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연변! (외 2수)□박송월

2023-03-24 09:41:50

헤이, 연변-

갑자기 연변이 떴다


큰 땅덩어리 방방곡곡 친구들이

호북에서 광주에서 하남에서…

꼭 우리 집에 와서

놀고 가겠단다


준비도 덜 됐는데

고속기차 쌩쌩-

자가용 척척- 몰고 와서

반갑고 당황하다


갑자기 와서 방이 없어도…

변수가 생겨도…

령하 20도 추위도

그들의 타오르는 열정 말릴 수가 없다


아침 10시까지 늦잠 자던 외지 젊은이들

수상시장 구경에

새벽 5시에 나와 눈과 입이 바쁘다

아- 찰떡 한입

아- 순대 한입

아- 김치 한입


어제는 비암산온천,

오늘은 공룡왕국

몸이 하나인 게 아쉽다


때가 되면

비빔밥, 보쌈, 양꼬치…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들이

뒤늦게

뭇사람들의 혀를 마비시킨다


모아산 아래 민속촌에서는

엄동설한 속에서

황홀한 우리 민족 치마저고리 떨쳐 입고

전국 방방곡곡 친구들이

너도나도 공주, 왕자가 되여

자신감을 뽐낸다


친구들이 인터넷을 타고 폭발적으로 찾아와

하루밤 사이에 중앙 티비에까지

얼굴 비춘 자랑스런 우리 연변-


우리 민족 언어는 모르나

그냥 우리 음식에 반해서

그냥 우리 옷에 반해서

보고 싶어 찾아왔다는 한마디에

기쁘고 자랑스러운

요즘 연변이다.


빈 지갑


정식으로 출근해본지가 가물가물하다

몸뚱아리가 돌지 않으니

호주머니도 뼈만 앙상하다


애 낳고 몸이 허해 몇년…

이상한 감기가 살판쳐 몇년을

자의 반 타의 반 백수로 살았다

설날이 오니

가슴만 바질바질 타들어가는데


조급한 마음에

낡은 지갑을 열었다

에게게- 부끄러운 십원짜리 몇장

애꿎은 손톱이 형체를 잃어가는데…

“지금 우리도 된감기에 걸렸으니

너희들도 오지 말거라”

구세주 같은 엄마의 전화 한통


설날 아침이 지나 점심이 오는데

아직도 갈가 말가 망설이는 녀인…


딸애가 혹 감기라도 옮으면 큰 일이야…

어차피 오지 말라 했는데 가지 말자… 에잇

나도 외동딸을 키우는 외동딸이다

씁쓸한 기운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갑자기 허기가 찬다…

밀려오는 수분 쓰나미를 꾸역꾸역 삼키며

못 먹는 소주 한잔을 위 속에 털어넣었다


벌컥벌컥…

죄 없는 소주가 안스럽게

내장을 휘젓더니 이내 범람한다…

변기 속으로…

내 마음보다는 덜 더러운 소주가 왈칵-

설음과 손잡고 달려나온다.


눈치 없는 음력설


올해 음력설은 눈치도 없다

1월에 금방 양력설을 쇠고

그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달포도 안 지나 덜컥 찾아왔다


다들 역병 후유증도 그대로

양력설 기운도 그대로…

그냥 이대로 조금 더 보양을 하고 싶은데

어김없이 찾아온 눈치 없는 아이


어떻게 매몰차게 쫓을 수도 없다

안 숙여지는 고개를 조아리며

서로 겉치레인사를 대충 끝내고

어설프게 369시장에 달려가서

물고기 둬마리, 소고기 닷근을 떼다가

야채에 얼버무려

얼렁뚱땅 큰 설이라고 한상 차려주었다


양력설에 샀던 식량이 남아돌아

스무며칠 쭈욱- 진수성찬 파티

이미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사람들

저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지만

음식은 줄어들지 않는다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려고

소한이 대한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냥 이상한 돈얘기만 얼쩡댈 뿐

보고 싶었소, 듣고 싶었소 같은

정다운 얘기는 눈곱 만큼도 없다…

매일 잘 먹는다지만

웬지 눈동자가 퀭-한 사람들


옛날 음력설은 안 이랬는데

음식이 상에 오르면

금방 동이 났었는데…

사람들 눈에선 별이 빛났는데…

눈치코치 없는 음력설 문제인가

배가 부른 사람들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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