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채기□ 현청화

2023-03-31 09:05:04

“아아아아… 취!”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재채기라 이름하는 이 요상한 세러머니로 하루의 시작을 연다. 아침마다 한바탕 재채기를 하고 나면 눈물과 코물이 일시에 흘러내리며 그의 주름진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두루말이 휴지를 둘둘 감아쥐고 화장실로 향했다. 아직도 미색을 보존한 마누라의 따가운 눈총이 그의 뒤통수에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마누라와 처음 만난 것도 바로 이 재채기 때문이였다. 회사 송년회 때, 연회석에서 느닷없이 터지는 재채기로 잠시 분위기가 난감해졌을 때 신입사원이였던 마누라가 옆자리에서 슬그머니 밀어주던 손수건에서는 향긋한 장미꽃향이 풍겼다. 꽃향기라면 질색이던 그가 처음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향이기도 했다. 이튿날 다시 만나 그가 손수건을 돌려주었을 때, 마누라는 그에게 두고 쓰라고 했다. 그날 재채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하자 마누라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냐고 말했다. 그날 그 말을 하는 마누라의 입술에는 장미꽃 향기가 풍겼다.

그가 처음으로 직권을 람용해서 일반 신입사원을 부장 업무조리로 발탁시켰을 때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 업무조리가 반년 후 그의 개인비서로 승격되였을 때에도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하지만 후에 그 비서가 그의 와이프로 신분상승을 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매일 재채기를 이렇게 한다 해도 주변인들에게 주는 피해나 불편 따위는 없었다. 선천성 비염이였다. 뭐니 뭐니 해도 재채기는 하는 당사자가 제일 괴로운 법이다. 특히 밥을 먹을 때나 사랑을 나눌 때 재채기가 나오면 정말이지 죽을 맛이다. 세상에서 참을 수 없는 세가지가 재채기, 웃음, 사랑이라고 했던가? 천만에. 웃음도 참을 수 있고 사랑? 그 따위는 더 그렇다. 어쩌면 참을 수 없는 재채기가 웃음과 사랑을 영영 날려버릴 수도 있다. 그것도 단 삼년 만에.

신혼 일년째, 매번 그의 재채기가 시작되면 마누라는 얼굴 한가득 관심과 걱정을 담고 그에게 물었다.

“병원에 안 가봐도 돼? 많이 힘들죠?”

그리고 일년 후, 마누라는 미간을 찌푸리고 인상을 쓰며 말했다.

“웬만하면 병원 좀 가지? 아침마다 보는 게 힘들어보여.”

또 일년이 지나자 마누라는 숫제 얼굴을 구기며 짜증을 냈다.

“아 큰 병원 쫌 가봐. 아무리 선천성이라도 약이 없다는 게 말이 돼? 매일 집안 부산하게 이게 뭐야.”

그러니까 이제 재채기와 웃음, 사랑은 더 이상 병렬의 관계가 아니라 완벽한 반비례의 정의를 이룬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마누라를 리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변함 없는 모습에 지겨운 건 그도 마찬가지다. 지어는 몇년 동안 변하지 않는 그의 부장 직함까지도.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도 언제 한번 중요한 미팅 때 재채기를 시작하는 바람에 옆에 앉은 업무조리 녀석이 슬그머니 휴지를 건네준 일도 있다. 그때에도 테이블 맞은켠의 비서실 실장자리에 앉은 마누라 눈살이 지금처럼 꼿꼿했더랬다.

유난히 힘이 빠지고 외로운 날에,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만일 그가 회사 임원직이 아닌 일반 사원이였어도, 마누라는 그의 재채기를 사랑했을가.

그런 그의 재채기는 오늘도 어김없이 터졌고 여전히 꼿꼿한 마누라의 눈살을 피해 화장실로 숨어들어온 그에게 본부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이 본사로 발령이 났는데 가기 전 본인이 맡았던 일들을 그에게 인수인계한다는 내용이였다. 정식 발령서는 본부장이 본사에 복귀한 다음 보내오기로 하고 그는 통화를 종료했다.

“에에에에~~~취!”

다시 요란한 재채기를 하고 휴지로 코를 푼 다음에야 그는 화장실을 나왔다. 마누라가 화장실 문에 기대여 서있었다. 마누라의 얼굴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화사하게 피여있었고 그것은 꼭 마치도 붉게 만개한 장미꽃을 련상시켰다.

“이거 써봐요.”

마누라가 얼핏 보기에도 고가인 듯한 실크 손수건을 그에게 내밀었다.

“자기 비염에 휴지가 오히려 안 좋대. 거기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도 그렇고.”

“뭘 이런 걸 다…”

그는 반은 얼떠름하고 반은 희열에 젖어 손수건을 건네받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아무리 사랑해서 만난 사이라 해도 서툴어서 그랬을 거야. 그래도 그의 건강이 신경 씌여서 이런 것도 준비해두고 있지 않는가. 항상 정제된 얼굴에 세련된 장미향기를 풍기며 슬리퍼 밑바닥이 거실 바닥에 스치는 소리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던 도회지적 느낌의 마누라인데… 시골 출신의 그를 만나서 삶에서 삐걱거리는 사소한 것들을 끼워 맞추며 살자니 어련하랴 싶었다. 마치 불완전하고 장애물투성이인 인생처럼, 사람이 살면서 그 누가 한치의 결락도 허점도 없겠는가.

“전에 당신이 선물한 손수건도 아직 있는데…”

“응? 언제?”

드르륵… 핸드폰 진동소리가 울렸다. 언제라도 그가 승진을 하면 담당자로 발탁해줄 생각이 있었던 업무조리 녀석이다.

-부장님, 아니 이젠 본부장님이라 불러드릴가요?

녀석이 항상 눈치 하나만은 백단이다. 하긴 그동안 살벌한 직장환경에서 터득한 녀석만의 생존본능이리라. 문자를 확인하는 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음, 아직은 불문에…

그의 점잖은 주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연거퍼 메시지를 보내온다.

-아참, 그리고 제가 홈쇼핑을 보다가 비염에 좋다는 손수건이 있어서 몇장 보냈는데 받으셨나요?

-손수건?

-부장님 늘 저희 회사 행사 때 사용하는 일회용 손수건을 애용하셔서. 손수건 필요하실 거 같아 보내드렸습니다.

-아, 그 장미향 나는 손수건이 일회용이였어?

-장미향 아니고 말리향인데요…

말리향… 꽃향기중에서도 그가 제일 싫어하는 향이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비염이 심해지긴 했나보다. 서로 차이가 극명한 향을 다 헷갈린 걸 보니…

-아무튼,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본부장님… 그리고 혹시 이제 그러면 실장님이 부장으로? 좀 전에 실장님께도 축하메시지 보냈습니다.

아…취!

  그는 다시 크게 재채기를 한다. 어쩐지…고개를 돌려보니 마누라가 그런 그를 그윽한 눈길로 쳐다본다. 그의 주름진 얼굴이 차츰 일그러지며 눈물이 천천히 코로 기어나온다. 그야말로 씁쓸한 재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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