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랑촌 산천에 새겨진 파란만장한 홍색력사

2025-08-11 09:14:30

"어랑촌의 산천은 항일전쟁시기의 파란만장한 력사를 기억하고 있다. 이 생생한 력사는 후손들에게 소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남겨져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정신적 동력으로 되여주고 있다."


화룡시 서성진에서 서쪽으로 20여킬로메터를 더 달려 와룡촌 어랑툰에 다달을 즈음, 록음이 우거진 마을 뒤산 한가운데로 길게 뻗은 계단길과 그 끝점에 높이 솟아있는 13용사기념비가 한눈에 안겨왔다. 거리가 꽤 먼 위치였지만 장엄함이 느껴졌다. 산중턱에 솟은 기념비는 마치 마을을 조용히 내려다보면서 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의 파란만장한 력사를  전해주려는 듯싶었다.

13용사기념비.


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의 창설과 발전


마을로 들어가 기념비로 향하는 길에서 도로 한면을 빼곡히 채운 어랑촌전투주제화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총 12개의 면으로 구성되였는데 어랑촌항일유격지의 개척으로부터 여러 전투에 이르기까지의 력사가 상세하게 적혀있어 한여름의 찜통 더위도 잊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에 읽어 내려갔다.

2017년에 새로 세운 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 비석.


어랑촌(현재 어랑툰)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편벽한 산골마을이지만 당시 이러한 지리적 환경은 항일유격전쟁을 전개하는 데 천연적인 보호벽 역할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 1932년 12월에 중공화룡현위원회는 투쟁 수요에 따라 개산툰구, 달라자구, 삼도구, 평강구 등지에서 활동하던 반일유격대와 항일대중을 모아 어랑촌으로 이동시켜 화룡현항일유격중대를 설립하고 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를 창설했다.

와룡촌 입구에 있는 로혁명근거지 비석.


근거지가 창설된 후 중공화룡현위원회는 공청단, 부녀회, 소선대, 아동단, 적위대 및 청년의용군 등 대중조직을 강화하는 동시에 유격전쟁의 수요에 부응해 이불공장, 무기수리공장, 작탄제조공장, 된장제조공장, 병원 등 시설도 잇달아 건설했다.

근거지내의 대중조직들은 근거지 건설 과정에서 큰 역할을 발휘했다. 공청단은 소선대와 아동단을 지도하면서 당의 조수 역할을 충분히 발휘했고 부녀회는 녀성들을 조직해 식량과 자금을 모으고 선전대를 파견해 항일구국 선전활동을 펼치는 등 후방지원 사업을 주동적으로 담당해나섰다. 소선대는 적위대, 반일자위대와 함께 보초 임무와 통신련락 임무를 맡는가 하면 유격대를 따라 직접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13용사의 이야기와 반‘토벌’ 투쟁


근거지가 창설된 후 항일유격대는 어랑촌을 거점으로 수차례 출격하여 일본침략자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1933년 2월 12일 동틀 무렵, 일본침략자들은 투도구, 이도구, 룡정 등지의 일본군 수비대와 자위대 그리고 위만경찰 360여명을 규합하여 련합 ‘토벌대’를 구성한 후 불시에 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를 습격해 미친 듯이 포위토벌을 감행했다. 항일근거지를 보위하고 현, 구 기관과 근거지 백성들을 안전하게 전이시키기 위하여 현위 서기 최상동과 현유격중대 중대장 김세, 정위 김아주머니는 유격대원과 적위대원을 거느리고 침착하게 반격하여 6시간 남짓한 격렬한 전투 끝에 적군 18명을 사살하고 많은 부상자를 냈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결국 13용사는 모두 장렬히 희생되였다.

어랑촌 항일영웅 전시판. 


그 후에도 적들의 야만적 ‘토벌’은 계속되였다. 력량을 보존하고 적을 더욱 효과적으로 타격하기 위하여 1935년 1월에 독립사 제2퇀 제2련, 제3련이 마지막으로 처창즈로 전이하면서 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는 혁명활동을 중지하게 되였다.

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는 2년 남짓한 동안 존재했지만 그 존재와 발전은 연변인민들에게 큰 격려를 주었고 여러 민족 인민들의 단합하여 나라를 구하려는 결심을 불러일으켰다.


영원히 빛바래지 않는 정신적 유산


어랑촌 13용사기념비는 산중턱에 세워져있는데 화강암으로 된 208개의 계단이 산기슭에서 산허리까지 이어진다. 올라가는 계단 량쪽에는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었는데 마치 혁명용사의 영령을 지키는 충성스러운 전사와도 같았다.

13용사기념정자.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기념비광장에 도착하게 된다. 광장 중앙에는 어랑촌 13용사기념비가 세워져있고 기념비 바로 옆에 중대장 김세의 묘와 비석이 있다. 광장에 항일렬사 김세의 묘 하나 뿐인 리유는 당시 전쟁이 끝난 후 김세는 기타 영웅들과 함께 합장되지 않고 그의 한 친척이 마을의 북산인 현재 기념비가 있는 곳에 따로 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의 논밭에서 영웅들을 합장하고 세운 기념비로 추정되는 기념비 받침대를 찾아냈지만 오랜 세월 이곳에서 잠든 영웅들의 영령이 편히 쉬게 하고저 발굴을 멈추고 그곳 주변을 정원으로 가꾸어 렬사안장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13용사기념정자 안에 전시된 촌항일유격근거지의 혁명사적.


기념비 뒤에 있는 벽면에 새겨진 부조는 유격대원들이 어랑촌 항일유격근거지에서 침략자와 싸우는 전투장면을 생동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기념비 동쪽에 건설된 13용사기념정자 안에는 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의 혁명사적들이 만화형식으로 전시되여있어 이곳의 력사를 더한층 깊이 료해할 수 있다.

어랑촌의 산천은 항일전쟁시기의 파란만장한 력사를 기억하고 있다. 이 생생한 력사는 후손들에게 소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남겨져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정신적 동력으로 되여주고 있다. 

글·사진 전해연 기자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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