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매의 눈물□ 리홍화

2023-05-12 09:27:46

보슬비가 날려 얼굴을 스치는 쌀쌀한 날씨인 데다 해가 저문 시간인지라 평일과 다르게 류원은 너무나 한적하다.

깔끔한 흰벽과 공예 느낌이 차분히 찍힌 검은 기와를 스쳐지나 자잘한 돌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자갈길을 따라 잠간 걸으니 멀리서 벌써 한눈에 안겨오는 랍매나무 한그루가 마음을 움켜 잡는다. 싸리나무보다 키는 좀 높지만 비슷하게 뻗어나간 줄기를 가졌고 뾰족한 잎속에 작고 노란 랍매들이 가지를 따라 촘촘이 매달렸다.

추위로 몸을 옹그리는 동지섣달, 너무나 작고 수수한 랍매는 언제 벌써 열린 가지사이로 얼굴을 빠금이 내민채 노란 미소를 가벼이 짓고 맑은 향을 담담히 뿜어주고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할 정도의 평범한 모습과는 달리 이 계절 한송이 꽃으로 찬바람 속에 피여있다는 강인함과 도도함으로 너무나 이쁘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씨방을 갓 털고 따뜻한 해볕만 보듬어 안은 채 멀리 북쪽 하늘가에서 한들한들 날아온 보송한 홀씨 하나 둘, 사람들은 이들을 이방인이라 한다. 그들은 검은 기와 흰벽사이, 고층빌딩 벽틈새, 열기로 불타는 콩크리트 바닥 속으로, 인파 속을 헤집고 끊임없이 조잘대고 비벼대며 내 뿌리 붙힐 땅 한치 마련하고저 열심히 뛰여 다닌다.

이른아침 사람들로 붐비는 출근길의 전철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만남과 부딛히는 하나하나의 과제와 만족의 성취감, 열정과 노력으로 소진된 마음들을 쓰다듬으며 한해 또 한해의 년륜을 포갬포갬 쌓아간다. 평범한 그들은 직장인으로서, 한가족의 가장으로서의 담당과 책임을 다하며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고 열심히 뛰고 있는 이들 역시 너무나 당당하고 대견스럽다.

강남의 동지섣달은 일년중 가장 추운달, 그리고 그리움으로 채워지는 달이다. 동지섣달 랍매꽃을 보면서도 흰눈이 그리워 마음이 착잡하다.

이때 쯤 기나긴 로정의 피로는 망각한채 큰짐 작은 짐들을 둘러멘 귀향 대오는 거세찬 인파를 일구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귀향길을 독촉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고향의 겨울은 기분좋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리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대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사과배 나무가지에는 흰실에 촘촘히 꿰맨 메주콩 다래가 하얀 눈열매가 되여 대롱대롱 흔들리고 나무 아래 눈우에 찍힌, 야생동물들의 놀다간 흔적이 유표하다. 산돼지며 항가리(족제비)들은 논뚝을 가로 타고 옆강을 넘어 과수원까지 어지러운 발자국을 눈 우에 이어놓았다. 흰모자처럼 두툼한 눈을 뒤집어쓴 우리 집 오두막, 찬 공기 속에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굴뚝 연기, 그리고 앞치마를 두르고 뜬김 속에서 분주히 저녁밥을 짓고 있는 엄마의 고운 모습이 서서히 떠오른다. 아침마다 눈만 뜨면 첫 일과로 달력에 크고 작은 빨간 동그라미를 조심스레 비뚤비뚤 그어가며 집 떠난 자식들을 초조히 기다리시던 엄마, 작은 창문으로 엄마의 얼굴이 비칠가 뚫어지게 바라보지만 눈앞만 희미해지고 그리움에 가슴만 알알하여 눈시울이 젖어난다.

내 고향의 앙칼진 겨울 바람은 때론 지붕이 날아날가 애들이 돌아오는 수레길이 막힐가 어른들 마음만 걱정케 한다. 포근한 눈더미를 휘몰아쳐 윙윙 거센 눈보라로 일으키고 그 거세찬 바람에 휘말리는 눈보라는 대지를 휘적인다. 터전에 옹기종기 널려있는 해탕나무, 명월리나무, 향수리나무, 여전히 꽁꽁 언 땅속에 깊이 뿌리박고 눈보라 속에서 넘어질 듯 기우뚱하면서도 끝끝내 버티고 있다. 풍상고초를 겪은 엄마아빠의 휘여든 등골처럼. 칼바람 소리가 귀가에 들려오는 듯하고 저도 모르게 몸이 웅그려지면서 고향의 따스함이 그립다. 가슴이 찢기고 마음이 너무 아리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랍매의 가는 가지에 떨어진 가랑비가 방울로 모여져 줄기를 타고 골로 흘러든다. 찬바람에 휘여든 그 가냘픈 몸체를 괴롭히며… 얼른 가지 중턱에 손을 가로 대여 흐름을 막았다. 방울방울 차가움이 손과 팔을 따라 옷깃을 적시며 내 몸에 한류로 흘렀다. 꽃잎에 맺힌 비방울이 머리와 이마로 방울방울 떨어지며 얼굴을 적시였다.

긴 머리를 쓸며 얼굴을 들어 찬찬히 들여다 보니 희미한 가로등 빛 속으로 부푼 랍매가 날리는 비 속에서 여전히 온화한 모습으로 다정히 웃고 있다. 차가운 겨울비 속에서도 가녀린 가지마다 작은 꽃봉우리를 돋구고 있는 강인하고 끈끈한 의지, 힘든 풍상에도 활짝 웃는 참된 삶의 활력소 화면이다.

그리움에 따라온 추억들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지난 한해의 아쉬움을 미봉할 굳은 다짐과 꿈, 비전, 소망… 개인적인 작은 목표일지라도 그것을 향해 노력하고저 치솟는 열정과 욕망의 마음을 지긋이 다잡는다.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기상, 우리는 또 하나의 소중한 삶을 맞이할 준비가 든든히 되여있다.

랍매는 설중사우로 불리는 매화, 동백, 영춘화, 수선화와 함께 봄의 전령으로 불린다. 만물이 소생하고 새 새명을 잉태하는 참신한 계절, 겨울비 속의 랍매는 사계절의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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