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뽑으면서 □ 최진옥

2023-09-22 09:01:29

조카네 농장으로 가는 걸음은 항상 기분이 좋다. 자전거를 타고 외환로에 들어서면 량쪽에 쭉 늘어선 백양나무가 맞아준다. 백양나무를 보느라면 양삭의 <백양례찬>이 떠오른다. 해볕이 쨍쨍 내리쬐일 때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여주고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에는 말없는 우산이 되여주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올 때에는 바람막이가 되여준다. 오가면서 보느라면 걷기운동을 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그칠 새 없다. 삼삼오오 떼를 지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 라지오방송을 들으면서 걷는 사람도 있다.

처서가 지나면서 키다리 옥수수와 논밭의 벼들이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발그스레하던 옥수수수염이 오늘은 거무스레한 색갈을 띠였고 꼿꼿하게 쳐들었던 벼이삭이 누렇게 색갈이 변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풍년농사를 시샘하듯 갖가지 풀들도 뒤질세라 계절에 따라 날마다 씨앗을 영글어가느라 분초를 다투고 있다.

조카네 농장은 록색농법을 고집하는 농장이라 곡식과 풀이 경쟁이라도 하는 듯싶다. 호미로 김을 매도 매도 자꾸 자라고 손으로 뽑아도 뽑아도 자꾸 자라나는 풀 앞에서 어쩌면 내가 속수무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면서 마음이 허전해질 때가 있다. 풀을 뽑고 나서 며칠 뒤에 농장에 가보면 언제 풀을 뽑았냐는 듯이 또 풀이 무성하다. 다행히 올해에는 과일나무 밑에 비닐을 씌워놓은 보람으로 그나마 풀을 뽑는 면적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비닐 이음새 사이를 용케 뚫고 나온 풀들은 보란 듯이 키돋움하면서 풀 뽑으러 온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살살 불어오는 초가을 바람에 우쭐우쭐 춤을 춘다.

풀과의 전쟁에서 이겨보겠다는 배짱을 가지고 며칠 동안 농장에서 풀을 뽑는 일에 전념하였다. 올해 여름은 비가 자주 내린 탓으로 풀이 더구나 무성한 것 같다. 팥밭으로부터 시작해서 찰옥수수밭, 호박밭, 포도밭, 다래밭, 아로니아밭, 콩밭,하우스 밖에 이르기까지 뽑아놓은 풀이 수북하다. 한곳에 모아놓으면 어지간한 크기의 산을 방불케 한다. 한낮의 태양은 정수리를 따갑게 내리쪼이고 있다. 한참씩 풀을 뽑고 나면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줄 끊어진 구슬마냥 볼을 타고 흐르고 온몸은 물자루가 되기가 일쑤이다. 풀을 뽑으면서 느낀 점이라면 풀마다 자기나름의 사는 개성이 있다는 것이다. 돌피는 한포기에 몇대씩 어울려 자라는데 키만 하여도 한메터 이상씩 자라나고 가지 끝마다 씨앗을 반달형으로 품고 있다. 뿌리는 둥글게 뻗으면서 잘 뽑히지 않는다. 능쟁이는 한포기씩 외따로 자라지만 뿌리가 깊고 무성하고 줄기가 단단하며 가지마다 씨앗을 다닥다닥 달고 있다. 뽑기도 힘들지만 낫으로 베기도 무척 힘이 든다. 마디풀과 닭개비는 땅에 닿이는 마디마다 뿌리를 박으면서 사면팔방으로 뻗는데 마디마디 뿌리를 뽑기가 무척 번거롭다. 도꼬마리는 껍질이 연하여 상처가 나면 진득진득 풀기가 돋으면서 뽑기가 힘들다. 온몸에 잔털이 나있고 이 계절이 되면 갈구리모양의 가시와 짧은 털이 있는 열매가 옷에 척척 붙어나기 시작한다. 쥐콩은 넝쿨이 뻗는 식물이다. 풀중에서도 제일 얄미운 풀이다. 뻗어지는 넝쿨이 다른 식물에 매달리기만하면 다른 식물을 꽁꽁 얽어맨다. 숨이 막힌 식물은 죽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생장이 더디거나 생장을 멈추는 것 같다. 살펴보면 쥐콩이 매달린 아로니아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키가 현저하게 작고 가지도 무성하지 못하다. 쥐콩이 매달린 콩은 키도 작지만 콩이삭도 별로 열리지 못하고 무척이나 왜소하다. 그외에도 이름모를 풀들이 키들이로 자라고 있어 다른 농작물에 영향을 주고있다.

