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봅소, 누김둥? 당신임둥? 예? 이봅소! 영호 아부짐둥?
─어? 당신이 아니구나? 누긴가? 누기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초새벽, 채 거둬들이지 못한 가을채소며 부옇게 시들어가는 풀들 우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짙어가는 가을색에 운치를 더해주는데 고즈넉한 시골마을은 쥐새끼 한마리도 얼씬하지 않고 이따금 먼길을 떠나는 철새들이 보일 뿐이다.
빈집이 사람 사는 집보다 더 많은 마을 가장 앞줄에 위치한 한 집안, 식어가는 가마목에 작은 체구의 아낙네가 홀로 누워있다. 집안엔 구석구석 물건들이 쌓여있고 한쪽엔 부셔놓은 옥수수알갱이가 어지러이 널려있다. 북쪽 창문 아래 놓여있는 침대 우에는 이불이 한쪽으로 밀려있고 저녁에 자다가 추워서 가마목으로 내려온 모양인 듯 얇은 탄자를 덮고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워있는 그 녀인은 몹시 괴로운지 잠결에도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음…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구나. 왜 이리 까맣나? 아직도 날이 밝지 않았나? 오래 잔 것 같은데 아직도 한밤중이구나… 어, 목이 타는구나. 물 좀 마셔야겠다. 으, 으… 이상하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구나. 에구, 왜 이러지? 으, 으, 으… 하, 안되네? 왜 안되지? 일어나야 되는데 왜 움직일 수가 없는 거지? 물도 마시고 약도 먹어야 되는데…
─아, 맞다, 어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늦게까지 일했지? 그래서 맥이 없구나. 흠… 좀 쉬였다가 다시 일어나보자. 오늘은 앞마당 염지도 뽑아야 되고 다드배채도 캐야 되는데…
─일어나보자, 으, 윽…
─에구야… 왜 안되지? 도저히 기운 쓸 수가 없구나. 다리 아픈 데 좋다는 약을 그리도 먹었건만 도통 낫지 않네. 음… 방금 나그내를 본 것 같은데… 내가 꿈을 꿨는가?
녀인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팔을 뻗어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 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몸이 좀처럼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영호 아부지, 날 좀 일으켜줍소, 날 좀…
손가락 까딱할 힘도 나지 않는다. 가마목에서 흘러내린 물에 젖은 모양인 듯 아래도리가 축축했고 어디선가 기분 잡치게 역한 구린내까지 풍겨왔다.
─아, 목이 타네, 물 먹고 싶다…
─이봅소, 영호 아부지, 어딜 자꾸 감둥? 날 좀 일으켜줍소. 예?
벽시계의 시계바늘이 녀인의 애타는 울부짖음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조용한 방안에서 혼자 재깍재깍 소리를 내며 무념무상으로 달리고 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동녘이 훤히 밝아오는데 꼭 감은 녀인의 눈은 도무지 떠질 념을 하지 않고 몇시간째 미동이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조용한 새벽을 가르며 핸드폰이 쉴새없이 울려댄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놓여져있건만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다. 벨소리는 잠간 끊겼다가 다시 울리기를 반복했다.
─누길가? 외지에 나가있는 작은애한테서 왔을가? 연길에 있는 언니한테서? 무슨 일이지? 여러번 울리는 걸 보니 급한 일이겠는데…
급촉한 핸드폰 벨소리에 안달아난 녀인은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여 잡아보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눈도 떠지지 않고 온몸은 물먹은 솜처럼 해나른하여 꼼짝할 수가 없었다. 벨소리는 점점 가늘어져가고 고르롭게 들리던 숨소리도 어느새 점점 미약해져간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원양어선을 타러 갔다가 행방불명이 된 큰아들을 보았다. 얼마나 보고 싶고 또 보고 싶던 큰애인가.
─큰애 너니? 큰애야, 큰애야! 엄마는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너 맞지? 큰애 맞지? 아이구, 흑흑흑, 큰애야, 큰애야, 엄마는 자나 깨나 널 기다렸다!
─어딜 가니? 헉, 큰애야, 자꾸만 어딜 가니? 니 엄마 보러 온 거 아이니? 제발 이 에미 얼굴 좀 봐다오. 큰애야, 큰애야, 가지 말아, 가지…
─영호야, 영호야! 네가 그렇게 행방불명이 되고 나서 엄마는 하루도 발편잠을 자본 적이 없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게 해달라고 그리 빌었는데… 에구, 에구, 영호야, 영호야!
