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애완견이예요.
말티즈가족의 일원이지요. 이름은 다올이구요. “이 세상 좋은 일이 모두 들어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대요. 나의 주인인 우은정 녀사가 내 이름이 갖는 의미를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해석해주는 버릇이 있어서 나도 내 이름이 좋은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지요.
“다올, 이름 참 잘 지었어요. 작명소 차리셔도 되겠어요.”
“듣고 보니 복이 막 굴러들어올 것 같기도 하네요.”
…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냉큼 나를 들어올려 안으며 부비부비 해주었지요. 나는 그녀의 그런 행동들을 너무 좋아해요. 애정의 표시인 줄 잘 알고 있으니깐요. 사랑을 받는데 싫어할 동물이 어디 있겠어요? 안 그래요? 헌데 요즘 들어 웬일인지 그녀의 그런 행동들이 뜸해졌어요. 그래서 나는 많이 속상해요.
나는 일부러 그녀 앞에 가서 예전에 하던 것처럼 눈길을 맞추려 해보았어요. 그런데 외면을 해버리더군요. 이번에는 모르는 척하고 예능프로를 시청하고 있는 그녀에게 슬쩍 가서 안겨도 보았어요. 바로 밀쳐버리더군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그 영문을 알 길이 없어서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함께 한 8년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였어요. 벌써 8년, 그러고 보니 그녀와의 우연한 상봉은 꼭 8년 전 그 밤에 이루어졌어요.

내가 살던 옛 주인집에 귀여운 아기가 태여났어요. 그 바람에 나는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그것도 모자라 몸조리를 해주러 온 아기의 외할머니가 막무가내로 나를 밖으로 쫓아버렸어요. 그날이 내 첫돌 생일날이였는데 말이예요. 나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종일 쓰레기통 주위를 맴돌 수밖에 없었어요. 누군가 먹다가 버린 말라 비틀어진 빵을 발견하고 덥석 입에 넣었을 때였어요.
“쿵─”
주위 가까운 곳에서 뭔가 떨어지는 듯한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쓰레기통과 멀지 않는 곳 길가 벤취 앞에 뭔가 떨어져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어요. 호기심에 참을 수가 있어야죠. 잽싸게 달려가보았지요. 술냄새가 확 풍겨오더라구요. 자세히 보니 술에 취해 잠이 든 녀자였어요. 배고픈 것도 잊고 지켜보았어요. 그런데 이 녀자가 술을 얼마나 퍼마셨는지 길거리에 누워서 겉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집 안방이라고 착각했던 모양이예요.
‘어머나! 이런 망신을!’
야심한 밤이여서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라요.
“멍멍”
큰소리로 짖어보았어요. 별 반응이 없더라구요.
“배… 신자. 내가 얼마나… 잘… 잘… 사…”
나는 그녀가 걱정되여 꼬박 밤을 새며 곁을 지켰어요. 이윽고 동녘이 서서히 밝아왔어요.
“물…”
그녀가 입을 쩝쩝 다시며 몸을 움직였어요.
“멍─멍─머엉─”
이때라고 생각한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짖어댔지요. 내가 짖어대는 소리가 시끄러웠던지 그녀는 몇번 몸을 움찔거리더니 눈을 반쯤 뜨는 것이였어요. 누운 채 한참이나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였던 모양이예요. 놀란 듯 화다닥 일어나 부리나케 옷을 주어 입었어요. 진짜 빛의 속도면 그보다 더 빠르랴 싶었어요.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쥉쥉 앞으로 걸어갔어요. 나는 생각 없이 그녀의 뒤를 졸졸 따랐어요. 정신없이 걸어가던 그녀가 갑자기 돌아서더군요. 그 바람에 나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죠. 한참을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군요.
“네가 날 밤새 지켜줬니? 아. 너무 귀여운데?”
