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증을 받는 순간부터 이젠 시간 부자가 되였으니 못했던 일들을 해야겠다고 거퍼거퍼 별렀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침에 깨나 신변사와 끼니를 대충 때우고 앞일을 대수 수습하고 키보드를 잠간 만지면 하루가 퍼뜩 지나가는데, 계산했던 일 다수가 무산된다. 어쩐지 시간은 많아지고 날이 짧아진 기분이다. 단 하나 모임 약속이 잡히면 빠짐없이 달려간다.
퇴직 전 사업 관계로 친구 대부분은 밀레니얼세대(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여난 세대)인 요즘 어쩐지 새세대와 리념과 시각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였다. 특히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로인은 추억에 산다’는 이 거대한 세대 격차에 대한 실감이다. 우리는 종종 옛 추억이 현실보다 훨씬 앞서고 거기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데 젊은이들은 오늘과 미래에 집착하는 것이다.
일례로 궁핍했던 지난날 선조들이 기근과 추위를 감내하며 지냈던 고생의 장면들은 늘 아래 세대에 전해주고 싶은 스토리이다. 그러나 젊은 친구들은 이런 말이 나오면 질색하면서 오늘은 오늘인데 뭐 자꾸 옛날얘기냐며 푸념질한다. 이렇게 매정한 면박을 당하고 나면 늘 속이 불편했다.
50년대 후반 내가 유치원생일 때다. 어르신들이 밤탈곡의 쉼 사이에 무우를 삶아 간장에 찍어 드시던 참담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게 무어길래하며 나도 입에 넣었다가 이상한 맛이라 대뜸 뱉아버렸다. 헌데 그들은 그렇게 맛있게 드시고 다시 고된 로동의 순환에 들어간다. 이 말을 꺼냈더니 젊은이들은 눈확에 동그라미를 치며 아니, 자기 밭에서 자기 피땀으로 지은 자기 곡식인데 왜 자기 두 손으로 쌀밥을 지어 배터지게 못 먹는가하는 것이다. 부연하여, 그 시대 어른들은 한 알의 곡식도 더 남기여 나라 건설을 지원한다는 순정이였다. 바로 선배들은 이런 불퇴전의 의지로 력사를 이어오고 개혁개방의 장엄한 서막을 열었을 것이다.
애시적 우리 집안은 세발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삼간초가였다. 아버지는 생산대장으로 분주하셨고 어머니는 아들 둘 딸 넷의 뒤바라지를 하면서도 집단의 로동 선수로서 불철주야로 헤매였다. 나는 부모님들이 편히 앉아 계시거나 쌀밥을 드시는 모습을 본 기억도 없다. 춘궁기가 되면 쌀이 모자라 푸성귀로 끼니를 때우는데 부모님들은 늘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부어오르셨다. 헌데 그 고된 로동을 견디는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가 실로 신비한 생명 현상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늘 가난은 별개이고 바른 길을 걷고 뜻만 있으면 언제나 부자라 하시던 교시에 늘 마음이 훈훈했다. 부모님들이 어렵던 형편 속에서 집착하던 삶의 신념과 륜리 정신은 나의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남아있다.
그 나날 초근목피로 지은 범벅죽도 유별난 미식이였다. 어느 땐가 허기진 배를 달래려 죽 공기를 들고 후루룩거릴 때 누나들이 더 먹으라며 자기 그릇에서 갈라주며 웃어주던 해맑은 미소가 눈앞에 삼삼하다. 가난 속에서 빛나던 찬란한 인간애이다. 배고픔을 모르는 신세대들은 주머니에 차곡차곡 돈을 쌓아갈 때 그 시대의 인간애를 결코 도적맞히지 말아야 한다는 점 명기해야 할 것이다.
의식주 가난이였지만 문자그대로 마음은 부자였던 시절이다. 나라와 집단의 건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가난을 후대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혈한을 쏟아온 우리 선조들의 분발, 기여와 우애 정신, 이 인간의 령혼을 춤추게 하는 맑은 의지과 륜리는 대물량 물질이나 얽히고설킨 욕망의 계산이 필요치 않았다. 오늘 비록 시대가 변했지만 이 세월을 일궈낸 선조들의 거룩한 뜻과 고매한 넋은 새 세기를 창조하는 밑거름이였었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의 하나가 이야기이다. 지난 시절의 반짝이는 회상을 이야기로 전해야 할 책임은 기성세대의 어깨에 있다. 이는 어떠한 시대를 초월하여 전승해야 할, 즉 력사와 함께 숨쉬여야 할 보귀한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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