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 숨겨진 비밀□ 최장춘

2023-02-24 09:23:34

층계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높은 곳을 순조롭게 오르내리기 위해 누군가의 기발한 착상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어림짐작할 따름이다. 계단의 출현은 아마 전설 속의 바벨탑이 문자기록으로는 최초인 것 같다. 바벨탑에 깃든 ‘야곱의 사다리’ 일화는 꿈속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오르내린 신전의 계단을 당시 공중사다리인 줄 알고 나름 대로 해석을 가해 후날 더 유명해졌다. 그런 연고로 고대사람들은 계단에 층층다리 또는 층층사다리란 표현을 곧잘 썼다.

계단의 높이와 너비는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실내실외 차이가 좀 있을 뿐 인간의 걸음폭이 진화되지 않는 한 큰 물리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한편 층계수치는 먼저 왼발을 내딛고 오른발을 잇달아 들어올리는 ‘좌우좌’ 계단오르기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선조들은 계단을 홀수와 짝수로 나눠 인간이 사는 양택에는 홀수를 선정했다. 홀수는 음양조합에서 양의 길흥을 상징하여 층수가 많이 늘어날수록 좋다고 여겼다. 근근히 집과 마당을 이어주고 아래웃층을 련결하는 계단의 존재가 언제부터인지 그 수치를 갖고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활용되면서 일반 맞배지붕을 이고 사는 백성들 집앞의 계단은 디딤돌 하나면 고작이고 벼슬아치들의 문앞도 3, 5층 이하로 엄격히 제한되였다. 유독 임금의 문전만은 달랐다. 북경자금성의 태화전계단은 엄엄한 중첨무전식(重檐庑殿式)건축형태에 맞춰 한백옥계단을 널직하게 39층 쌓아올렸고 돌란간 중간중간 촘촘히 기둥까지 박아놓아 궁궐분위기는 한결 으리으리했다. 특정된 건물인 일반 사찰의 계단은 108개이고 오대산처럼 큰 절의 계단은 1080층이다. 이른바 속세의 번뇌를 멀리하고 깨달음을 얻고저 한 의도가 다분하다.

건축기술의 발전과 함께 설계사의 조형의지가 더 담겨져 요즘 계단은 장식효과를 벗어나 인간 사이 서로 비기고 따지며 보여주기 위한 과시욕으로 잔뜩 부풀려졌다. 리삼상 단편소설 <계단>의 주인공은 현대 농촌사회의 성실한 농민이다. 매일 문 앞 청석판계단에 앉아 태평스러운 나날을 보내던중 문뜩 동네 다른 집 층계가 더 높은 걸 발견하고 무척 고민한다. 남보다 능력과 힘이 부족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주인공은 그날부터 틈나는 대로 부지런히 벽돌이며 돌맹이며를 주어모았다. 반편생의 노력 끝에 드디여 새 집을 짓고 보란듯이 문전계단을 9층으로 만들었다. 헌데 고생고생하며 집을 짓고 나니 주인공은 폴싹 늙어서 고동색얼굴이 청석판처럼 거무죽죽했고 머리칼은 시뿌옇게 생기를 잃어버렸다. 체면을 앞세운 무모한 자존심대결이 축조한 계단은 구경 오르려고 쌓은 건지 내리려고 쌓은 건지 그 진의를 가늠키 어려울 때 많다.

력대로 물은 낮은 데로 흐르고 사람은 높은 데로 오른다고 했다. 낮은 곳과 달리 높은 곳은 확 트인 조망권을 향유할 수 있어 시선이 가닿는 공간의 폭이 넓다. 따라서 계단을 통해 층층이 오를 적마다 눈높이와 생각이 바뀌여져 자신감이 부쩍 뛴다. 키 작은 사람이 키 큰 사람을 올려다 보듯 사회적으로 뭇시선이 집중된 높은 자리를 동경해 인심은 겨끔내기로 ‘계단효과’에 박차를 가한다. 분명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데 자신의 혈기를 믿고 성급하게 두칸, 세칸씩 껑충껑충 뛰며 그 성취감이 오래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상사는 인간의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 올리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오를 줄 아는 만큼 내릴 줄 알아야 계단을 톱는 박진감 못지 않게 내릴 때 원만한 해피엔딩을 만든다. 마르셀 뒤샹의 명화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보면 쪼각쪼각 무어놓은 듯 균형 잡힌 몸매와 동작이 반복하는 과정이 필림처럼 련관되여 흐른다. 한점의 흔들림 없이 계단을 미끄러져 내리는 속도와 안정감이 혼연일체를 이뤄 강렬한 립체감을 선사한다. 계단의 상행선을 삶의 전반편에 비유할 경우 하행선은 후반편과 흡사하다. 금융권에서 주가의 불마켓을 흔히 계단 상승세로 설명하고 베어마켓은 계단 하락세를 본따 나타낸다. 오름과 내림은 불가분리의 순환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과정을 임의로 분류시켜 해석하기를 즐긴다. 어느 량반이 흥했던 과거를 접고 퇴직하자 불현듯 내리막 계단을 걷는 것 같아 매일이다싶이 술판에 앉아 자신의 케케묵은 성공담으로 공허심을 달랬다. 승승장구하다 좌절을 겪으면 주저앉아 한탄소리 높다. 생활계단은 정선 아닌 동선이다. 올라가든 내려오든 곧고 바른 자세를 갖춘 참된 컨트롤을 장악한 모습만이 인생의 변곡점에서 새 출발의 계기를 찾는다.

장가계 천문산을 다녀온 사람의 느낌은 남다르다. 산 웃부분이 뭉청 내려앉아 생긴 천문동을 향해 999단으로 형성된 계단이 아득히 뻗어있다. 천문동의 입구에서 무시로 룡이 뿜어낸 듯한  새하얀 안개덩어리는 어쩐지 재물, 기쁨, 장수, 관록, 행복의 항아리 같아 모두 신들메를 조인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소원성취를 비느라 웅성거리지만 산은 태고연한 채 응답이 없다. 그저 하늘땅이 들썽케 한번 꽝- 함성을 지르려고 입을 크게 쩍 벌렸다가 뚝 멈춘 채로 천문동 가장자리엔 무거운 침묵만 감돈다. 이웃과 높낮음을 따지지 않고 름름한 기세를 자랑하는 천문산에 비해 인간의 행색은 너무 초라해 층계를 내려서는 이들이 저도 몰래 정중히 옷깃을 여미게 된다. 알량한 생각이 김빠진 공처럼 졸지에 후줄근해진다.

계단은 인생의 교과서를 방불케 한다. 층계마다 보폭의 궤도를 담은 생활의 희로애락이 찍혀있다. 걸음새 빠른들 어떻고 느린들 어떠하리, 같은 계단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 밟는 체험이 달라 각자는 가파른 계단을 한발, 두발 허위허위 숨을 고르며 열심히 오르내린다. 파헤치기 힘든 계단의 비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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