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기자의 좌충우돌 성장이야기

2023-03-29 08: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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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서른이 넘는 나이에 연변일보사에 입사하게 되였다. 늦은 나이에 기자로서의 첫발을 떼게 되여 조바심이 나는 것도 있었지만 줄곧 리과를 전공했던 나로서는 ‘환골탈태’의 과정을 겪어야 했기에 걱정이 앞섰다.

정식 기자로 발령나기 전 교정부에서 5개월간 일하면서 기본 지식을 학습했다. 입사 첫날 띄여쓰기부터 다시 배웠는데 띄여쓰기가 그토록 어려울 줄이야, 내가 알고 있던 띄여쓰기가 아니였다. 입사 첫날 이 일이 절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다. 하지만 스스로 이 일을 선택했으므로 절대 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배운 지식을 곱씹으면서 고3 때 채 발휘하지 못했던 학습 열정까지 고스란히 일에 몰붓기로 결심했다.

2

5개월간의 교정부 일을 마치고 정치부 기자로 정식 발령 났다.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취재부 주임으로부터 임의로 취재 선색을 찾아 글을 써오라는 주문을 받았다. 며칠간 끙끙댔지만 제딴에는 취재도 잘되고 문장도 순통하니 꽤 괜찮은 원고를 쓴 줄 알았다. 하지만 편집 선생님의 수개가 끝난 후 다시 시스템에 들어가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색의 밑줄이 죽죽 그어진 문장에서 원문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선생님이 수개한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아~’라는 감탄사와 함께 저절로 머리가 끄덕여졌다. 고쳐진 문장을 전부 공책에 정리해두었다.

정성 들여 문장을 고쳐준 편집 선생님이 고마울 따름이였다.


3

날씨가 유난히 화창하던 어느 주말이였다. 집청소를 끝마치고 저녁엔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하기로 약속했다. 이날은 괜스레 기분이 좋아 한시간을 공들여 화장도 했다.

“충분이 예쁘니 거울 앞을 그만 서성이고 빨리 가자.”는 남편의 재촉에 신발장을 향해 다가가던 때 즈음이였다.

‘따르릉~’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웬지 일복이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가 래일 신문에 나갈 번역 원고를 보내놓았으니 번역을 수고해달라는 우리 부서 주임의 전화였다.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미루는 것은 직업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므로 군소리 없이 알겠다고 했다.

이미 문밖에 나간 가족들을 돌려세우고 입이 한줌만하게 나온 딸애를 “빨리 끝마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달랬다.

빨리 끝낸다고는 했으나 절대로 번역을 대충할 수는 없었다.

첫단락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수월하게 넘겼다.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에 나오는 정치용어에서 딱 막혀버렸다. 며칠 전에도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지 몰라 이전 신문을 뒤져보면서 한참이나 고민했던 기억은 나는데 이것을 어떻게 번역했더라?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평소 자기만의 번역사전을 만들어두라던 총편의 뜻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였다. 입사 초기부터 총편은 조선말사전에 없는 정치용어나 전문용어를 파일에 잘 정리해두어 필요시 찾아보기 쉽게 해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총편의 말 대로 단어를 잘 정리했지만 취재가 많아지면서, 시간적 여유가 적어지면서… 그냥, 변명 따윈 접어두자.

또 한번의 큰 깨달음을 얻은 하루였다.


4

연변일보사의 령도와 선배님들은 ‘채찍’보다도 ‘당근’을 더 많이 주는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워낙에 ‘당근’ 체질인 나에게는 이 방법이 두말할 것 없이 잘 통한다. ‘잘했다’, ‘잘하고 있다’라는 긍정을 받으면 더욱더 잘하고 싶은 나로서는 칭찬을 들으면 뜨거운 열정과 패기가 단전으로부터 끓어오른다. 때로는 그 열정이 과유불급일 때도 있지만 말이다.

어느 한번 편집 선생님으로부터 “생각보다 글이 좋소. 론리도 정확하고 처음보다 진보가 많소.”라는 칭찬을 들었다.

내 안의 열정이 요동쳤다. 다음번 보도는 더 잘 써야 겠다는 다짐을 굳게 했다. 취재도 여러 면으로 까근히 잘했고 이틀의 시간을 들여 보도 기사를 고치고 또 고쳤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던 탓일가, 어설픈 흉내 내기로 인해 글의 정체성이 모호했고 많은 내용을 한문장에 써넣다 보니 주제가 흐릿했다. 망했다. 처음부터 다시 갈아엎어야 했다. 결국 조금은 부족한, 나다운 기사를 써냈다.

그리고 또 예전처럼 편집 선생님이 고쳐준 문장을 잘 읽어보고 기록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며칠 전 그 편집 선생님으로부터 또 칭찬을 들었다.

“글이 매끈하니 좀 더 진보한 것 같소.”

열정,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단술에 배부를 순 없다. 열정만 앞서는 것보다 한단계 한단계 착실히 쌓아가는 실력이 더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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