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족□ 주련화

2023-04-07 09:27:10

시원한 밤공기가 그의 이마로부터 시작해서 턱까지 차례로 훑는다. 그는 가로수에 기대인 채 다시한번 자신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속해있던 공간을 향해 마주 서있다.

맥주와 소주 그리고 삼겹살이 불판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던 냄새까지, 그것들이 다시 코를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에 두개골 언저리에서 찰랑거리던 알콜들이 방금 흘러내릴 듯 꿀럭거린다.

깨끗하게 닦인 가게 유리창 너머로 달처럼 둥실 떠오르는 얼굴 하나, 벌개진 얼굴로 팔을 흔들면서 열변을 쏟아내고 있는 김부장이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걸가? 상당히 흥분된 인상이다. 그의 뇌는 아직도 김부장이 면접이 끝날 무렵에 했던 한마디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한 가족처럼 일해보자고.”

그 한마디는 무심한 듯 그의 심장 한구석을 툭 스치고 지났다.

그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말단 직원이라는 리유로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외진 도시 출장을 밥먹듯이 다니고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차례지는 범위를 넘는 잔업까지, 각종 갈굼들이 줄을 이을 때마다 그는 그 한마디를 꺼내서 다시 저울에 달아보았다.

류달리 돋보이는 주먹코 그리고 그 우에 걸려있는 무테안경, 그 얼굴의 임자는 박과장이다, 손짓과 발짓도 모자라 혼신을 불사르고 있는 박과장의 리액션에 그의 입가가 피씩거린다. 그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그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기 마음을 외면한 채 드러내는 어떠한 연출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끄윽.”

목에서 쇠댕이를 세멘트 바닥에 긋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이 정녕 진화의 정석을 보여주는 인간이 내는 소리던가?

그는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한번 추스른다. 걷어올린 와이셔츠 밑으로 팔목에 뻘건 반점들이 어지러운 무늬로 피여있다. 술만 먹으면 의례히 나타나는 그것들은 그에게 있어서 이제 너무 익숙하다.

지금 이 시각 누군가가 먼저 퇴장해도 저 무대 우의 연출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은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식당 옆에는 24시간 영업을 알리는 둥그런 패쪽과 함께 푸르스름한 불길을 던지고 있는 패밀리마트가 보인다. 건물 전체는 파란 허리띠를 두른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허리띠에는 ‘고객을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유표하니 적혀있다.

“저 사장님, ‘컨디션’은 어디에 있어요? 안 보이네요?”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미동도 안한 채 눈길로 매대 아래쪽을 가리킨다.

그는 작은 유리병의 마개를 성급하게 떼고 목구멍을 젖혀 털어넣는다. 그가 마트를 나설 때까지 주인 남자는 여전히 미동이다. 얼어붙은 게 아니라면 석화라도 된 거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한다.

“왠양청으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에서 절대 토하시면 안됩니다.”

심야에 잡힌,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고객이 못마땅한지 택시기사는 상당히 쌀쌀맞다. 기사의 미간이 심하게 구겨졌다가 펼쳐지는 것도 기어코 포착된다.

뒤좌석에 몸을 구겨넣은 그는 와이셔츠의 단추를 세개째 풀어헤쳤다. 먼저 고객이 어떤 놈이였는지 택시는 담배냄새로 숨이 막힌다.

가로등들이 해파리의 꼬리 같은 빛줄기를 길다랗게 늘여대면서 하나둘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이제 반시간 후, 그는 씻지도 않은 채로 원룸의 침대에 대자로 널부러지게 될 것이다.

“가족 여러분, 이건 제가 가족 여러분을 위하여 공장과 협상한 최저가격입니다. 1년에 한번밖에 없는 기회 절대 놓치지 마세요.”

틱톡에서는 탤런트가 열심히 상품소개를 하고 있었다. 남자인 그가 봐도 참 잘생긴 사람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도문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그 자리에서 눈물과 코물을 함께 쏟던 얼굴이다.

“공개된 삶을 살면서 이런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저를 항상 믿어주는 와이프와 가족 여러분한테도 미안합니다. 그리고 외곡된 사실을 진실인 양 보도했던 각 매체들한테 법적 책임을 추구할 권리를 보류하고 있겠습니다.”

진실을 훌쩍 뛰여넘는 연기에 탤런트의 편을 들어주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얼마 전에 최저가격이라고 믿고 산 상품이 시장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던 사람들도 포함되여있을 것이다. 패스트푸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답게 그들은 상처가 낫기 바쁘게 전혀 아픈 적이 없던 사람들처럼 굴었다.

항상 모범남편 좋은 아빠 이미지 때문에 장내를 들썩했던 탤런트의 그 사건은 이내 다른 가수의 콘서트기사에 묻혀버렸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짜증이 다분한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끌어당긴다.

“감사합니다.”

인사가 흩어지기 바쁘게 택시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손목으로 묵직한 게 걸린다. 분침이 수자 12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신분증과 같은 날자의 마지막 1분이 지나고 있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해피버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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