그녀가 몸을 굽혀 나를 안았어요. 그날부터 나와 그녀의 동거가 시작되였어요. 그녀의 집은 달팽이만한 원룸이였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깔끔했어요. 나를 데리고 집에 들어서서 그녀가 처음으로 한 일이 랭장고에 붙어있던 사진들을 갈기갈기 찢어 휴지통에 버려버린 일이예요. 나는 그 사진을 얼핏 보고 쑥스러워 머리를 돌려버리고 말았어요. 언니랑 어떤 남자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였으니깐요. 그들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어요. 그 남자가 입고 쓰던 물건들을 커다란 트렁크에 담아 문밖으로 내다 버리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긴 했어요. 그 점을 봐서는 꽤 오래 사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게다가 그녀의 나이는 얼핏 보아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였어요.
다행히 그녀는 첫인상과 달리 막 나가는 그런 녀자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더라구요. 알콜이 조금만 들어가도 이내 취해버리는 그런 체질인 것 같았어요. 그런 그녀가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았으면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마셨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 측은지심이 들더라구요.
그녀는 거의 대부분 아침에 출근을 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군 했어요. 내가 보기에는 꽤 착하게 사는 녀자로 보였어요. 친구도 별로 없는 것 같더라구요. 그녀는 퇴근을 하면 거의 대부분 시간을 나와 보냈어요. 그녀가 집에 있을 때면 나는 제일 행복했어요. 그녀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도 좋았고 그녀가 조용히 책을 읽는 것도 보기 좋았어요. 컴퓨터를 켜고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는 것도 물론 신나는 일이였죠.
가끔씩 그녀의 얼굴에 먹장구름이 몰려오거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도 더러 있긴 했어요. 그때마다 나는 그녀가 가능한 빨리 기분 전환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온갖 재롱을 다 부리군 했어요.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하길 바랐으니깐요.
그녀가 외출할 때 열쇠나 휴대폰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면 내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주군 했어요. 그녀가 아프면 휴대폰을 그녀 침대머리에 가져다 놓기도 했어요. 필요한 것을 휴대폰으로 배달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배달이 되지 않는 약방은 내가 직접 심부름을 하기도 했어요. 물론 자주 다니는 상점, 약방, 음식점 주인들은 나를 알아주고 믿어주었기에 심부름도 가능한 일이였지요.
“울 복덩이. 언니가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울 다올이 없었더라면 언니가 진짜 많이 힘들었을 거야. 혜성처럼 짠 하고 나타나줘서 언니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지? 사랑해. 울 다올.”
언니가 기분이 좋을 때면 나를 안아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군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빠트단지에 사는 남자아이가 나를 랍치하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내가 귀엽다면서 덥석 안고 자기네 집으로 달려갔지요. 내가 막 짖었는데 안타깝게도 언니는 통화를 하느라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어요.
그 아이는 종일 나를 괴롭혔어요. 나를 너무 힘주어 껴안아서 숨도 바로 못 쉬게 한다든가 피하면 피한다고 따라와서 발로 걷어차기도 했어요. 장난감 총으로 나를 겨냥하고 쏘기도 했어요. 그 아이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나는 언니가 보고 싶어 잠도 바로 자지 못했어요. 밤새 깨갱거리자 남자아이가 와서 또 폭력을 가하더라구요.
다행이였던 것은 이튿날 남자아이가 잠든 사이 남자아이 엄마가 전단지 하나를 찢어와서 그 번호 대로 전화를 거는 것이였어요.
“안녕하세요. 댁이 찾는 강아지를 지금 제가 데리고 있어요. 주인을 잃은 것 같아서 제가 데리고 왔어요. 주인을 찾아 다행이예요. 제가 어떻게 보내드릴가요?”
슬쩍 전단지를 보니 아주 큰 용지에 한눈에 봐도 잘 보이게끔 큼직큼직하게 타자된 글이였어요. 목에 빨간 리봉을 맨 나의 채색 사진까지 첨부되여있었어요.
아줌마 품에 안겨 언니가 기다리는 아빠트 대문까지 가는 길 곳곳마다 똑같은 전단지가 잔뜩 붙어있더라구요. 그것을 보면서 눈물이 막 날 것 같았어요.
“다올아!”
언니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막 뛰여왔어요. 나도 힘껏 아줌마 품에서 빠져나와 언니에게로 달려갔어요. 언니는 나를 꼭 안고 내 얼굴에 자기 볼을 가져다 댔어요. 나는 언니의 눈물이 내 몸에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 저기. 그 사례금 준다는 말 잊지 않으셨죠?”
