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선 나이 (외 5수)□ 리기춘

2023-02-03 09:32:32

내 나이는

세상맛을 기껏 먹고

이 자리에 멈추어 섰다

세월이 아무리 드세게

잡아끌어도 가려하지 않는다


색바랜 옷을 맵시 있게

시체멋에 걸치고 히쭉-

여기에서 무언가 즐기다

가겠다고 떡 버티고 있다


갈 때 되면 빨리 가야 한다고

세월이 자꾸 성화질하니

멈추어 선 내 나이는

왈칵 화를 낸다

― 가겠으면 너 혼자 갈게지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구느냐


무서운 세월도

사정없이 무시하고

멈추어 선 내 나이

이 자리에서 석양을

아름답게 장식하련다고

행복에 자신만만하다.



삶의 욕망


나는 어벌 크게

우주를 다 돌아보려 하였다

그런데 우주가 끝없이 넓어

우주의 한 모퉁이도

돌아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굶주리며 돌아온 것이

속이 텅 비여 허전하였다


나 몹시 지쳤다

허약하게 늙은 몸과

피곤한 마음을 부추기며

우주의 먼지 속에 허덕이던

욕념을 접고 푹 쉬고 싶어

지구의 푸른 바다에 누웠다

출렁이는 파도소리를

사랑의 자장가로 들으며

어린애처럼 달콤히 자고 싶다

우주의 꿈속에 스며들고 싶다


우주의 꿈이여

나에게 맞춤한

행복을 덮어다오.



지금의 행복


미운 저녁바람을 달래여

한쪽 구석에 눕혀놓았다

석양빛이 방안에 들어와

포근한 사랑을 챙겨준다

세월이 굽이쳐 간 주름 속에

검은 별쪼각 수집게 숨으니

빨갛게 생글거리는 꽃잎파리

한물 간 볼에 행복을 덧칠한다

불끈거리는 손등의 피줄이

손놀림 동작을 응원하며

내 삶을 즐겁게 주무른다


쪼글거리다 펴지는 입귀에

된장냄새 새물거리고

하얀 수염발에 매달린

술방울 향기 흐물거린다

부연 구석에 숨었던

옛날 빛갈이 밝게 춤추니

쨍하게 살아나는 기분

그까짓 ‘빼주’ 서너냥쯤이야

내 숨결 아직 건강하다.



무제


나는 항상 나와 다툰다


나는 원래 하나인데

왜 둘로 갈라져서

옥신각신하는지

나도 어리벙벙하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하나가 둘로 된

나와 나는 서로 마주서서

제 주견을 날카롭게 고집한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그 리유를 알고 나서

내 령혼은 서둘러

나와 나의 화해를 고민했다


그 고민 과정이

아름다우면서

짜릿할 것 같다

결과가 어떠할지

나는 나를 바라 본다.



빈집 기둥


고달픈 세월끝에 이젠,

아무것도 바랄 것 없으면서

왜 이다지 처절히 버티고 있는가

옛 숨결 고인 그리움을 부둥키고

텅빈 가슴에 고독을 새김질하며

집안 이야기를 전설로 남기려는 듯


희미한 추억에 푸른 빛을 덧칠하며

젊은 시절을 가만히 더듬어보는

그때 그 시절의 눈부신 랑만이여

색바랜 미소가 하얗게 새물거리는가


지나간 희로애락을

세월에 영영 묻어버리고

속세에 미련이 없는 듯 한데

허름한 껍데기를 걸치고

조용히 숨쉬는 빈집 기둥이여

아직 무슨 소망이 남아 있는가.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면

아빠트는

울쩍하게 움츠리고

가로수는

싱싱하게 꿋꿋하다


그런 날이면

나는 아빠트를 나와

가로수 옆으로 간다


비물을 말쑥하게 입은

가로수가 싱싱한 사랑을

나에게 파랗게 덧칠한다


나는 가로수마냥 씩씩하다

푸른 숨결 속에 들어가서

  청춘과 포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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