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고개에 오르며□ 강효삼

2023-03-03 09:22:31

2023년이면 내 나이 여든이 된다. 말하자면 인생의 높은 고개인 팔순고개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100세시대라 일컫는 요즘 80세가 그 무슨 대수랴만 그래도 60세를 목표로 했던 나의 인생에 80이라면 20년을 더 사는 것이 되지 않는가. 내가 정녕 80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살아왔단 말인가! 1년을 365일로 쳐도 80년이면 2만 9200일이 아닌가. 더구나 남다른 인생경력을 갖고 있는 나는 실로 감회가 새롭다.

비교적 장수하는 집안이라는 말을 듣는 나의 가문에도 내가 알기로 조상들이 여든고개는 못넘기였다. 당시로 말해 오래 앉으셨다는 할아버지도 72세에 세상을 뜨셨고  부친은 여든을 코앞에 두고 일흔 아홉고개를 못 넘기고 세상을 뜨셨다.

더우기 나는 두살 때 홍진에 걸려 ‘죽은 것’을 거적에 싸서 내다 버리려고 하는데 살려는 목숨이였던지 인기척이 있어 다시 살핀 덕에 지금까지 살고 있다. 환갑나이인 60세가 되였을 때 급성신부전에 걸려 의사로부터 두주일밖에 못산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적이 있고 2020년엔  심장병으로 죽음이 코앞에 와서 수의까지 준비해둔 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든고개는 못넘기는 줄 알았는데 끝내 80세라니? 이제 내가 목표했던 인생년령 목표에 도달한 것인가.

그 몇번 생명의 위험이 목숨을 끊지 않고 오히려 생명을 연장시켜준 세월에 감사한다. 어릴 때 죽지 않고 잘 자라서 18세부터 교육사업에 참가하여 20년 교령에 15년 향정부 문화소 소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했고 만년에는 나라의 록을 타먹으며 편한 여생을 보냈다. 어릴 때의 꿈이였던 문학꿈도 실현하여 문학작품도 발표하고 시집도 네권 출판했다. 지금도 간간이 글을 쓰는 것으로 ‘제2직업’인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다.

이 모두가 자신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우로는 부모님의 사랑과 아래로는 자식들의 효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두살 때 홍진으로 ‘죽었을’ 때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나를 살리려고 손이야 발이야 빌어 살아났다고 하는데 기실  신령의 도움인 것이 아니라 손자를 살리려는 할아버지 정성이 나를 살린 것이다.

불치의 병이라는 신부전에 걸려 물조차 못넘길 때 멀리 외국에 출가한 맏딸이 거금을 들고 와 치료비를 댄 덕분에 건강을 회복하게 되였다. 그래서 더 죽음의 고개라는 일흔아홉고개를 넘어 여든고개에 올라선 것이 감개가 무량하다.

어제는 오늘에 이른 시점이고 오늘은 래일에 이르는 련결고리이다. 이제 여든고개에 올라 새해란 래일을 맞게 되였으니 나는 새로운 한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비록 여든의 삶을 산다고는 하나 워낙 약체이다보니 몸에 병이 많아 늘쌍 생각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누군가 로인이 된 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새해에 나는 무엇보다 죽음을 바르게 대해야 겠다. 너무 죽음에 대한 공포로 떨 필요 없이 언제오든 기어이 한번은 올 죽음을 편하게 받아들이자.

돌아보면  나보다 일찍 이 세상을 따나간, 나보다 나이 어리거나 나와 동갑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 비기면 이만큼 산것도 너무 고맙지 않은가. 그런 맥락에서 고마운 생명에 보답하는 것은 온 힘으로 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건강이 삶이겠지만 나같은 병약한 로인에겐 건강이 더욱 삶이다. 건강에는 육체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있는데 정신적인 건강이란 누구나 한번은 겪는 죽음을 례사롭게 생각하면서 부담없이 사는 것이다.

누군가 지금 내가 무료하게 보내는 이 시각이 죽은 이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하던 래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생각을 해서라도 생명의 매 순간을 금싸락같이 아껴야겠다. 그래서 여든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시간을 아껴 무엇이나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일을 찾아 하자.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글쓰기도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쓸 수 있을 때까지 쓸 것이다. 지난날과는 달라 손이 떨리고 눈도 잘 안보이고 사유도 굼떠졌다. 그래도 써야겠다. 그것이 삶이 아니던가, 그것도 일반적인 삶이 아니라 나에게서 가장 의미있는 삶,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늙은이는 추억에 살고 젊은이는 희망에 산다고 하는데 사람은 늙고 젊고 상관없이 희망에 살아야 한다. 희망이 없는 곳에 절망이 뛰여든다. 로인이라해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 희망의 끈이다. 그것은 새해를 맞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새해엔 손에서 필을 놓으려다 깊은 고민 끝에 글쓰기에 다시 희망을 걸기로 했다.

희망은 또한 나 자신 뿐 아니라 자식들에 대한 희망도 있다. 새해 나는 내가 제일 귀여워하는 손자가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공부도 잘하고 체육도 잘하고… 그리고 나의 식솔들만 건강하고 안녕할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가족과 자식들이 안녕하기를 바란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누군가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살아야 하고 오래, 또 잘 살아야 한다. 사는 것을 삶이라 한 것은 살아도 더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이야 가라>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

  그래 여든이 대수냐, 백세시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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