아줌마가 언니를 쳐다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어요.
언니는 그제야 뭐가 생각난 듯 가방에서 돈을 꺼내 세기 시작했어요.
하나. 둘… 열.
언니는 빨간색 지페 열장을 꺼내 아줌마에게 건네면서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였어요.
“멍멍멍!”
나는 혐오스러운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이악스레 짖어댔어요.
“고만해 다올. 널 찾아준 고마운 분이야. 언니는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 널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언니는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니깐.”
언니는 눈물이 글썽하게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그랬던 언니가 요즘은 무슨 일로 삐졌을가요? 어떻게 언니가 나를 본체만체할 수 있단 말이예요?
2
요즘 할머니의 이상 증세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점심에 나보고 먹으라고 준 물고기가 짜다 못해 소금을 먹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짜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전에는 이 정도로 심하지 않았었는데 참 걱정이였어요.
오늘도 할머니 때문에 진을 무척 빼고 말았어요.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데 할머니가 자꾸 엉뚱한 데로 향하는 것이였어요. 바지가랭이를 물고 집 방향으로 끌어서야 겨우 집으로 모셔올 수 있었지 뭐예요.
“이게 뭐냐? 다올아, 할미 바지가 다 찢어졌잖아. 다음부턴 그러지 말거라 잉?”
할머니 말을 듣고 있자니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멍멍, 멍멍…”
분명 할머니가 잘못해놓고 나를 뭐라고 하면 어떡해요. 나는 뭐 밸도 없는 동물인 줄 아는 모양인가봐요. 쳇, 다음에 또 다른 곳으로 가면 난 못 본 척할 거예요. 알아서 찾아오든가 말든가 하라죠 뭐. 어디 한두번 있는 일이여야 말이죠.
“그래, 알았다. 고만해. 시끄러우니까. 할미가 또 깜빡했던 거야? 아이고 우리 복뎅이 이뻐 죽겠네. 할미가 집을 찾지 못할가 봐 걱정됐구나. 아이고 기특해라!”
할머니는 나의 잔등을 쓰다듬어주었어요. 그제야 화가 좀 풀리더군요.
아 참, 깜박했네요. 할머니가 누구냐구요? 궁금하죠? 할머니는 바로 우은정 녀사의 시할머니 되는 사람이예요. 뭔 생뚱같은 시할머니냐구요? 혹시 그녀가 결혼을 했냐구요? 그렇죠! 딱 맞추었어요. 언니가 그사이 결혼을 했어요.
우리가 동거한 지 2년이 좀더 지나서였어요. 그날은 언니의 30대의 마지막 생일이기도 했어요. 생일인데 왠지 언니가 좀 우울해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날 내 견생 처음으로 언니가 따라주는 맥주를 다 먹었어요. 케익도 평소보다 좀 과하게 먹었구요. 그래서인지 점점 힘들고 괴롭더라구요. 속도 울렁거리고 말이예요. 내가 축 처져서 꼼짝 못하고 있자 급해난 언니가 나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다올, 미안해. 언니가 미쳤나봐.”
언니는 내가 미안해할 정도로 그 말을 씹고 또 곱씹었어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괜찮아요.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하지만 다음엔 절대 안됩니다. 강아지가 알콜을 흡수하면 분해할 수 없기 때문에 적은 량이라도 중독될 수 있어요.”
의사는 말을 하면서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어요. 마치 얼마나 술친구가 없었으면 애완견 하고 술을 마시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였어요.
언니는 의사의 알 수 없는 표정에 낯을 붉히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어요. 언니는 나에게 맥주를 따라준 것에 대해 심한 자책을 하고 있는중이였거든요.
그러던중 언니의 눈길이 의사의 앞가슴에 머물렀어요. 언니의 눈이 반짝 빛나는 것 같았어요. 언니는 의사의 앞가슴에 달린 명찰을 가리키며 떠듬거렸어요.
“이름이 왜요?”
“이름이 정은우 맞아요?”
“네. 맞아요. 헌데 이름이 왜요? 혹시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내 이름과 같나요?”
“그런 건 아니구요. 저의 이름을 거꾸로 적은 것과 똑같아서 살짝 의아하기도 하고… 저의 이름이 우은정이거덩요.”
