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왕청현 신민가두의 회의실은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길림왕청애국주의교양중심 동만항전력사기념관 교양훈련부 리뢰 부장이 ‘충혼으로 비석을 세우고 실천으로 실적을 쌓자-김상화, 동장영의 사적을 통해 본 공산주의자의 정확한 치적관’을 주제로 특별한 당수업을 하고 있었다.
“1931년 2월 2일, 반동 ‘토벌대’가 대방자촌을 포위하고 중공왕청현위 제2임 서기 김상화와 80여명의 대중을 체포했습니다. 적들은 온갖 혹형을 가하며 당조직의 비밀을 발설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매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리뢰의 낮고 힘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두와 사회구역의 당원, 간부들은 숨을 죽이고 경청했으며 적지 않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관직에 있으면서 한 지역에 복지를 마련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력사와 인민의 검증을 견뎌낼 수 있는 불멸의 실적이란 무엇입니까?”
리뢰의 물음이 회의실에 메아리쳤다. 강의를 듣던 동진사회구역당위 서기 손방유는 수첩에 ‘행하는 모든 일은 력사의 검증과 인민의 평가를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라는 글을 힘있게 써내려갔다.
당수업이 끝난 후 기자는 손방유를 따라 그녀가 10여년간 근무해온 동진사회구역으로 향했다. 도중에 나눈 대화에는 당수업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홍색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선렬들이 목숨을 바쳐 이뤄낸 오늘의 성세를 위해 우리 세대는 력사에 무엇을 공헌하고 미래에 무엇을 넘겨주어야 할가 하고 말입니다.”
동진사회구역에 들어서자 그 해답이 세부적인 모습들 속에서 서서히 드러났다.
“손어머니!”
사회구역의 ‘당애육묘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 어린 소녀가 손방유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왜 서기를 ‘손어머니’라고 부릅니까?”
기자의 물음에 아이는 애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손어머니는 진짜 엄마처럼 다정해요. 생일 때마다 잊지 않고 맛있는 단설기를 사줍니다.”
아이의 눈망울에는 ‘손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가득했다.
손방유의 소개에 따르면 동진사회구역은 도농 접경지에 위치해 외지에서 온 로동자 자녀들이 많은데 그중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꽤 된다. ‘당애육묘의 집’은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여주었다. 매달 집체 생일파티를 열고 영화를 보여주기도 하며 방학 동안에는 온종일 아이들을 돌봐주는 이곳은 이미 아이들의 두번째 집이 되였다.
‘당애육묘의 집’을 나오자 길 건너편 ‘당애우양의 집’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서니 어르신들이 ‘공 주고받기’ 등 게임을 즐기며 여가를 보내고 있었다. 동진사회구역은 ‘약소 중점계층에 초점을 맞추어 ‘두가지 집’을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고사리손과 백발의 만남’ 자원봉사 브랜드를 구축해 청소년들이 독거로인을 돕도록 조직했다. 지난해에만 80여차례의 방문 봉사가 이루어졌다.
“사회구역 사업에는 거창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우리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명심해야 합니다.”
손방유는 새로 교체된 복도 조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낡은 아빠트단지는 밤길이 불편합니다. 우리는 복도 조명 개선 공정으로 60여개의 등을 모두 밝게 교체하여 주민들의 야간 통행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는 사업을 대하는 묵직한 책임감이 서려있었다.
력사에서 현실에 이르기까지, 선렬에서 기층 간부에 이르기까지 붉은 혈맥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왕청현당원교양중심 조춘붕 주임은 “길림왕청애국주의교양중심에 의탁하여 ‘충혼으로 기념비를 세우고 실적으로 치적을 세우자’ 홍색 주제교양 치적관 선전강의를 알심 들여 조직하여 당원, 간부들이 혁명선렬의 초심과 사명을 되새기고 홍색정신을 전승하며 정확한 치적관의 사상적 뿌리를 단단히 다지도록 인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왕청현당원교양중심 조춘붕 주임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정확한 치적관을 수립하고 실천할 데 관한 학습교양이 전개된 이래 왕청현에서는 10여곳의 혁명유적을 보수하고 이를 ‘홍색 교양+치적관’ 학습로선으로 련결했다. 또 온라인으로 항련선렬들의 짧은 영상을 출시하는 등 ‘혁명 전승과 현대 실천’의 두축으로 교양 내역을 풍부히 하고 있다.
이러한 붉은 유전자의 활성화는 실질적인 사업 동력으로 전환되고 있다. 왕청현의 각급 지도자들은 학교 식당 개조, 가스관 갱신 등 54개 민생 대상을 앞장서 추진했다. 기층당조직은 자원봉사를 통해 2000여차례의 봉사를 전개하고 주민들의 ‘작은 소원’ 200여개를 해결했다.
점심 무렵에 찾아간 왕청현제4중학 식당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아침식사는 5원이고 점심식사는 12원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영양가 있는 밥상을 차리는 것입니다.”
장병병 부교장은 과거 시설이 로화되여 방치되였던 식당을 2025년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40여만원의 전문자금을 투입해 개조했다고 설명했다. 새 식당은 저염, 저유, 저당의 영양식단을 제공하며 현재 학생의 70%가 이곳을 리용하고 있다.
집체 생일파티, 복도 전등, 따뜻한 밥 한끼… 사소해보이는 이 ‘작은 일’들이야말로 치적관을 검증하는 가장 정확한 척도이다. 목숨으로 신앙을 지킨 김상화, 동장영 렬사로부터 발로 뛰며 민생의 온도를 재는 손방유 서기에 이르기까지, 100년의 세월을 뛰여넘어 공산주의자들의 정신력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신앙은 반석과 같고 실천은 붓과 같다. 선렬들이 뜨거운 피로 물들인 신앙은 오늘날 왕청의 옥토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신앙은 아이들의 앞길을 비추는 빛으로, 주민의 귀가길을 밝히는 전등으로, 로인들의 만년을 덥혀주는 화로불로 피여나 민심으로 향하는 길을 닦고 있다.
갈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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