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향이 풍부해지는 ‘존재’□ 최복

2024-05-24 09:01:35

얼마 전 ‘어머니 날’을 맞아 고중동창 셋이 오랜만에 식사모임을 가졌다.

그중 나하고 한명은 워킹맘, 다른 한명은 전업주부이다. 간만에 만난 우리 셋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대화의 주제는 자녀교육에서 시작해 직장에서 일어난 여러 ‘뒤담화’, 그것도 모자라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시대적인 발언’까지 우리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었다.

자식교육이야 집집마다 방식이 다르고 서로의 기대치가 틀리다 보니 오히려 그것에 대한 대화의 흐름은 순탄했다. 그러다 직장내 벌어진 이야기가 막 쏟아지자 공동분모가 있는 워킹맘 둘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열을 올렸다. 대화가 무르익어갈 즈음, 전업주부 친구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난색을 표했다. 분위기상 이상함을 감지한 워킹맘 둘은 곧 입을 다물었다.

“그래 너희는 직장이 있어 좋겠다! 자기도 돈 벌기에 남편하고도 큰소리 칠 수 있어 좋겠다! 시집에서 며느리 대접을 해줘 으쓱하겠네! 아이들도 엄마가 직업이 있으면 기분 좋아하더라!”…

어처구니가 없었다. 친구 사이에 이런 ‘억지스러운’ 대화가 어디 있을가?  배알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 모양새였다. 우리 대화는 멈췄고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래도 친구끼리 나름 위로라 생각하고 우리는 그녀를 다독였다.

“직장 다니는 게 편한 줄로 아는 모양인데 직장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리익을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반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은 그 친구는 그제서야 그동안 담아뒀던 속마음을 터놓았다.

한숨을 크게 내쉬고 하는 그녀의 말이다. “요즘 들어 특히 우울해진다. 하루종일 집에서 애 뒤바라지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내가 요즘 하는 일만 보면 파출부와 뭐가 다를가 싶다…”

최근 들어 우울증 증세를 보여 스스로도 걱정될 정도라고 토로했다. 자식을 낳고 생활하면서 집구석에서 여지껏 남편 눈치 보랴, 시집 눈치 보랴 스스로를 ‘지우고’ 살아왔다며 신세한탄을 했다.

학교 때 공부도 꽤나 잘했고 똑순이로 불리웠던 그녀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또래보다 조금 일찍 결혼을 선택했던 터라 당시에는 가정생활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다며 선택에 대한 불평을 늘여놨다.

육아로 모든 경력이 단절된 그녀, 아이를 키운다는 리유만으로 그녀의 이름은 그저 ‘엄마’로만 불리운 지 오래됐다고 했다. 반면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지금껏 크게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립장에서 봤을 때 오롯이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는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이 솔직히 부러울 때도 있었다.

‘역지사지’가 어려운 세월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복에 겨운 줄 모르고 배부른 한가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워낙 많다.

전업주부도 엄연히 ‘체계적인 조직생활’을 하고 있다. 일과 가정, ‘무대’가 다를 뿐이지 하는 역할은 똑같다. 오히려 요즘 전업주부는 예전처럼 한곳에만 얽매운다는 개념보다는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뭐든 할 수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과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등 장점이 있다.

주변에서 워킹맘들을 살펴보면 사업을 통해 자기가치를 실현하고 다양한 도전과 압력을 이겨내면서 가정과 일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자식이 성장하고 직장도 ‘졸업’하게 되면 뒤늦게나마 허탈함, 공허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엄마들, 혹은 젊었을 때 일에만 정진하다 보니 막상 가정생활에 소홀했다는 대개 비슷한 상황이 벌러지는 엄마들도 존재한다.

한 선배가 정력의 50%를 가정에 쏟고 나머지를 자기개발에 몰두하면 두 직장을 다 ‘명예졸업’할  수 있다고 말한 기억이 떠오른다.

워킹맘들은 경제적으로 일정하게 독립을 얻어 가정생활에서 부딪칠 수 있는 불확실성과 위험에 보다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전업주부는 가정생활에서 나름 대로 차곡차곡 쌓아온 지혜와 노하우, 무엇보다 가정에서 자기위치를 확고히 하는 동시에 자기가치를 추구하고 가정내에서 평화와 균형을 잘 맞춰나간다면 오히려 더 당당하고 멋질 수도 있다.

전업주부들은 가정내 소통과 사회와의 단절에서 오는 불안감,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표현한다. 그런 부분은 사실 워킹맘들도 마찬가지로 감내하고 살아간다.

‘슈퍼우먼’, 원래 직장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감당하는 멋진 녀성을 뜻하지만 전업주부인 경우에도 이 단어가 해당된다.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모든 생활방식은 끊임없는 도전과 삶의 만족도에서 비롯된다. 내가 ‘주체’가 되여 가정에서, 직장에서 나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지금의 생활을 즐긴다면 일과 가정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중국인민공안대학 교육심리, 가정교육학 리매근 교수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풀었다.

엄마의 존재는 ‘올드 빈티지 와인’과도 같다고 했다.

오래되고 값비싼 와인일수록 향이 짙고 독특한 풍미를 내며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가치와 향이 풍부해지는 빈티지 와인의 존재. 내포하고 있는 단적인 부분이 엄마의 존재와 비슷하다고 말이다.

워킹맘과 전업주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든 짙은 숙성된 ‘와인’처럼 모두가 ‘성숙된’ 마음가짐을 지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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