“네? 우은정? 정은우. 이건 진짜 운명 같은 사연인데요? 어쩜 이런 우연이 다 있을가요? 이건 그저 넘어가면 안되는 일인 것 같은데요. 그렇죠?”
정은우의 제안으로 우리 셋은 포장마차로 향했어요. 그 일이 인연으로 되여 결혼까지 쭉 가게 되였구요.
정은우는 갱핏한 몸매에 날카로운 코날이 인상적인 45세의 리혼남이였어요. 맑은 피부결을 가진 오목오목 귀엽게 생긴 언니랑 천생배필일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나는 본의 아니게 중매쟁이가 된 셈이였구요. 물론 언니는 그 일도 저의 복을 빌어 이루어진 혼사라고 굳게 믿는 눈치였어요.
결혼을 하면서 정은우가 할머니랑 같이 살던 방 두개짜리 아빠트를 새롭게 장식해서 우리 셋이 따로 살게 되였어요. 할머니는 자진해서 아래층의 작은 집을 세 내여 독립을 선포했어요. 언니 말에 따르면 아빠트는 할머니 명의로 되여있대요. 국영음식점의 경리였던 할머니가 음식점이 문을 닫게 되자 그 음식점을 넘겨받아 장사를 했던 모양이예요. 음식점을 해서 번 돈으로 해변도시 대련에 아빠트를 마련했던 거래요.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 왠지 기품이 있어보였어요. 특히 짧게 잘 다듬어진 은발이 눈에 띄였어요. 년세가 적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카리스마가 살아있더라구요.
어디 그 뿐이겠어요? 부모를 일찍 여읜 손자 정은우도 할머니 손으로 직접 키우셨대요. 게다가 손자에게 집을 양보할 정도로 손자를 끔찍이 사랑하는 분이였어요. 할머니의 배려 덕분에 언니와 나는 긴 세집살이를 청산하고 좋은 아빠트로 이사를 할 수 있게 되였어요.
“다올, 우리도 아빠트가 생겼다! 다올이 방도 생기고! 너도 좋지?”
이사하는 날 언니는 너무 좋아서 나를 안고 퐁퐁 뛰였어요. 언니랑 한방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언니가 좋다는데 어쩌겠어요. 좋아하는 척 할 수밖에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참 단단하신 분이셨는데 2년 전부터 할머니 상황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어요. 남새를 살 때 분명 10원을 치르면 되는데 100원짜리를 주고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가 하면 가스불을 켜놓고 외출을 한 적도 있었어요.
눈치를 챈 언니가 정은우에게 할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냐며 상의했어요. 정은우는 차마 양로원은 못 보내겠다며 조금만 지켜보자고 했어요. 나중에 손자도 못 알아볼 정도가 되면 그때는 고려해보겠다면서 우선 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오게 되였어요. 언니는 썩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어요. 언니의 표정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어요. 하긴 언니가 반대할 처지는 아니죠. 할머니 이름으로 된 집에서 공짜로 살고 있었으니깐요. 대련시에서 노란자위로 꼽히는 중산구의 좋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반대 의견을 내겠어요?
나는 그때부터 할머니랑 부쩍 친한 사이가 되였어요. 할머니가 나와 방을 같이 쓰다 보니 거의 하루종일 붙어있다싶이 했어요. 할머니 역시 언니 못지 않게 나를 이뻐해주었어요. 할머니가 병이 심해지기 전까지는 말이예요.
할머니가 나를 고와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언니도 예전처럼 나를 사랑해주면 얼마나 좋을가요? 어떻게 하면 언니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러자면 언니가 왜 나랑 삐졌는지 그 원인부터 찾아내야 하겠지요?
3
언니가 화가 나서 떠드는 소리에 나는 낮잠에서 깨여나고 말았어요.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른 내 방문 뒤에 숨었어요. 숨을 죽이고 틈새로 동정을 살폈어요. 언니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봤어요. 언니가 얼굴이 검으락푸르락 해서 할머니에게 야단을 치고 있었어요. 잘못을 저지른 학생처럼 잔뜩 주눅이 들어 구석에 서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어요.
단정코 나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슬그머니 방문 뒤에서 나왔어요. 나는 언니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대뜸 알 수 있었어요.
