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하고픈 이야기□ 김광현

2023-01-20 09:46:50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가 정착한지 벌써 10년째 되였다.

해마다 시골에서 맞이 하는 가을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비록 농사는 짓지 않지만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들판을 실컷 구경할 수 있어 좋다.  가을이면 나는 매일 정원에 있는 2층다락에 올라가 구수하게 익어가는 벼밭을 바라본다.

오늘도 누렇게 익어가는 벼밭을 가로 질러 나간  길에는 우리 마을의 안씨가 경운기를 몰고 달리고 있다. 비포장길이라 덜컹거리는  적재함에는 안씨의 안해가 앉았다. 이것은 이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이들 부부를 보노라니 이 가을의 풍요로움을 창조해낸 1등공신들을 떠올리게 된다. 마을부근에서 대면적의 논과 밭을 다루는 사람들은 거개가 안씨네와 좌씨네 형제들이다. 그중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뒤집에 살고 있는 안씨네 부부이다. 겨울을 제외하고 이들에게 명절이나 휴식일이 따로 없다.  봄부터 새해 농사를 시작하면 마을에서 이들 부부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새벽과 해 넘어가는 어둑어둑한 저녁시간때이다. 내가 푸름푸름한 새벽에 산책길에 나서면  안씨네 부부는 벌써 일밭에 나가고 있었다. 때론 삽을 메고 때론 괭이를 메고 때론 뜨락또르를 몰고  매일같이 논벌에서 하루를 보낸다. 안씨네 부부는 마을의 논과 밭을 모두 양도받아 다루고 있는데 자그만치 수십쌍은 된다고 한다. 마을의 새벽잠은 닭우는 소리가 아니라 안씨의 뜨락또르소리에 깬다. 안씨는 봄이면 혼자서 수십쌍 되는 논을 다 갈고 써레질 하고 모내기 때만 사람을 몇명 불러 도움을 청한다. 모내기 철에 안씨가 혼자 애쓰는 모습이 안스러워 동네 로인들이 나서서 온실의 벼모를 뽑아주며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 마을분들이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안씨는 꼭 그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대신 집집의 터밭을 갈아주고 이랑을 지어주고 기계를 수요로 하는 일은 모두 해준다.

마을사람들이 안씨와 오고가는 정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난다. 안씨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농사 짓는 한족이다. 안씨가 이 마을사람들의 논과 밭을 부침으로써 모두들 시름 놓고 외국이나 대도시에 나갈 수 있었다. 안씨는 마을에서 빈터만 보면 채소를 심거나 곡식을 심는다. 놔두면 잡초만 자라지만 장물을 심으면 가을에 하다못해 열콩 몇알이라도 거두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크고 작고를 떠나서, 많고 적고를 떠나서 안씨의 농사는 전면적이다. 처음 마을사람을은 안씨가 욕심많다고 은근히 나무라거나 왕따 시켰다. 그러나 남의 것에 손을 대거나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지런함으로 모든 것을 얻어내는 안씨한테 마을사람들도 탄복하게 되였다. 안씨는 남의 것을 탐내지도 않고 자기 것을 쉽게 내놓지도 않는다. 가끔 마을사람들은 안씨를 제 털을 뽑아 제구멍에 꼽는다고 웃는다. 제 털을 뽑든 남의 털을 뽑든 그것이 부정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하는 것이기에 종당에는 모두 가을의 수확에 속한다. 안씨네 부부는  섬약하고 자그마한 체구이다. 무쇠로 만들지 않은 이상 이들도 때론 휴식이 필요하련만 나는 한번도 이들이 편히 휴식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동네사람들한테서 들을라니 안씨는 농망기면 식사를 하다가도 밥상머리에서 잠에 골아 떨어질 때가 푸술하다고 한다. 안씨의 얼굴을 검다 못해 구리빛이다. 흑인에 가까운 피부이다. 한번은 내가 길에서 그를 만나 롱담삼아 말한 적이 있다.

