다. 가족과 함께 추운 겨울을 따뜻한 굴 속에서 배부르게 지내기 위해 가을다람쥐는 쉬임없이 먹을 것을 장만했을 것이다. 부모님께서 생전이라면 아직도 다 큰 자식들을 위해서 손발이 쉴새없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 부모님들을 닮아 나도 내 자식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가을다람쥐가 되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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