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 길거리에서 한자와 조선문 두 문자로 붓글씨를 쓰는 청년서예가가 있다. 그녀는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좌판을 펼쳐 붓글씨를 써주고 틈틈이 라이브방송을 통해 여러 지역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녀의 온라인 계정 ‘최부재(崔不才)’에는 ‘중국조선족의 이민 력사’, ‘90년대생 중국조선족이 두 언어를 쓰며 보낸 어린시절의 재미난 에피소드’, ‘언어가 살아있다는 것’ 등 변경지역의 력사와 문화, 문자와 언어에 대한 생각을 담은 영상들이 게시되여있다. 붓으로 변경지역 문화를 담아내고 온라인 플래트홈으로 이를 전파하는 청년서예가 최가문을 만나보았다.

연서교 부두에 위치한 작은 가게, 투명한 유리 벽체를 넘어 한자와 조선문 두 문자의 고풍스러운 서예작품들이 전시되여있다. 10일 오후, 최가문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민속개량복장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는 라이브방송을 켜고 서예작품을 소개하면서 연변관광 등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최가문이 길거리에서 붓글씨를 쓴 지 올해로 어언 4년째이다. 연변대학 왕훙벽근처에서도 활동했고 명절 련휴기간에는 중국조선족민속원 등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에 좌판을 펼쳐 부채 등에 글씨를 써 관광기념품으로 판매했다. 지난 9월 이곳으로 옮긴 그녀는 오후 네시쯤이면 나와 손님을 맞이하고 라이브방송으로 서예와 연변의 문화를 전한다.
‘최부재’라는 닉네임은 관광기념품인 부채에 붓글씨를 쓰다가 그 ‘부채’와 발음이 비슷한 한자 ‘부재(不才)’와 ‘소녀는 재주가 없다’는 뜻의 고풍스러운 표현 ‘소녀자부재(小女子不才)’에서 착안해 짓게 되였다고 한다.
연변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차츰 전통문화에 관심을 보이며 붓글씨를 취미로 쓰게 되였다. 실제로 좌판을 벌리게 된 것도 우연이였다. “아는 분의 가게 장식에 족자 형태의 붓글씨가 필요해 맡아서 써주게 되였는데 그걸 본 친구 한명이 장난으로 민속복장을 입고 나가 사람들에게 써주라고 했습니다. 참 재미있겠다 싶어 바로 시작하게 되였습니다.”
그녀의 작품의 가장 선명한 특징은 두가지 문자로 쓴 붓글씨이다. “한자로는 큰 뜻을 보여주고 조선문으로는 희망을 전할 수 있는 글을 씁니다.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이 독학하다 보니 그다지 반듯하고 교과서적이지는 못합니다. 대신 미흡하지만 생동감 있는 자유분방함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몇년째 글씨와 씨름하다 보니 깨달음도 많다. “모든 붓글씨체마다 특징과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규칙만 잘 찾아내도 아주 멋진 글씨를 쓸 수 있죠. 사람 사는 도리도 깨우치면서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듯이 세상의 많은 도리가 붓글씨 사이사이에 숨어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붓글씨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문자의 붓글씨가 지닌 차이점에 대해 그는 “한자는 무게감이 있고 힘이 느껴집니다. 조선문 서예는 주로 서신에 쓰이면서 가족간 안부나 정을 전하는 내용이 많다 보니 전체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아주 용이한 특징이 있습니다.”고 소견을 밝혔다. 그는 한자 서법을 남자에, 조선문 서예를 녀자에 비유하면서 “같이 쓰면 음양의 조화가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예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이름이든 좋아하는 문구든 조선문으로 된 서예를 처음 본 손님들은 종이를 손에 들고 한참 들여다본다. “이거 어떻게 읽어요?” “무슨 뜻이예요?” 그러면 최가문은 인내심 있게 따라 읽을 때까지 하나하나 불러준다. 문자와 발음 그리고 이곳에서의 특별한 추억은 관광객을 따라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전승이자 전파가 아닐가 싶다고 생각한다는 그녀이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습니다. 그냥 취미와 얄팍한 재주로 돈 버는 장사군이였죠.”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그런데 쓰다 보니 느낌이 달라지더라구요.” 연변의 력사와 문화에 대해 물어보는 관광객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되였고 정확히 답해야겠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생겨났다.
“한글이냐 조선글이냐, 입고 있는 복장은 한복이냐 조선족복장이냐고 물어보는 관광객들도 많았어요. 저는 ‘중국조선족’이라고 답합니다. 우리는 중국조선족이고 한어와 조선어를 함께 배운 세대예요. 문자 자체가 문화유산이고 력사의 증거예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면서 유리방 앞을 지나는 발걸음이 조금씩 늘어난다. 그는 붓을 다시 적신다. 손님이 말한 단어 하나, 말 한마디가 한자로, 다시 조선문으로 옮겨진다. “제가 쓴 글자 하나하나가 축복이 되여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어요.”
연길의 저녁이, 부르하통하의 야경이 유리방 안으로 비춰 들어온다. 두 문자가 한장의 종이 우에서 조화되면서 춤사위를 펼친다. 서로 다른 두 문자가 한사람의 붓끝에서 만나듯 서로 다른 사람과 문화도 이곳에서 나란히 빛난다. 두 문자가 어우러진 붓글씨로 사람과 사람을 이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최가문의 붓글씨 퍼포먼스는 오늘도 래일도 진행형이다.
글·사진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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