글쎄 할머니가 언니의 화장품을 꺼내 자신의 얼굴에 덕지덕지 발랐더라구요. 마치 얼굴에 밀가루를 한웅큼 뿌려놓은 것 같았어요. 게다가 빨간 립스틱도 입술에 비뚤비뚤 칠해놓아 정말 가관이였어요. 그 뿐이면 몰라도 언니가 애지중지하는 원피스도 꺼내 입었더라구요. 작아서 들어가지 않았는지 가위로 마구 찢어서 너덜너덜하게 된 옷을 말이예요. 정말 혼자 보기가 아까울 정도였어요. 그러니 언니가 화가 나지 않게 생겼냐구요? 보고 있으니 너무 기가 막히더라구요. 내가 다 속상한데 언니 마음이야 오죽했겠나요.
“멍멍, 멍멍!”
나는 언니랑 한편을 하고 싶은 생각에 할머니를 향해 짖어댔어요.
“시끄러워! 다올이 너도 잘한 것 없어.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지. 이렇게 엉망이 되도록 잠만 퍼 자고는 뭘 잘했다고 짖어대는 거야?”
언니는 화장대 거울의 립스틱을 닦으며 죄 없는 나에게 화풀이를 해댔어요. 물론 나는 언니 앞에서는 깨갱─ 소리도 못 냈지요. 그제야 나는 언니가 왜 나한테 화가 나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더라구요.
지난 주 일요일, 할머니가 바다가에 가겠다고 해서 할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바다가에 간 적이 있어요. 언니는 정은우가 있을 때면 항상 할머니에게 사근사근하고 고분고분했거든요.
재수가 없으려고 그랬던지 바다가에서 노닐고 있는 도중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휙 하고 불어왔어요. 그 바람에 할머니 모자가 날아가버렸지 뭐예요. 나는 대바람에 모자가 날아간 방향으로 달렸지요. 그런데 내가 달려가는 사이에 언니의 스카프도 날아가고 있었어요.
“다올, 스카프!”
언니가 나에게 막 소리를 쳤는데 나는 할머니 모자를 줏느라 언니의 스카프를 놓치고 말았어요. 그 바람에 언니의 스카프를 바다에 선사하고 말았어요. 정은우가 언니 생일 선물로 사준 스카프인데 말이예요.
“다올, 언니 스카프가 날아가버렸단 말이야. 복이 따라온다더니 복이 간다. 가!”
언니는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굴렀어요.
“왜 애매한 다올을 욕하고 그래? 다시 사면 되지. 화 풀어.”
정은우의 말에 언니는 대뜸 하던 말을 멈추었어요. 하지만 정은우 몰래 나를 흘겨보았어요. 화풀이도 제대로 못하고 울상이 된 언니를 보면서 나는 뒤늦은 자책을 했어요. 언니 스카프를 놓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요. 하긴 내가 바보였지요. 무조건 언니 편에 서야 하는 내가 그까짓 할머니 모자나 주어왔으니 언니가 나한테 화가 날 만도 하지 않겠어요? 이름값도 못하는 등신이 되여버렸으니깐요.
그날 저녁, 언니는 퇴근하고 돌아온 정은우의 등을 도로 밖으로 떠밀었어요. 언니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정은우에게 일러바쳤어요.
“아무래도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효도도 좋지만 그냥 모시고 있는 것만이 대책은 아닌 것 같아요. 양로원으로 보내든지 정 그게 어려우면 도우미를 쓰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방치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난 두려워요. 직장에서도 늘 감시카메라로 할머니를 신경 쓰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당신 화 많이 났겠다. 그래도 어쩌겠어? 할머닌 아픈 사람인데 당신이 참아야지. 화장품 내가 최고급으로 다시 사줄 테니 화 풀어. 응? 래일부터 일주일간 출장 가야 하니깐 갔다 온 다음에 어떻게 할지 잘 의론해보자. 당신 며칠만 더 고생해줘? 다올아, 넌 집에서 할머니 잘 감시하지 않고 뭐했어?”
정은우는 품에 안은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걔도 요즘 할머니 닮아가는가봐요. 같이 있으면 닮는다더니… 예전 같았으면 할머니를 제지를 시키고도 남았을 다올이예요. 얼마나 똑똑했었다구요. 치매도 전염되나봐요. 난 요즘 다올이한테도 실망이예요.”
