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과파파과일재배
가정농장 책임자 리설나
"사과 뿐만 아니라 촌의 더 많은 량질 농산물을 인터넷을 통해 많은 집들의 식탁에 올리고 싶고 또 소비자들이 먹는 음식에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고 금전만이 아닌 정직함과 량심도 들어있는 상업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2일, 훈춘시 영안진 관문촌의 사과재배기지에 이르니 여러 촌민들이 모여서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유독 다른 촌민들에 비해 나이가 한창 젊은 한 청년이 눈에 띄였다. 그는 사다리 우에서 가위를 손에 쥐고 능수능란하게 잔가지를 쳐내고 있었는데 다른 숙련된 촌민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이였다.
전통 경영방식을 개혁하여 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이어주는 판매네트워크 구축이 리설나의 꿈이였다.
촌민들에 따르면 그가 바로 촌의 연변과파파(果婆婆)과일재배가정농장 책임자 리설나였다. 촌민들은 해마다 리설나가 운영하는 이 과수원에 와 가지치기, 잡초제거, 속과, 수확 등 작업에 참여하면서 용돈을 번다고 했다. 촌민 대부분이 60세 이상 로인이였고 70세, 80세 이상인 로인도 있었다.
이날 만난 90후 대학졸업생인 리설나는 장기간의 실외 로동으로 인해 얼굴이 검게 타있었고 옷차림은 영낙없는 순수 농사군이였다. 그는 “촌에서 사과배 200여무를 재배하고 있고 년간 생산량이 40만근에 달한다. 2016년에 남편과 함께 그의 고향에 와 사과농사를 시작했다.”고 소개하면서 “현재 10여가지 사과 품종을 재배하고 있고 자체 브랜드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농촌에 자리잡고 과일농사를 하고 있는 리유를 묻자 그는 “갓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왜 도시에서 번듯한 일자리를 찾지 않고 농촌에 왔냐면서 리해하지 못했는데 우선 남편이 고향에서 부모님을 도와 사과농사를 하고 있으니 함께 안착한 것이고 다음으로는 과수농장이 전통적인 방식만 답습하면서 운영을 지속해온 연유로 해마다 판로가 시원치 않았고 때로는 구매상들이 가격을 무턱대고 낮추는 일들까지 있어서 그러한 현상을 나의 힘으로 개변시키고 싶었다. 특히 사과농사에 온갖 심혈을 몰부은 우리에게 가격결정권이 없는 현실을 타파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2016년 남편과 함께 남편의 고향에 돌아온 그해 가을에 시장원인으로 많은 사과가 판로를 못 찾고 적체되면서 1년 농사가 물거품이 되였고 가정의 생계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였다. 당시 리설나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흑룡강성에 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친정집의 모든 관계를 동원하여 적체된 사과를 팔았다. 그때를 돌이키면서 그는 “사과를 들고 지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는 나의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거지는 사발을 들고 동냥을 다니지만 나는 사과를 들고 이곳 저곳 찾아다니고 있었다.”고 그때를 돌이키면서 “그때 많이 힘들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무릎을 꿇고서라도 끝까지 갈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번 일을 통해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으로 경영하면 안되겠다는 결심이 머리에 확실히 서게 되였다.”고 말했다.
이듬해부터 그녀는 과수원의 로동을 시부모와 남편에게 맡겨두고 자신은 오직 판로를 여는 일에만 몰두했다. 당시 위챗으로 물건을 파는 위챗상인(微商)이라는 신업태가 한창 떠오를 때였는데 그는 전문적으로 농산물을 파는 위챗상인 팀에 가입하여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요령을 배우고 스스로 홍보그림 제작하기, 광고문구 만들기 등 필요한 기술을 차곡차곡 배워나가기 시작했으며 후에는 업계의 위챗상인들과 손잡고 농장의 사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콰이써우, 틱톡 등 동영상플랫폼이 흥기하게 되자 왕훙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그들이 생방송으로 주문을 받으면 농장에서 사과배를 납품하는 모식으로 경영하기 시작했다.
경영방식을 전변하고 나니 판로가 넓어졌다. 공급이 주문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면 농장에서는 같은 촌, 린근 촌의 사과재배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사과를 거두어들였다. 리설나는 “촌민들의 사과를 거두어들이면서 절대 가격을 낮추지 않았고 품질이 좋은 사과는 가격을 상대적으로 높게 매겨 촌민들을 사과 품질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촌민들이 사과를 품질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방식에 동의를 못했고 중개상들이 거두어들이는 식으로 싼값에라도 한꺼번에 다 가져가길 원했다. 하지만 몇해간의 판매 결과 나에게 납품한 촌민들이 상대적으로 몇만원씩 더 번 것을 보더니 차츰차츰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지금의 삶을 두고 리설나는 “나는 친정집도 농촌에 있고 현재 여기의 농촌생활이 아주 친숙하다. 부모님은 나를 대학에 보낼 때 사처에서 돈을 모아서 등록금을 대주었다. 나처럼 농촌에서 걸어 나온 대학생들은 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허나 나는 학력이 농촌을 떠나기 위한 기차표라고 생각하지 않고 농촌을 개변하는 공구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책을 읽는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감수를 전했다.
또 지나온 과거를 돌이키면서 그는 “사과가 적체된 적도 있었고 중첩되는 난관들 앞에서 방황한 적도 있었고 주변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된 적도 있었으며 지속적인 정신적 압력에 시달린 적도 있었고 친정집에 돌아가기 부끄러운 적도 있었다.”고 말하면서 “다행히 이제는 힘든 시기가 지나갔고 주변의 많은 것들이 이미 변했다. 유독 변하지 않는 하나라면 농업에 대한 사랑이다. 인터넷을 통해 농촌의 농산물들을 광범위하게 판매하여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한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존엄이 있게 하련다.”고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그는 또 “남방의 망고가 동북에까지 오는데 우리의 사과도 충분히 남방시장을 포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과 뿐만 아니라 촌의 더 많은 량질 농산물을 인터넷을 통해 많은 집들의 식탁에 올리고 싶다. 소비자들이 먹는 음식에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고 금전만이 아닌 정직함과 량심도 들어있는 상업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 남광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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