녀인은 큰아들 이름을 부르며 흑흑 흐느끼였다. 창밖은 어느새 환해지고 집들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여오르기 시작했다. 출근이 필요 없는 시골사람들은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이 아침이 시작된다. 뒤집에서 방귀 뀌는 소리마저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오구작작 가깝게 모여 사는 사람들이다.
“명자는 시내집으로 간다더니 전화도 안 받네?”
소피보러 나왔던 박춘자 아매가 녀인네 집쪽을 바라보며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이상하다, 전화를 치면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어디에다 떨궜는가?”
홀로 사는 두 로인은 평소에도 색다른 음식이 있으면 나눠먹기도 하고 힘든 일도 도와서 같이 하며 가깝게 지내는 터였다.
“시내로 올라간다고 한 지 사흘째인데 왜 소식이 없지? 여기에 아직도 할일이 많아서 인차 내려오겠다고 했는데…”
“경활이 처한테 말해서 명자네 시내집 아는 사람이 있으문 가보라고 해야겠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로인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고 뒤집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영일이 엄마, 영일이 엄마 안에 있소? 명자! 명자!”
“창문보 쳐놔서 잘 안 보이네? 안에 있는지 없는지 문을 따봐야지 않을가?”
“빨리 망치나 도끼를 가져오우. 아무래도 문 마사야겠소.”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함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문을 부수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더니 한무리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에구야, 세상에! 죽었재? 죽은 것 같은데?”
“그래말이요,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이요!”
“영일이 엄마, 영일이 엄마! 정신 차려보오. 양?”
“명자, 명자!”
“에구, 굴내를 먹고 죽은 것 같소. 집안에 냄새 나는 거 보오.”
“세상에, 시내로 올라갔는가 했더니 이게 무슨 일이요.”
“영일이 엄마, 정신 차려보오!”
동네사람들이 네 한마디, 내 한마디씩 부산을 떨며 옹송그린 채 꼼짝 않고 누워있는 녀인을 힘껏 흔들어깨운다.
“영일이 엄마, 영일이 엄마!”
“이를 어쩌오? 정말 잘못된 게 아니요?”
“명자, 명자!”
사람들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사경에서 헤매던 녀인이 힘겹게 눈을 떴다.
“어─어─”
큰아들을 따라 정처없이 어디론가 가던중이던 김명자는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자기를 흔들고 있는 사람들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에구, 살았구나, 살았소! 아이 죽었구나.”
“에구머니나, 살아났네.”
“굴내 마셨을 때는 김치국물을 멕이면 된다오. 빨리 찾아보오.”
춘자 아매가 급히 랭장고를 뒤져 김치통을 찾아냈다. 그리고 국자로 김치국물을 떠서 김명자의 입에 갖다댔다.
“빨리 촌장한테 전화하오. 요얼링(120) 불러야지.”
그 와중에 그래도 누군가 촌장한테 전화를 하고 누군가는 120을 부르느라 잘되지도 않는 한어말로 꺽꺽거린다.
“에구, 구린내 진동하네. 바지에 지렸는매요. 남자들은 다 나가있읍소.”
한 아낙네가 따라들어온 남정네들을 급히 밖으로 내몬다.
“빨리 옷으 벗기기오. 저는 갈아입힐 옷으 좀 찾아보우.”
아줌마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오는 사람, 세수수건을 찾아오는 사람, 휴지를 찾아다 변을 닦아내는 사람, 옷장을 뒤져 속옷을 찾아오는 사람… 구린내가 참기 힘들 정도로 역했지만 누구 하나 주춤하는 사람이 없다. 평소에는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시비도 많던 시골아낙네들이 경각을 다투는 한 생명을 위해서 누구 하나 불평이 없었다.
“아니, 요새 명자 안 보였는데 왜 누기두 아이 찾았음둥?”
“이틀 전에 시내에 비여있는 아들집에 올라가겠다고 하더라이. 그 말을 아이 했으문 찾았지…”
“내 전화를 그리 해도 아이 받더라이. 연길에 있는 언니네 집으 갔나 어쨌나 했소.”
“에구, 집에서 이러고 있는 거 모르고.”
“그래도 숨이 붙어있어서 다행이요.”
“명자! 명자!”
잠시 정신이 돌아온 줄 알았는데 녀인은 힘들었는지 겨우 떴던 눈을 다시 스르르 감아버렸다.
“아니, 요얼링(120) 부르기나 불렀소? 왜 아직도 아이 온다우?”
