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노족의 력사

2026-07-22 08:48:46

지노족(基诺族)은 중국에서 인구가 비교적 적은 민족의 하나이고 민족언어는 지노어를 사용한다. 지노어는 한장어계 장족-미얀마어족 이족어 갈래에 속한다. 지노족은 자체 문자가 없었으며 과거에는 나무나 대나무에 기호를 새기는 방법을 사용했고 수자를 세거나 일을 기록할 때는 한자를 통용했다. 지노족은 주로 운남성 시쐉반나따이족자치주 경홍시 지노산지노족민족향과 그 주변의 맹왕, 맹양, 맹한 등지에 집중 거주하며 맹랍현의 맹륜, 상명에도 일부 지노족이 살고 있다.

지노족은 1979년에 정식으로 단일민족으로 확정되였으며 2010년 제6차 전국 인구보편조사 통계에서 총인구수가 2만 3100여명으로 확인되였다.

민족 기원:

지노족의 민족 기원과 관련해서는 토착민설과 남부이동설 두가지가 있다. 지노라는 단어는 그 선민들이 제줘산(杰卓山)에 거주할 때 ‘지노로크’(基诺洛克)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였다고 한다. 여기서 ‘지’는 외삼촌, ‘노’는 뒤를 따라다닌다는 뜻으로 외삼촌 뒤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지노족의 발상지는 ‘스제줘미’(司杰卓米)이다. 이는 지노산 동부 변두리에 있는 해발 1440메터의 산으로 현재는 공명산이라 부른다. 지금에 와서도 지노족은 조상들의 이주로선을 말할 때 그 출발과 발상지를 이 산으로 말한다. 이는 오래 전부터 지노족의 선민들이 지노산과 그 주변 지역에서 살았음을 말해준다.

전설에 의하면 ‘제줘’에 제일 먼저 거주한 사람은 한 과부인데 그 과부가 7남 7녀를 키웠고 이들이 결혼을 하면서 후에 인구가 늘어나고 2개의 마을로 나누었다. 즉 이는 서로 통혼하는 두 씨족을 말하는 것이다. 한 씨족의 마을은 아버지 마을과 어머니 마을로 불렸고 이 마을에서 10개의 자식들 마을이 생겨났다.

현지에는 원고시대에 홍수가 이 땅을 삼켰고 선량하고 용감한 오누이가 신선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으며 여러가지 고난을 겪은 후 결국 부부로 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신선이 이들에게 조롱박씨를 주었고 이걸 심으니 집채 같은 크기로 자랐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조롱박을 열어보니 제일 먼저 지노인이 나왔고 이어서 한족, 따이족, 하니족들이 차례로 나왔다. 후에 이들은 각자 자기의 락원을 찾았다. 이 전설을 통해 지노족이 한족, 따이족, 하니족과 원고시대부터 긴밀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지노족은 보이(普洱), 묵강(墨江) 지어는 더 먼 북방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되여있다. 이들은 민족 대이동시 곤명과 아산현을 경과했고 후에는 시쐉반나 지역에까지 도착했고 최종적으로 지노로크에 정착했다. 지노족의 마법사들은 망자의 혼을 달랠 때 북방으로 보낸다. 지노족은 지노산에 도착한 후 ‘제줘’라고 하는 산마루에 있었고 지금까지도 지노인들은 이곳을 서로가 공유하는 곳으로 부른다. 이곳에서 지노족은 비교적 원시적인 채집과 수렵 경제생활을 했고 그 후 산지 농업경제로 전환하면서 생활적으로 큰 발전을 가져왔다.

현재 자료로 볼 때 지노족의 최초 예속관계는 1160년이며 이때 지노산은 바진왕족의 세습 령지였다. 그러다가 원나라 때 운남에 행성을 설치한 후 시쐉반나는 원나라의 통치권에 들어갔다. 명나라 때에는 차리군민선위사(车里军民宣慰使)를 세우고 토사가 이곳을 관리하기 시작해 청나라 때도 이 제도를 답습했다. 중화민국시기 정부는 지노산을 소멍양향 관할범위에 두었고 후에는 보갑제를 실시해 지노족의 상층 두령들중에서 보장과 갑장을 선출했다.

1941년, 지노산에 있는 28개 마을의 약 8000여명이 국민당정부의 가렴잡세와 부역에 저항해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지방정부는 봉기군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전, 지노족의 기본 사회구조는 혈연이 아니라 부동한 씨족이 공동 거주하면서 형성된 지연단위인 농촌공사(公社) 구조였다. 이때의 매 촌사(村社)는 독립적인 하나의 마을이였다. 마을 사이의 지경에는 칼이나 총과 같은 모양의 나무, 돌비석을 세워두었고 그 지경 안쪽의 땅은 그 촌사의 공유지로 다른 사람이 침범해서는 안되였다.

1950년, 맹양에 구정부가 세워졌고 지노산은 맹양 관할에 들어갔다. 1954년 4월, 중국공산당과 인민정부가 파견한 민족실무팀이 지노산구에 들어가 당의 민족정책을 알리고 민족 종교지도층과 유명인사들의 단합을 도모했으며 민족관계의 소통을 강화하고 생산을 크게 발전시켰다. 당과 정부는 지노족사회의 특징에 맞게 ‘단결, 생산, 진보’라는 방침을 제정하고 민주개혁을 거치지 않고도 이들의 생산문화를 발전시키는 방식을 취해 직접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로써 지노족은 력사적인 비약을 실현하게 되였다.

1981년, 지노로크공사 혁명위원회가 지노공사관리위원회로 바뀌였고 1983년에 지노공사를 철회하고 지노산구공소(公所)로 대체, 경홍현정부의 파견기구로 되였다. 1988년초에 지노구를 지노산지노족민족향으로 개칭했고 경홍현 관할에 두었으며 이 현 경내에는 지노족과 하니족, 부랑족 등 소수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 

중국국제방송

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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