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조선족력사 정리가 시급하다”

2023-03-22 08:50:03

흑룡강성 할빈시민족종교사무국 전임 부국장 신룡일은 30여년의 공직생활 대부분 시간을 민족사업에 바쳤다.

1950년생인 신룡일은 흑룡강성 연수현정부 부현장, 원 송화강지구민족사무위원회 주임, 할빈시민족종교사무국 부국장 등 직무를 력임, 7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지만 온몸에 활력이 차넘치는 강골의 사나이였다.

신룡일이 흑룡강성 송화강지구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흑룡강신문사 책임자와 함께 관할구내의 7개 구, 12개 현을 돌면서 신문주문 임무를 시달했고 경제가 락후한 곳에 가서는 특수보조금까지  내주면서 신문주문을 격려했다. 한때 흑룡강신문은 5만여부의 최고 발행량을 올리기도 했다.

개혁개방 초기에 국가에서는 항미원조에 참가했던 부패장급 이상 제대군인들중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루명을 벗겨주고 복직시켰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개인서류 분실로 상응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고 정원경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귀향 후 의외의 사고로 부대에서 받은 모든 자료를 분실했고 설상가상으로 전우들마저 모두 전사한 상황에서 그가 포병 패장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해당 부문에 찾아가보아도 참군기록과 3급 영예군인으로 제대한 기록만 있을 뿐, 전쟁중 패장 직무를 맡은 기록은 없었다. 루락된 것이 분명했다.

정원경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신룡일은 즉시 해당 부문 책임자를 불렀다. 그는 “나라와 인민을 위해 피 흘린 사람들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국가의 정책을 잘 연구하고 철저히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해당 부문 책임자가 또 찾아왔다. “특수 상황은 특수하게 처리해도 된다.”는 상급의 문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실행하자니 그 책임 후과가 두려웠던 것이다.

“피를 흘리고 영예군인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후과는 내가 책임질 것이다. 반드시 해결해줘야 한다.”

신룡일이 당직, 공직을 걸고 밀어붙인 덕분에 정원경은 리퇴직간부 대우를 받으면서 여한 없는 후반생을 보낼 수 있었다. 정원경의 동생 정원욱(작곡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룡일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신현장은 민족과 사회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하신 분이다.”라고 감격해 말했다.

민족간부로 한평생을 살았고 현재 청도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신룡일에게 청도조선족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가?

“여러 분야에 우수한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만 이분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몸에 배인 직업적인 습관 때문일가? 청도에 진출한 시간은 몇해 안되지만 그는 청도민족사회에 대해 많은 료해를 하고 있었다. 공직생활을 오래동안 해온 사람답게 그는 ‘정책연구’를 주문했다.

“당과 국가의 정책을 연구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정책은 어떻게 연구하고 활용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신룡일은 ‘우리’의 각도에서 생각하지 말고 ‘대청도’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도에 와 보니 청도조선족의 30년 력사가 공백으로 되여있던데 이건 정말 전반 민족사회가 검토해야 할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룡일은 청도 진출 30년 동안 조선족들은 청도의 발전을 위해 마멸할 수 없는 공적을 세웠지만 ‘청도조선족분투사’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민족과 후대는 물론 청도의 발전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는 자세라고 했다.

“청도조선족의 력사는 독립된 우리만의 력사가 아니라 청도력사중의 일부이며 중국조선족력사중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청도력사의 공백을 메워주는 일인 것 만큼 청도 현지 정부의 지지도 받을 수 있지 않을가요?”

한평생 민족정책을 연구하고 지혜롭게 관철한 민족간부답게 그의 견해는 예리했다.

우리의 력사 정리 덕분에  청도의 력사가 더욱 완미해지게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매우 수긍이 간다.

주지하다싶이 청도 진출 1세대중 몇몇 지성인은  이미 고인이 되였다. 어쩌면 조금만 더 지나면 가장 력동적인 시대를 보냈던 한 세대의 이야기는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구전동화’로 퇴색할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와 나서겠습니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청도조선족력사 정리에 한몫 담당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비장한 기색이 서려있었다. 연수현에서 부현장을 지낼 때 22만 인구중 조선족은 불과 1만 1000명밖에 안되지만 부과장급 이상 간부 34명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할빈시민족종교사무국 부국장으로 있으면서 안중근기념관, 조선족문화관, 조선족제1중학교 후원 사업을 원만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민족정책을 연구하고 민족정책을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태 맡아본 직책중 가장 높은 ‘직책’인 ‘재청도 연수고향정’협회의 회장을 맡고 온정과 사랑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는 신룡일, 30여년 공직생활로 축적된 그의 노하우가 청도조선족사회의 발전을 위해 빛날 그날을 기대해본다. 허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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