내가 할머니를 닮다니요? 언니!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함부로? 치매라니요? 나는 졸려서 잠을 잤을 뿐이예요. 나는 울상이 되여 언니를 쳐다봤어요. 나도 요즘 사고를 많이 치는 할머니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고 정신을 차릴 틈이 없었단 말이예요.
“다올이가 자긴 아니라고 당신한테 항변하는 것 같은데? 아이고 무서워라. 다올아, 언니가 할머니한테 치매 전염된 것 같으니 우리 빨리 도망가자!”
정은우는 나를 안은 채 집 방향으로 달음박질했어요.
“같이 가요!”
끌신을 신은 언니가 우리 뒤를 부지런히 따라오고 있었어요.
“아이쿠! 할머니 이게 뉘 집 할머니예요. 손자인 나도 못 알아보겠어요!”
집에 들어서던 정은우는 할머니를 보면서 너무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어요.
“어서 오십시오!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인차 음식을 내여드리겠습니다!”
할머니가 앞치마를 두르고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쌀은 포대 채로 꺼내 물에 불려놓았고 랭장고에 있는 남새랑 과일을 몽땅 꺼내서 객실에 쭉 늘여놓았더라구요. 정은우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우두망찰 문 앞에 서있었어요. 뒤따라온 언니도 똑같은 표정으로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어요.
4
정은우가 출장을 간 이튿날 할머니가 또 사고를 치고 말았어요.
언니가 고기를 굽느라 출입문을 열어놓은 것이 사달이라면 사달이였지요. 할머니는 용케도 그 틈을 타서 살그머니 밖으로 사라졌던 거예요. 나는 급하게 할머니 뒤를 따르느라 언니에게 알릴 겨를도 없었어요.
하긴 언니가 출근할 때면 매일 문을 밖에서 잠가놓기에 안에서는 문을 열 수가 없었어요. 그 바람에 할머니가 많이 답답했던가봐요. 할머니는 오늘 따라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어요.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나마저도 할머니를 따라가기가 힘들 지경이였어요. 사위가 어두워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걸었어요. 안되겠다 싶어 할머니 바지가랑이를 물었어요. 바지가랑이를 물면 할머니가 순순히 나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군 했으니깐요. 그런데 이번엔 아니였어요. 할머니가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어요. 안되겠다 싶어 급히 언니에게 알리러 집으로 달려갔어요.
“다올, 할머니는?”
언니에게 알리러 집으로 가는 도중 할머니를 찾아 나온 언니랑 길에서 마주쳤지 뭐예요.
“멍! 멍!”
나는 할머니가 사라진 방향에 대고 두번 짖고는 앞장섰어요. 그런데 아무리 뒤쫓아가봐도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어요.
“다올아, 할머니 이쪽으로 간 거 맞아?”
언니가 지쳐 헐떡거리며 물었어요.
“멍! 멍!”
나는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줬어요.
“안되겠다. 아저씨한테 알려야겠다.”
언니는 정은우한테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곧이곧대로 알려주었어요.
“치매인 줄 알면서 그렇게 소홀하게 대하면 어떡해? 좀 잘 챙겼어야지. 무슨 일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내가 출장 나온 지 겨우 하루밖에 안됐는데 딱 하루 만에 이런 일이!”
언니가 스피커 모드로 통화를 했기에 정은우의 조급하고 화난 목소리가 똑똑하게 들렸어요.
“고등어 비린내 때문에 잠시 문을 열어놓았다고 했잖아요! 그새를 못 참고 나갈 줄 내가 알았나요? 그러게 내가 뭐라 했어요? 고집은 당신이 부렸잖아요!”
정은우 앞에서는 순하기만 하던 언니도 이번엔 발끈했어요.
“아, 됐고. 혹시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려봐! 내가 파출소에 신고할 테니깐! 아! 랠 오전에 발표가 있는데 어쩌지? 암튼 소식 있는 대로 알려주고!”
통화를 마치고 우리는 맥없이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는 꽤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어요. 정은우의 확인 전화가 수시로 왔기 때문에 자려고 해도 잘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함이 더 적절할 것 같네요.