“그러게 말이요. 사람이 죽어가는데…”
“외지에 있는 명자 아들한테도 알려야 되재요? 누기 워이씬 아는 사람이 없는가?”
“우, 옳소, 옳소. 아들한테 알려야지.”
“우리 둘째랑 이 집 둘째랑 동미니까 혹시 워이씬번호 알겠는지 내 물어보기요.”
“양, 빨리 알아보우.”
한 아낙네가 부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들고 위챗번호를 올리훑고 내리훑는 사이 다른 아낙네들은 변으로 범벅이 된 녀인의 몸을 닦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나서 전기담요를 켜고 그 우에 눕힌 후 얇은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었다.
“쯧쯧쯧, 곁에 사람이 없으니 이런 변고를 당해도 모르지. 기딱차라.”
“그러게 말이유. 우리 조금만 신경 썼어두…”
“큰아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 둘째는 외지에 나가있지, 나그내는 일찍 돌아갔지…”
“정말 딱하오.”
“그래말이요…”
녀인의 안타까운 처지에 아낙네들이 한마디씩 주고받는다. 숨소리는 조금씩 고르로워졌지만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채 녀인은 꼼짝 않고 누워있다.
“아니, 그나저나 이 요얼링은 도대체 오긴 온다우?”
“그래말이요, 사람 다 죽겠소.”
애타게 기다리는 구급차는 보이지 않고 길가에 서있던 남정네들이 촌장한테 다시 전화를 한다, 120에 재촉전화를 한다 하며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찬 기운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게 되는 이 새벽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마음한뜻으로 녀인을 살리려고 분주히 돌아치고 있다.
“혼자 쓸쓸하게 죽어가도 들여다볼 사람도 없으니… …”
”그러게 말이요…”
자신들이 김명자 녀인이 당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자다가 그대로 하늘나라로 갈 수도 있고 명절이 되여도 누가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이 쓸쓸하게 보내는 사람도 많다. 누구를 탓하랴! 다 부질없는 짓임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마나, 이 앙까이 어째 숨소리 빨라지우?”
“양? 머이라우?”
이제나 저제나 구급차를 기다리던 아낙네들이 급히 녀인을 흔든다.
“명자! 명자! 정신 차리우. 정신줄 놓으면 안되우!”
“에구, 어쩌나? 명자! 눈 뜨오, 눈 떠보우. 좀만 기다리우. 요얼링 올 때까지 견지하우.”
“명자! 명자!”
아낙네들이 안타깝게 녀인을 부르고 있을 때 출입문이 활짝 열리더니 동네 남정네 두 사람이 들어서고 뒤따라 경찰복을 입은 사람 두명이 들어섰다.
“요즘 120차가 긴장해서 기다리지 말라오. 여기 이 경찰동무들이 명자를 병원에 데려다준다오!”
다급하고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빨리 서두르오!”
“어구, 어구, 우리 왜 이 동무들을 생각 못했지?”
“그러게 말이요. 날래 떠나야지.”
얇은 이불 우에 녀인을 눕히고 둘둘 감싼 후 남자 넷이서 조심조심 들어다 문밖에 서있는 경찰순라차에 실었다.
“누기 따라가야재요?”
“내 갈게.”
“나두 갈게.”
춘자 로인과 경활이 처 김옥금이 생필품 몇가지를 급히 챙겨갖고 차에 올라탔다.
“경찰동무, 잘 부탁하네.”
“에구, 고마워라. 쎄쎄!”
한어말이라야 간단한 일상용어 정도만 가능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진심을 다하여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다.
“예, 알았음다. 걱정들 마십시오!”
푸근한 인상의 경찰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잽싸게 시동을 걸었다.
“날래 날래 갑소.”
병원을 향해 떠난 경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에구, 마을에 파출소 있어서 얼매나 다행이요! 명자 살았소!”
“그러게 말이요. 명자 잘못될가 봐 속이 조마조마했는데…”
“이젠 길도 세멘트길이지, 마을에 파출소도 있지, 죽으라는 법은 없구만.”
“에끼, 이 상황에 롱담이 나오우?”
“방금 촌장이랑 서기도 병원으로 직접 간다고 전화 왔습데.”
“명자네 아들도 련락이 됐다우. 시름 놨소.”
자리를 뜨지 않고 네 한마디, 내 한마디씩 주고받는 새에 어느덧 아침해가 높이 떠올라 고즈넉한 시골마을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밤사이 하얗게 내렸던 서리들이 눈부신 해빛을 받아 반짝이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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