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 김미경

2023-05-12 09:27:46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가로등이 없어 별이 잘 보이던 동네였다.

그때 이 땅의 날씨는 유독 추웠고 그건 그녀의 흰 피부에도 그 흔적을 력력히 남기고 있었다. 발갛게 물든 볼이 눈꼬리와 함께 말려 올라가는데 그 얼굴이 어리면서도 여리다. 반복되는 고된 로동도 그녀의 환한 표정을 흐리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언제나 말간 얼굴에 살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건네군 했는데, 그건 주변인들까지 덩달아 밝게 만드는 웃음과 바르고 곧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였다. 모두가 그녀를 반겼고 그녀가 이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요.”

“너무 많이 나아졌어요.”

들려오는 칭찬과 긍정에 열일곱, 그녀의 입술은 큰 호선을 그린다. 말하자면 그녀는 만족이나 유지보다는 늘 발전할 것을 추구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이 비단 례의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였던 것인지 그 후로도 그녀는 언제나 열심이였다. 그 어떤 고생도 그녀의 앞에서는 큰 문제로 비추어지지 않는 듯 한결같은 모습을 했다. 꾸준하고 성실하며 부지런하다는 말들이 잘 어울릴 그녀.

“이거 받아요.”

나는 가끔씩 일이 끝난 뒤면 그녀에게 흰 수건을 건넸다. 그러면 그녀는 살풋 코를 찡그리며 내 손에서 그것을 받아들고 땀을 식히군 했다. 덥죠? 라고 물으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러나 그 구레나룻에 걸린 은방울이 또르륵 떨어지며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데, 창가에 걸린 달이 서서히 색을 더해가는 스물다섯이였다.

곧 겨울이 걷혀가는 것이 체감되자 봄꽃들도 일제히 피기 시작했다. 작은 분홍빛의 꽃잎이 그녀의 머리 우로 떨어지면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분주하다. 며칠 전 다친 손가락에 감긴 붕대가 이질적이였으나 그녀는 여상했다.

“조금 쉬였다 해도 되는데.”

애틋한 마음에서 건넨 말에 “그래도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라는 답이 전해진다.

십년이 흘렀으나 서른다섯이여도 그녀는 맑았다. 이제는 주근깨가 옅게 자리잡은 눈 밑의 피부가 잘게 요동친다. 그래도 그녀는 숨을 한번 들이키고는 눈을 비비며 다시 공장일에 집중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고 그 기계들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속에서도 그녀는 온통 하얗게 빛났다.

어느새 어둡던 도로에도 조금씩 가로등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공장 사람들이 함께 술자리를 가지면 그녀는 주로 그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역할을 담당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였으나 그녀의 노래는 달랐다. 그리고 춤도 어딘가 다른 구석이 분명히 있었다. 그 밝은 기운은 깜빡깜빡 흐릿하게 빛나는 공장의 등도 환히 밝혔다. 하지만 그녀는 남몰래 많이 울었다. 분홍천에 작게 이름이 새겨진 손수건의 변두리부분이 약간 젖어있는 것이 눈에 띄면 나는 그녀를 품에 살며시 안았다. 그럼 그녀의 눈을 닮은 반달모양의 자국이 셔츠깃에 새겨졌다. 서서히.

그녀의 삶은 빠른 속도로 나아지기 시작했다. 도움도 많았고, 그녀의 변함없는 노력 또한 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의 가난은 없었다. 그리고 그 결실은 조금씩 구비되여가는 살림살이라거나 점차 밝아져가는 그녀의 동네가 내뿜는 빛에서 보여졌다. 그리고 더우기는 손바닥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굳은살이, 웃을 때면 눈가에 얇게 접히며 나타나는 주름이 증명했다. 그녀는 쉰이였으나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시를 읊조리는 기분, 수필을 쓰는 기꺼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이름을 작게 부르는 목소리. 령혼을 가다듬고 인연을 살피는 일에 올곧게 마음을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라는 영화대사 같은 말들을 들으면. 영원보다는 지속성을 더없이 믿을 수 있게 되였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다. 흐르는 물처럼 족적을 역행하지는 않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가까이에서 본 건, 그녀의 나이 예순.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잠간 뜸을 들이는 모양새였으나 그녀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했어요. 한 것 만큼 보상도 따라왔고. 부지런하게,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니까 모든 일이 순조롭더라고요. 후회나 아쉬움도 남지만 전 지금이 충분히 소중하고 행복해요. 아이들도 이제는 다 컸고, 잘 자라줬어요. 다행이고 행운인 거죠.”

입술을 한번쯤 부딪치며 망설였으나 결국은 묻는다.

“그럼 그 긴 시간 동안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에 한층 진해진 주름이 그녀의 얼굴을 가로질러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소녀처럼 웃는 법을 알았다.

“어려움은 있었어도 힘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낮은 목소리에 급하지 않은 느긋한 말투. 그리고 해발처럼 찬란한 웃음이 그녀의 입가에 눈가에 번져갔다.

“아주 보람찬 순간순간들이였거든요. 근사한 추억이고, 폼 나는 흔적들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반복하던 일들이라도 이골이 나지는 않아서 계속 전력을 다할 수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장소, 소중한 것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장의 허두는 다 이렇게 시작돼요. 그건 앞으로도 그럴 거지만요.”

다정히도 말하는 그녀의 머리 우로 지는 해가 흑발의 차분한 머리카락을 흐트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일흔이 되였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그녀는 또한 이후에도 아름다울가. 그리고 여기서 나이가 더 든다면?

내 답은, 그녀는 아름다울 것이다. 그녀는 나이가 들수록 우아해졌고, 현재는 로련하고 경험 있으나 동시에 무던하고 순진하다. 그러니 그녀의 앞으로는 달이나 해나 별처럼 빛나듯 아름다울 것이다.

영원보다는, 계속하여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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