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흉터□ 송향옥

2026-03-27 09:25:47

사람마다 크거나 작거나 흉터 하나씩은 지니고 산다. 흉터는 내 살아온 삶의 흔적이고 내 소중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리움의 표징이기도 하다.

내 몸에도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긴 흉터가 있다. 그 흉터에는 내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뼈를 깎는 듯한 출산의 고통을 동반했던 그날의 일이 무성영화처럼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결혼을 하자 천성적으로 섬약한 체질 때문에 나는 몇번이나 류산과 조산의 아픔을 겪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간절한데 자식과의 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엄마가 될 준비가 채 되지 않아서인지 아이는 나한테 오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하기도 하고 임산부들을 보면 너무 부럽기도 하였다. 류산의 아픔을 자꾸 겪다 보니 나는 심신이 무척 지쳐있었고 내 몸은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졌으며 더우기 남편 보기 너무 미안해 견딜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남편은 힘든 내 마음을 보듬어주었고 살뜰히 위로해주었다. 남편의 따뜻한 위로는 내 마음에 한줄기 해살이 되여주었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여주었다.

우리 말에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또 한차례 류산의 아픔을 겪은 나는 몸이 회복되기 바쁘게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용한 의사선생님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엄마가 되려는 간절한 념원을 안고 잔뜩 희망에 부풀어 남편과 함께 부인과에 무척이나 용하다는 리춘광 선생님을 찾아 연길로 향했다.

나를 자세히 진찰해보던 리춘광 선생님은 수란관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이 주요원인이라고 하시면서 배침을 맞는 동시에 뜸치료도 함께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치료과정이 좀 고통스러울거라고 덧붙였다. 겁이 더럭 났다. 어릴적부터 약이라면 죽어라고 먹기 싫어했고 담이 작아 근육주사나 점적주사를 맞는다 하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나였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에 나는 결심을 내리고 치료에 나섰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이튿날부터 나는 치료에 달라붙었다. 헌데 치료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반듯하게 누운 자세로 위 부위로부터 시작하여 배꼽 아래까지 한뽐이나 되는 긴 침을 수십대 맞아야 했다. 침이 살을 들어가면 마치 내 오장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극심한 통증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런데 침을 꽂을 때의 아픔도 컸지만 침을 꽂은 대로 한시간이나 버텨야 하는 그 고통도 여간 말이 아니였다. 침자리도 아프고 뒤잔등이 쑤셔났으며 진땀까지 빠질빠질 났다. 게다가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와 꼼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분산시키려고 옆의 환자분과 얘기를 나누지 않으면 애꿎은 시계만 눈이 빠지게 쳐다보았다. 침을 빼고 나면 온몸은 땀벌창으로 되였고 힘이 다 빠진 내 몸은 녹초가 되였다.

거의 한달이란 긴 침구료법이 끝나기 바쁘게 이어 뜸료법이 시작되였다. 약쑥을 침혈이 위치한 살 우에 놓고 불을 붙이면 쑥만의 특유한 향기가 진찰실에 진동한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이어 살이 따가워오면서 이름할 수 없는 아픔이 몰려온다. 그 아픔은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가 없었다. 약쑥이 타들어갈 때마다 나는 너무 아파 몸부림쳤다. 배가죽이 타는 것 같았고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체면이 아니면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뜸 7장을 다 뜨고 나면 배꼽 주위는 벌겋게 되였고 여기저기 물집까지 생겼다. 물집을 터치워야 이튿날에 덜 뜨겁다기에 집에 돌아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바늘을 불에 소독하여 하나하나 터치웠다. 물집을 다 터치우고 나면 상처부위는 너무 아리고 아팠다. 뜸치료법은 침구료법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지만 아이를 갖고 싶은 강렬한 욕망은 모든 고통을 인내하게 했다. 이래서 아마도 녀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하지 않았을가? 미래에 태여날 예쁜 아기를 눈앞에 그려보면서 나는 하루하루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용케도 이겨냈다. 침구료법과 지옥 같은 뜸료법이 끝난 후 나는 의사선생님이 처방해준 쓰거운 첩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임신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고 드디여 나는 임신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가 생겼다. 우리 부부는 너무 기뻐서 서로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였고 행복의 눈물이였다. 그 눈물에 그동안의 모든 아픔과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과 무한한 사랑 속에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냈다. 어느덧 열달이란 시간이 지나고 드디여 새 생명과 만나는 날이 돌아왔다. 진통이 시작되였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선생님은 순산하면 산후 회복이 빠르고 아기 건강에도 더 좋지만 나의 체질 때문에 순산은 불가능하고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식후여서 전신마취를 못하고 국부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 긴장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오, 수술이 잘될 거요. 내가 당신을 지켜줄 거요…”

옆에 있던 남편이 따뜻하게 위로해주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손은 그렇듯 믿음직스러웠다.

수술대 우에 누웠다. 국부마취여서인지 정신이 말쑥했다. 수술의사들의 말소리도 들려오고 배를 가르는 스르륵 하는 칼소리도 들려오고 통증도 약간 몰려왔다. 의사선생님들의 손놀림에 배안의 모든 내장을 다 훑어내는 느낌이였다. 그래도 곧 태여날 아기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입술을 꼭 깨물고 참고 또 참았다.

“응애, 응애…”

아기의 울음소리가 수술실을 가득 채웠고 내 마음에 가장 아름다운 교향곡을 선물했다. 힘찬 고고성을 울리며 태여난 복덩이는 다름 아닌 공주였다. 나는 사지를 바둥거리며 우는 아기를 보고 또 보았다. 두줄기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로부터 나의 배에는 소중한 내 딸을 얻기 위한 아름다운 흉터가 생겼다. 배꼽 아래부터 지렁이처럼 길게 누워있는 흉터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가지기 위해 모든 아픔, 고통과 싸워 이긴 흔적이였고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추억이 살아숨쉬는 항만이였으며 떳떳하게 모든 고난을 이겨낸 자랑스러운 삶의 기록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딸애도 20살의 예쁜 숙녀로 훌쩍 커버렸다. 그 흉터도 20년이란 긴 세월을 나와 아픔도 기쁨도 함께 해왔을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고독과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으며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여주었다. 20년 동안 딸애의 뒤바라지를 훌륭하게 해왔으며 일편단심 변치 않고 남편의 내조를 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가? 그러니 내 배에 남겨진 흉터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흉터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흉측하게 보이는 그 흉터는 우리 가족을 이어준 행복의 끈이였고 나와 딸애의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준 끈이였으며 우리 가족의 행복의 견증인이다.

이제 10년, 아니 20년 후이면 내 머리에도 하얀 서리가 내려앉을 것이고 얼굴은 쪼글쪼글 주름살투성이 할머니로 되겠지만 오직 나만의 아름다운 흉터는 계속하여 내 몸에 남아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내 흉터에 긍정과 찬사를 보내고 싶고 위로와 경의를 보내고 싶다. 아름다운 흉터야말로 진정한 삶의 찬가이리라!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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