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부 사랑□ 김춘식

2023-04-14 09:41:37

일요일, 서재에서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아침에 시장에 간다고 나간 안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 지금 자유시장에 있어. 이제 집에 가려고 하는데 두부도 한모 사갈가?”

“언제 거기까지 갔어? 두부를 사오면 내사 너무 좋지, 그러잖아도 두부 생각이 나던 참인데. 그리고 건두부도 같이 사와. 허허.”

날씨가 쌀쌀해지는 이맘때는 매운 두부탕, 된장두부찌개, 마라두부, 두부김치찌개 등 어느 것이나 두부가 들어간 음식이면 난 다 좋아한다. 그리고 겨울이면 언두부를 특별히 좋아하는데 찌개는 물론 마라탕이나 훠궈에도 언두부가 들어가면 더 좋아했다. 그래서 중국에 있을 때 겨울이면 어김없이 두부를 몇모씩 사다가 얼구거나 직접 언두부를 사다 놓군 했다.

나는 두부가 들어간 음식은 아무거나 다 좋다. 하긴 모두부를 그냥 양념장에만 찍어 먹어도 좋아하는 나니깐.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회사에서는 한동안 점심식사를 구내식당에서 하지 않고 음식을 배달시켜 먹게 했다. 회사원마다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시켜 먹는데 남들은 골고루 이것저것 번갈아가며 시켜 먹었지만 나는 이틀 건너 한번씩은 두부료리를 시켜 먹었다. 마라두부, 순두부찌개, 매운 두부탕, 소고기두부볶음… 그것을 보고 동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김아저씨가 두부료리를 이토록 좋아하시다니요?!”

전에 교직에 있을 때 끼리끼리 번갈아가며 한턱씩 쏠 때가 많았다. 음식점에 가면 의례 각자 먹고 싶은 료리를 하나씩 고르게 한다. 음식을 별로 가리지 않는 나는 체면에 양보하다 못해 고르는 게 매번 건두부고추볶음이 아니면 마라두부 혹은 살짝 익힌 콩기름을 넣어 만든 양념장을 끼얹은 모두부 한모였다. 남들은 혹시 내가 돈을 아껴주느라 제일 값싼 것을 택하는 줄로 알지만 기실 나는 두부를 너무 좋아했다.

안해가 아들과 함께 저 멀리 상해에 있는 한국회사에 가 일할 때도 그렇고 안해가 나 먼저 한국에 나왔을 때도 그렇고 홀로 집에 남아 출근할 때 나는 이틀이 멀다 하게 아침마다 골목에 나가서 두부장수를 기다렸다가 그 뜨끈뜨끈한 모두부에 마늘 양념을 끼얹어 반찬 삼아 먹었다. 또 늦잠이 들어 아침 출근시간에 쫓길 때는 모두부 반모로 아침을 때우기도 했다.

술을 워낙 좋아하는 나는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나면 이튿날 아침 거의 된장국이나 된장찌개를 찾는데 번마다 두부가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혼자 집에 있을 때 친구들이 찾아오면 료리는 할 줄 모르고 하니 나 좋은 대로 번번이 두부가게에 가서 두부를 사다가 양념을 끼얹어 술안주를 하거나 건두부를 사다가 고추장에 찍어 술안주 삼아 먹었다. 이젠 거의 술을 마시지 않지만 가끔 소주 두 잔이 탐날 때는 두부야말로 지금도 가장 좋은 안주가 아닌가 싶다.

두부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여름에 밥상에 두부랭채를 한접시 올려놓으면 식욕을 돋구어주고 겨울에 난로나 화로불에 향기가 나는 언두부찌개 한솥을 끓이면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없었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두부를 적당히 맛이 든 김장김치에 싸서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홀로 집에 있을 때 가끔 두부부침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두부를 도톰하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부침가루를 묻히고 기름 두른 팬에 노릇하게 부친다. 다음 송송 썬 파, 통깨, 고추가루, 간장, 물을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부친 두부에 끼얹어서 먹으면 그 맛 역시 일품이다.

두부는 아무렇게 료리를 해서 먹어도 맛이 있지만 그래도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마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두부보다 갓 만들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판두부를 나는 퍽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전에 고향에 있을 때 나는 아침에 집대문이나 골목어구에 서서 두부장수를 참 많이도 기다렸던 것 같다.

부지런한 두부장수들은 새벽을 안고 골목에 나타난다. 그들은 리어카에 두부를 싣고 두부장수의 특유의 목청으로 동네 골목마다의 새벽하늘을 깨우며 두부를 팔았다.

“두부가 왔어요.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두부가 왔어요!”

