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서 잡지에 투고하다 보면 퇴고를 맞는 경우도 많지만 그대로 다른 잡지에 보내지 않는다. 퇴고한 편집에 대한 존중일뿐더러 행여 채용해주는 잡지가 있다면 두 잡지에 대해 편견이 생길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20여년간 전세계 어린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해리포터》는 무려 12번의 퇴고를 거쳐 13번 만에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녀성작가로서 유일하게 두차례 모순문학상을 받은 장결도 41세에 작가의 꿈을 안고 써낸 첫 단편소설이 퇴짜라는 고배를 마셨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한 잡지에 투고했는데 채택되여 발표되면서 제1회 전국우수단편소설상까지 받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였던 것이다. 작품의 가치를 보아낸 《북경문학》 부아문 편집이 아니였더라면 아예 꿈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보면 《해리포터》의 12번의 퇴고, 장결의 처녀작의 첫번째 퇴고는 작품이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였다. 해당 편집의 문학소양이나 안목이 뛰여나지 않아서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보는 눈이 달랐기 때문이다. 도서 혹은 잡지의 성격이나 취지에 맞지 않거나 편집의 취향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잡지를 례로 들면 문학전문지의 편집은 작품의 문학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고 대중잡지의 편집은 작품의 대중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또 잡지의 성격에 따라, 혹은 구독자들의 년령대에 따라 게재하는 글의 양상 또한 다를 것이다. 이렇게 잡지에 따라 채택 여부가 갈라질 뿐만 아니라 편집의 기호에 따라서도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연변문학》, 《장백산》, 《도라지》 등 조선말 대표문학지들을 봐도 주필이나 편집의 취향이 얼추 그려질 만큼 게재되는 글의 풍격,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작가가 조금씩 다르다.
하기에 퇴고당한 글을 무작정 휴지통으로 보내기에 앞서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정성을 다한 글인지, 책임질 수 있는 글인지를 돌아보고 확신이 선다면 퇴고당한 리유를 생각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시 잡지에 어울리지 않아서인지, 편집이 선호하는 글풍격이 아니여서인지를 판단하고 원고의 행선지를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럼 독자들에게는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25권의 저서를 출간하고 모질의 고개에도 여전히 필을 멈추지 않는 김영금 선생님은 《락엽으로 가는 길》이라는 수필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생 동안 글농사를 지어왔지만 가끔 노벨문학상 수상작과 같은 세계명작을 읽고도 도무지 리해를 못하고 재미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별로 이름이 없는 작가가 쓴 글을 읽고는 감동되여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작가의 인지도나 평판을 떠나 작품을 생명으로 하는 김영금 선생님처럼 나 또한 무릇 글이면 이름 있는 작가가 쓴 글이든 문학과는 거리가 먼 어느 과학자의 생활수기든 재미있게 읽군 한다. 작품에 가산점을 줄 수 있는 부가적인 요소들을 떠나 작품 자체로서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고 감동을 준다면 모두 좋은 글이라 하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무리 편폭이 긴 글이여도 읽는 데 할애한 시간이 아깝지 않다면, 급히 써낸 흔적이 보임에도 읽고 나서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게 된다면, 두번 세번 읽었음에도 다시 펼쳐들었을 때 여전히 새롭게 느껴진다면 좋은 글이다. 누군가에게 태작으로 몰림에도 뭔가 티끌만한 계시라도 받게 된다면 그것 또한 좋은 글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좋은 글이 참 많고도 많다.
하지만 중견소설가의 글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또 좋아하는 수필가의 글이라고 매편 다 잘 읽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취향의 차이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글은 곧 누군가의 취향에 맞는 글이다. 독자들마다 보는 눈,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편의 글을 놓고도 여러가지 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불혹의 외출>이라는 글을 써서 세 지인에게 보여주었는데 세분 모두 판이한 평가를 해서 여직 투고를 못하고 보류중이다. 한분은 재미있게 읽었다며 글에 나오는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했고 한분은 주제는 좋지만 앞부분에서 좀 지루한 감이 든다고 했다. 또 한분은 내가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잘 알리지 않는다고 했다. 독자마다 취향이 다르기에 나를 잘 알고 평소 내 글을 좋아하던 지인들조차도 이렇듯 달리 본 것이다. 그러니 생면부지의 독자들이 내 글을 좋아한다는 것은 모래톱에서 같은 모래알을 두번 집어올리는 것 만큼이나 희박한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편집의 구미에 맞는 글, 많은 독자들에게 인정받는 글이 아니여도 괜찮다. 물론 보다 많은 독자들이 공감해준다면 더 바랄 바 없겠지만 단 한 사람이 엄지를 내밀어준다고 해도 좋은 글이라 하고 싶다. 바로 그 단 한 사람의 공감이 내가 계속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리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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