“어쩌면 너의 선조는 흑인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안씨의 대답이 걸작이다. 자기의 혈통은 백인종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얼굴이 희다못해 백지장 같다고 한다. 그런데 여름내내 해빛에 그을러 그렇게 변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안씨의 얼굴이 밉지가 않았다. 지어 정답기까지 했다. 처음에 나도 욕심 많은 안씨에 대해 경계했다. 집울안에서 뭐가 보이지 않아도 혹시나 하고 안씨를 의심했다. 그런데 안씨네 울안을 들여다 보고 그런 의심을 한 내 얼굴이 붉어졌다. 안씨에게는 농사일에 쓰는 연장이 너무나 구전하여 박물관을 련상케 했다. 농기계로는  손잡이뜨락또르, 대형 뜨락또르, 이앙기, 수확기를 일렬로 세워놓은 것이 커다란 기계화 농장을 련상시켰다. 내가 자기집 울안을 기웃거리자 안씨는 수요되는 연장이나 물건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기집에 와서 가져다쓰라고 헌헌하게 말했다. 내가 안씨에게 마음을 열자 그도 인츰 내게 다가와 속마음을 열었다. 내가 그의 한해 수입을 물으니 별로 생각지도 않고 한 20만원 푼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는 말에 자랑을 좀 했다. 딸의 이름으로 룡정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 몇채를 사 놓았고 딸에게 승용차도 사주고 사위에게 차정비소도 차려주었다는 것이였다. 당신네들은 남자쪽에서 례단으로 거금을 주지 않는가고 물었더니 안씨는 시물시물 웃으면서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였다. 자기는 경제조건이 허락되여 례물을 안받고 되려 사돈집에 정비소까지 차려 주었다고 했다. 이런! 나는 안씨가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전에는 쑈안(小安)이라고 부르던 것을 언제부터인가 로안(老安)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나의 존중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7월말부터 안씨는 터밭의 찰옥수수를 룡정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부부가 꼭두새벽에 찰옥수수를 삶아서 경운기에 싣고 서시장골목에서 팔았다. 한번은 내가 그들이 옥수수파는 모습을 보고 저으기 실망한 적이 있다. 안씨네 부부는 찰옥수수를 팔면서 손님과 대판 말시비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손님이 계산하면서 돈 몇십전을 덜 주었다는 것이였다. 나는 그런 안씨가 너무 째째하다고 생각했다. 몇십전 때문에 저렇게까지 손님과 얼굴을 붉힐 필요가 있는가고 속으로 나무랐다. 그래서 이후엔 절대 안씨네와 어떤 거래도 안하리라 다짐했다. 안씨에 대한 나의 태도도 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후 상해에서 조카네 가족이  휴가차 놀러왔다. 찰옥수수가 먹고 싶다 하기에 내키지 않는 대로 안씨네 집에 찾아갔다. 마침 안씨네 부부가 찰옥수수를 삶고 있길래 옥수수가 익으면 열이삭만 가져다달라고 했다. 안씨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점심 때가 다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공짜로 달라 할가봐 안씨가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기다리던 옥수수가 오지 않자 서운한 대로 조카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안씨가 삶은 옥수수 한꾸러미를 들고 왔다. 안씨는 자기들은 옥수수를 큰 가마에 두세시간씩 삶는다고 했다. 그래야 맛이 구수하여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였다. 그러다보니 늦었다고 하면서  련신 사과했다. 내가 몇이삭인가 확인하고 값을 치루려 하자 안씨가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면서 화를 발칵 냈다. 앞뒤집에서 서운하게 그러면 안된다며 옥수수값을 절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아니 몇십전 때문에 얼굴을 붉히면서 싸우던 사람들이 30원이 넘는 옥수수값을 안받겠다니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안씨 말에 따르면 이웃지간에는 돈보다 정이 중요하다는 것이였다. 평소 자기를 관심해주고 친구처럼 대해주어 자기가 되려 감사하다고 했다.

후에 또 마을사람들한테서 들으니 안씨는 이웃들에게 입쌀을 팔 때는 시장가보다 50전이나 싸게 판다는 것이였다. 한동네에서 돈 때문에 너무 린색하면 곤난하다는 것이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게 아니”라고 말이다. 이것이 안씨네가 생각하는 이웃 사이의 경우였다. 이렇게 근면하고 착한 안씨 같은 농군들이 바로 이가을의 풍요로움을 이룩해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공짜로 마음껏 이 가을의 풍요로움을 두 눈이 시도록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내 것이 아닌 내 것이다.”

누군가 말 한번 잘했다. 천고마비의 높은 하늘과  60리 황금들판과 우람하게 솟아있는 비암산과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내 눈을 통해 마음에 쌓여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부를 축적해주었다. 나는 이 풍요로운 가을에 정신적인 부를 만끽하지만 육체적 로고를 아끼지 않는 안씨와 같은 농민들은 경제적인 부를 누릴 것이다. 안씨네는 심은 만큼 거두니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금년 가을에는 안씨네가 지은 비암표입쌀에 적당히 열콩도 넣고 밥을 지어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도 대접하고 싶다. 풍요로웠던 이 가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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