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낚아올린 소박한 시어들을 엮어…

2023-12-01 08:23:43

작가초대석


달래 캐던 처녀는 어디로 보내고 

망연한 기다림에 목이 석자 길어졌나 

멍든 사연에 잎은 말라 늘어져도 

가녀린 꽃대로 동그라니 떠인

사랑 한사리, 추억 한다발...


최기자(76세) 시인의 세번째 시집 《달래꽃》이 연변작가협회 계획출판프로젝트의 지원으로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최기자 시인.


인간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실존상황인 생과 죽음, 인생과 고통에 대한 시인의 새로운 깨달음이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시인은 이러한 깨달음을 인생철학과 지조의 미학, 치렬한 삶의 양태, 사랑의 세계를 자기만의 생동하고 격정적이고 참신한 시어로 표현했다.

11월 29일, 인터뷰차 최기자 시인의 집을 방문했다. 한파 때문에 이마 시린 바깥과 달리 집안은 아늑했다. 다소 오래된 인테리어이긴 했지만 먼지 한톨 없이 깔끔하고 정연해서 시인의 알뜰함이 엿보였다. 환한 객실 한가운데 놓인 소반에는 어느샌가 커피에 주전부리들까지 아기자기 곁들여서 차려놓았다.

“저를 시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삶에서 소박한 시어들을 건져 엮었을 뿐이예요. 그러니 시인이란 칭호는 빼주세요.”

최기자 시인은 문단에서 자타공인 재간 있고 재치 있는 활력소이다. 소설가 허련순은 "‘코트’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살아낸 시인"이라는 문장에서 “최기자 선생님은 이미 칠십이 넘었지만 여전히 소녀처럼 순수하고 흥이 많고 뜨거우신 분이다. 시도 잘 쓰지만 수필이나 소품 등 연극 쪽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런 데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북이나 새장구도 잘 친다. 그리고 주패나 화투, 마작도 잘 놀고 지어 낚시도 잘한다. 낚시시합에서 남자들을 젖히고 일등을 한 적도 있다. 술도 잘 마시고 돈도 잘 써 한량 같지만 비리를 보면 참지 못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베풀 줄 아는 문단의 의리파 왕언니다.”라고 시인에 대해 적었다.

자칭 ‘고희를 이순으로 착각’하고 사는 최기자 시인은 지금에야 누구보다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일찍 그의 삶에는 짙은 비운이 깔렸던 시기가 있었다. 마흔다섯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고 홀로 오누이를 장성시킨 그의 인생, 마냥 밝아보이는 그 내면에는 남몰래 삼켰을 법한 눈물도 많았을 터이다. 하지만 그는 슬픔 뒤에 숨지 않았고 어두웠던 삶의 기억을 회피하지 않은 채 그 수많은 감정들을 ‘시’라는 가장 절제된 언어로 꽃피워냈다.

최기자 시인의 시 속에는 남편을 잃은 젊은 녀인의 외로운 기다림이 있는가 하면 손녀를 업고 가마솥 뚜껑을 안고 졸면서 며느리를 기다리는 시어머니의 기다림이 있고 기저귀를 바꿔주기를 기다리는 친정어머니의 기다림이 있다. 허련순 소설가는 “기다린다는 것은 자아에 의해 외곡되고 굴절된 자기의 내면을 살펴보는 시간이며 자기의 상처를 다독이는 시간이고 새로운 자기를 찾아떠나는 시간임을 최기자 선생님은 시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고 적었다.

최기자 시인은 인생이란 참으로 살아볼 만한 것이라며 아침에 눈 떠서 아픈 데가 없으면 고맙겠지만 아픈 데가 있어도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 역시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내 삶을 그토록 사랑한 것이 내 시가 되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한 것이 내 시가 되였어요.”

최기자 시인의 삶에 대한 열애는 누구보다 뜨겁다. 일찍 연변제1고중을 졸업하고 지식청년으로 연집공사에 하향했으나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늘 더 나은 삶을 지향해왔다. 아기를 업고 문학세미나에 다녔고 애 둘을 낳은 후에 대학공부를 시작한 열혈녀성이였다. 그 어디에 있든 시인의 재능은 늘 빛을 발했다. 가사, 재담, 시, 수필 등등 비록 다산작가는 아니지만 시인의 작품창작은 20대부터 70대까지 간간이 그러나 꾸준히 이어진다. 허련순 소설가는 “락관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은 시인이 순수한 전통시도, 절대적인 현대시도 아닌 ‘전통 안에 현대가 있고 현대 안에 전통이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일찍 1990년대 중국조선족문학에 나타난 새로운 풍경중의 하나인 녀류시인들의 시창작의 활성화, 그 중심에 최기자 시인이 있었다. 시인은 선후하여 연변작가협회 산하 녀류시회, 연변단풍수필회, 어머니수필회, 연변녀성문인협회, 연변시인협회에 몸담고 때로는 앞장서서, 때로는 뒤에서 묵묵히 여러 협회의 활성화에 한몫을 기여해왔다.

“좀더 치렬하게 문학을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쯤 나의 략력에 작품 몇개 더 얹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하지만 물 흐르듯이 욕심 없이 살아온 데 대한 후회는 없어요.”

최기자 시인은 대리교원으로부터 시작해 중학교 교원으로 교편을 잡았다가  《중국조선어문》잡지사  부주필로 정년퇴직을 맞았다.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시향만리’ 문학상 본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일찍 시집 《아침에 머리카락 줏는 녀자》, 《고독은 페경이 없다》와 수필집 《기다림의 아름다움》 등을 출간했다.

  글·사진 리련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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