그렇게 두부장사가 골목에 들어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저마다 두부 담을 그릇을 하나씩 들고 나오는데 나도 그 틈에 끼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판두부, 그것을 한모씩 샀다.

두부장수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새벽이면 골목에 나타나는데 나는 썩 추운 겨울날이나 비가 내리는 여름날엔 밖에 나가 기다리기 아슬하여 집안에서 두부장수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때는 온 귀를 기울여 두부장수의 사구려소리를 듣는데 “두부요~” 소리가 문밖에서 나기 바쁘게 그릇을 들고 뛰쳐나간다. 가끔은 뒤늦게야 골목어구에서 사라지는 사구려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쫓아나가 “여기요, 두부 한모 주세요.”하고 웨치면 사람 좋은 두부장수는 리어카를 돌려 다시 다가온다. 때론 두부가 다 팔려 여간 맹랑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때 그 섭섭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에 온 후 나는 골목을 누비며 두부를 파는 두부장수를 더는 보지 못했다. 물론 한국에도 전에는 종을 울리며 골목길을 누비는 두부장수들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골목은 물론 전통시장에서도 두부장수의 사구려소리가 도통 들리질 않는다.

하긴 전통시장에서는 가끔 전문 두부가게가 보인다. 그래서 나와 안해는 전통시장에 갈 때마다 판두부를 한모씩 산다. 어려서부터 맛을 들인 탓이라 할가, 나는 한국인이 만든 두부보다 중국인이 만든 두부가 더 맛있다. 그래서 전에 부천에 살 때에는 언제나 부천역 근처에 있는 자유시장에 가 중국인이 차린 두부가게의 두부를 사다 먹었다.

우리는 지난해에 이곳 인천시청 근처로 이사를 왔는데 근처에 있는 전통시장에는 중국인이 꾸린 두부가게가 없다. 비록 부천으로 가자면 인천 1호선에서 서울 1호선으로 전철을 한번 더 갈아타야 하지만 지난 10년간 살던 그곳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 한달에 한번 이상은 그곳 자유시장으로 장 보러 간다. 뽕도 딸 겸 님도 볼 겸, 장도 볼 겸, 옛 풍경도 구경할 겸… 그리고 갈 때마다 중국인 두부가게에서 판두부도 한모 사고, 곁달아 건두부도 사니 이 또한 일거량득 아닌가…

우리 조상들은 두부를 오미(다섯 가지 미덕)를 갖춘 음식이라고 칭송했다 한다. 맛이 부드럽고 좋음이 일덕이요, 은은한 향이 이덕이요, 색과 광택이 아름다움이 삼덕이요, 모양이 반듯함이 사덕이요, 먹기에 간편함이 오덕이라는 것이다. 또한 풍부한 단백질과 부드러움으로 콩에서 나온 우유라고 해서 숙유(菽乳) 혹은 무골육(无骨肉), 즉 뼈 없는 고기라고도 했다 하니 두부는 예로부터 모두 좋아한 음식인 것만은 틀림이 없나 보다.

두부는 예로부터 렴가의 식품 정도로 알려져있지만 그것이 생활이 빈한한 집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우리 집에서는 두부를 일년 가야 몇번 먹을 수 없었다. 명절이나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나 집에 대소사가 있을 때라야 두부맛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우리 같은 아이들한테 차례지는 두부음식이란 겨우 두부 몇조각이 든 두부콩나물국이나 두부감자국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땐 그것이나마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행복한 한끼 밥상이였다.

그래서인지 그때는 어쩌다 먹는 콩비지도 너무나 맛있었다. 그때 큰어머니는 가끔 한족들이 꾸린 두부방에 가서 무보수로 반나절씩 일을 돕군 했는데 마음씨 좋은 주인은 큰어머니가 귀가할 때 언제나 비지를 듬뿍 담아주었다. 그러면 큰어머니는 그것을 한 그릇 담아 종종 우리 집으로 가져오셨는데 그 비지에 배추시래기나 무우나 감자를 넣고 찌개를 끓이면 그것이 그렇게 맛있을 리가 없었다.

아~ 아, 어린시절의 비지맛과 두부맛은 아마 영원히 나의 추억 속에서 감미로운 맛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오늘 까짓 두부 한모를 두고도 이렇게 많은 감개를 자아내니 과연 나도 이젠 향수에 젖어 사는 로년기에 접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저러나 여적 점잖던 배가 그만 그 두부란 화제에 은연히 꾸루룩 소리를 내며 은근히 시장기를 돋구니 두부를 사가지고 돌아올 안해가 지금쯤은 어디까지 왔을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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