풀을 한포기 한포기 뽑으면서 풀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저절로 감탄을 느꼈다. 한알의 종자가 땅에 떨어져서부터 겨울 추위를 용케 이겨내고 따뜻한 봄을 맞아 새싹을 틔운 그날부터 농작물밭의 풀은 사람이 곡식에 주는 비료의 영양분을 곡식과 함께 향수하면서도 풀을 죽이겠다고 날마다 보이는 족족 뽑아내고 기음을 매버리는 가운데서 용케 살아남는 끈기가 있다. 호미 끝에서 찍히우고 낫 끝에서 잘리우고 사람 손끝에서 뽑히우면서도 뿌리로, 씨앗으로 후대를 번식하는 삶의 방식도 있다. 기계화 농법이 보급이 되면서 많은 농작물밭에서는 농작물 작황에 따라 살초제와 살충제를 치기도 한다. 풀은 이런 세례를 이겨내면서 사람과 환경과 싸우면서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고 후대를 번식하려는 삶의 욕망이다. 잡초라는 이름 때문에 농작물밭에서 송두리채 뽑히워야 하는 운명을 지닌 풀이 어딘가 가엾기도 하고 곡식을 살리고 풍년을 맞이하겠다는 내 욕심 때문에 살겠다고 몸부림 치는 풀을 가차없이 뽑고 베여버리는 내 행동이 어딘가 잔인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풀아! 어쩌겠니? 너는 농작물의 적수니깐 낟알을 먹고사는 사람 앞에서는 송두리채 뽑히울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을!

풀이라고 해서 모두 미움받는 존재는 아니다. 농작물과 한공간에서 나서 자란 풀은 잡초라고 뽑아버려야 하지만 그 풀이 사막에서 나서 자란다면 얼마나 희귀한 보물이 되겠는가. 도로변의 풀들은 비가 많이 내릴 때에 비물에 흙이 씻겨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 아주 유용하다. 경사진 비탈이나 침식으로 골짜기가 형성된 지형에서도 풀은 나무 못지 않게 흙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어 수토보호에 아주 큰 역할을 일으킨다.

풀을 한포기 한포기 뽑아서 뿌리가 땅에 닿이지 않게끔 풀줄기를 돌돌 말아놓으면서 풀과 사람은 생존하는 방식이 나름 대로 같은 면이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 이 세상에 태여난 때로부터 사람은 갖은 비바람을 이겨내고 역경 속에서도 나름 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모색하게 된다. 부모의 욕심이나 본인의 욕망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는 것이 살아가는 데 제일 무난한 길인 듯싶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좋은 일터를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력은 높지 않아도 배운 기술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장사에 능한 사람도 있다. 아니면 지식도 기술도 없이 오직 부지런한 두 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평탄하지만은 않은 저마다의 삶의 길이고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다. 지나온 력사를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시대마다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끈기와 인내로, 지혜와 용기로 모든 고난과 역경을 헤쳐가면서 용케도 생명을 이어왔다. 전염병도, 전쟁도, 가난도, 자연재해도 그 어떤 역경도 사람들이 생명에 대한 끈질김과 삶의 욕망을 잘라버리지는 못했다.

송두리채 뽑히우고 낫에 잘리우고 살충제를 뒤집어쓰면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풀의 끈기, 뿌리와 씨앗으로 후대를 번식하는 풀의 삶의 방식, 땅속에 파묻힌 한알의 씨앗이라도 있거나 가냘픈 뿌리쪼각이라도 있으면 주저없이 싹을 틔우는 불멸의 정신은 어쩌면 사람과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을 하면 무심하게 대할 상대가 아니라고 느껴진다. 풀을 뽑으면서 어쩐지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까지도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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