“다올아, 언니는 왜 이렇게 졸릴가? 넌 안 졸려? 우리 이젠 잘가? 할머니야 돌아오든지 말든지.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자자!”
그날 언니는 오랜만에 나를 안고 잠을 잤어요. 나는 너무 행복해서 할머니가 실종된 사실도 망각할 정도였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까지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할머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할머니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간 했어요.
언제 일어났는지 언니는 책상 앞에서 자그마한 종이에 펜으로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어요. 쪼르르 달려가 보았어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언니를 쳐다보았어요.
“다올, 일어났어? 언니가 읽는 것 들어봐. 이렇게 하면 되겠는지? 잘 들어. 사람을 찾습니다. 중산구의 주민인 김정자(녀, 96세)씨를 찾습니다. 키: 156cm 좌우, 몸무게: 64kg 좌우, 검정색 바지, 옥색 반팔 착용. 치매기가 있습니다. 목격하신 분은 아래 전화번호로 련락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때? 이렇게 쓰면 되겠지?”
나는 머리를 갸우뚱했어요. 컴퓨터를 능란하게 잘 다루는 언니가 왜 이번에는 타자해서 인쇄를 하지 않았을가? 할머니 사진도 붙이지 않았고 사례금 소리는 더군다나 없었어요. 하긴 사례금을 주는 건 나도 좀 반대예요. 지금도 나를 랍치했던 남자아이 엄마를 생각하면 화가 나니깐요.
“아. 맞다. 날자를 써야겠지? 오늘이 며칠이덩가?”
언니는 다시 펜을 들어 날자를 추가하는 것 같았어요.
“다올, 언니랑 이거 붙이러 가자! 아저씨가 오기 전에 빨리 붙여야 하니깐.”
그제야 나는 언니가 작성한 전단지가 곧 돌아올 정은우에게 보여주기 위한 쑈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전단지에 사진도 안 붙이고 사례금 말도 안 꺼내서 이상했는데 금방 의문이 풀렸어요.
언니는 냉큼 나를 들어올려 부비부비 해주었어요. 그러고는 여러장으로 복사를 한 전단지를 정은우가 잘 볼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붙이기 시작했어요.
“이따위로 써서 사람을 찾을 수 있겠냐? 사진도 붙이고 사례금도 준다고 해야 찾을 수 있지! 나이도 아흔여섯이 아니고 아흔! 옥색 반팔 아니고 빨간색!”
언니가 손놀림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어요.
“어머나!”
언니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어요. 그 바람에 나도 깜짝 놀라 캐갱─하고 말았어요. 언제 훔쳐갔는지 할머니는 언니의 빨간 립스틱을 삐뚤삐뚤 입술 주위에 바르고 삼검불이 된 은색머리카락을 날리며 뒤짐을 지고 서있었어요.
“뭐하고 있냐? 빨리 집에 가자! 전단지 덕분에 사람 찾았으니깐!”
할머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집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나와 언니는 잠시 시선을 마주치고는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향했어요. 좀 전의 날 듯한 기분과는 달리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언니도 두 어깨가 축 처져있는 느낌이였어요.
그때였어요. 어디선가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휙─지나가면서 나와 언니는 먼지 세례를 받고 말았어요.
앞에서 걸어가던 할머니가 갑자기 휙 돌아보며 말했어요.
“아가. 좀 전에 내가 진국장 사무실 앞에서 밤새 기다렸는데 안 나오더라. 그 량반 어디로 갔을가?”
할머니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었어요. 오래전에 돌아가신 진국장을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이예요.
“북대하로 놀러 가기로 했는데…”
할머니의 얼굴에 간절함이 묻어있었어요. 곧 울어버릴 것 같기도 했어요.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뒤져서 봉투까지 꺼내들고 우리에게 보여줬어요.
언니가 봉투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하자 진짜로 오래된 기차표가 나왔어요. 그 사이 할머니가 언니 손에 남은 전단지를 확 잡아챘어요.
“에고, 사람을 찾는 거구나? 김정자가 누구냐?”
소리 내여 전단지를 읽어내려가던 할머니가 큰소리로 사방에 대고 웨쳤어요.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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